연극 '나무 위의 군대' 중, 신병의 대사

   
 

[문화뉴스] "분대장님한테는 저 기지가 당연해 보이겠죠."

거대한 뱅골 보리수 위에 군인 두 명이 서 있다. 전쟁 중에 뱅골 보리수에 몸을 숨긴 두 군인은 당분간 이곳에서 은신하기로 한다. 신병은 전쟁터가 되어 버린, 그리고 자신들이 현재 머물고 있는 뱅골 보리수가 자리하고 있는 이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에서 적군의 공격을 피해 거대한 나무 위로 올라가 2년 동안 그곳에서 지낸 두 군인의 실화를 모티프로 한다

타지에서 온 분대장은 '나라'를 위해 싸운다. 그러나 신병은 자신이 나고 자란 '이 섬'을 위해 싸운다. 시체가 되어버린 적군을 수색하며 갖가지 음식과 생필품으로 연명하던 이들은, 분명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곳에서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2년 후 매우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뚱뚱해져버린 분대장과 여전히 날렵한 신병.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을까.

2년의 세월이 지나고, 두 군인은 이제야 어렴풋이 전쟁이 종결됐음을 인식한다. 분대장은 자신의 비대해진 몸뚱이와 무뎌진 군인정신을 자각하고 괴로워한다. 반면 신병은 기민한 정신으로 늘 전쟁을 대비하며 지냈기 때문에 여전히 날렵하다. 영락없는 군인의 모습이다. 자괴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분대장에게 신병은 뱅골 보리수 맞은편에 존재하는 기지를 가리키며 말한다. "분대장님한테는 저 기지가 당연해 보였겠죠"라고 말이다.

 

   
 

전쟁을 위해 터전을 벗어나 전쟁터에 보내진 분대장과 삶의 터전이 곧 전쟁터로 변모한 신병, 이 둘의 입장은 너무나도 달랐다. 바라보고 있는 적군의 기지가 당연한 분대장과 당연하지 않았던 신병이었다. 신병은 이렇게 말한다. "저도 이 나무에 있다 보면 저 기지가 당연해 보입니다. 그래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기지가 없었을 시절의 풍경을요."

결국 이들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보냄에도 불구하고 극명한 차이를 띠며 변해 있었다. 신병은 저 기지가 당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전쟁을 대비하며 적군과의 전투를 염두에 두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분대장은 적군의 기지가 존재하는 이 땅이 당연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전쟁이 당연했기 때문에, 이 상황을 전복시킬 아무런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동일한 시공간 내에서도 제각기 다른 삶을 영위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우리는 나의 당연함을 타인의 당연함으로, 나의 부당함은 타인의 부당함으로 착각하며 살곤 한다.

신병을 대단히 여기거나, 분대장을 한심하게 바라볼 수는 없다. 주체로 살아가느냐, 살아가지 않느냐는 개인의 환경과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말이다. 타자의 인식을 자신의 인식에 의해 마음껏 재단하는 것 자체 또한 자신의 인식이 '당연하다'는 비약적이고 폭력적인 잣대가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이 처한 '전쟁'이라는 극도의 불행의 시공간이 이들의 대비를 더욱 극명하게, 그리고 비극적으로 보이게 해주어 편할 수 없는 마음일 뿐이다.

  * 연극 정보

   - 연극 제목 : 나무 위의 군대

   - 공연날짜 : 2015. 12. 19. ~ 2016. 2. 28.

   - 공연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 원안, 연출 : 이노우에 히사시, 강량원

   - 출연배우 : 윤상화, 김영민, 성두섭, 신성민 등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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