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자,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런 소설이다. 어렸을 때부터 장발장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이라면 이 말에 반발할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혁명기를 배경으로 장발장과 자베르의 대결,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등 굵직한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다며 큰소리칠지도.

하지만 레미제라블 원작이 장장 5권에 달한단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소설책은 본래 어린이들을 위해 축약된 것으로, 5권짜리 원작은 이 한 권의 책에 밀려 웬만큼 큰 서점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레미제라블 원작이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각색된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원작을 그대로 옮겨놨다는 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었던 영화 '레미제라블'. 이 영화는 미국 유명 제작사와 미국 유명 배우들의 합작품이다. 그렇다면 뮤지컬은 어떠한가. 원작의 본고장 프랑스가 아닌 영국과 미국에서 장기 공연되며 프랑스인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 편의 소설이 나라와 시대별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각색되는 상황. 혹자는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본인은 그만큼 원작이 대단하다는 근거로 활용하고 싶다. 재생산되면 될수록 빛나는 원작의 힘이라니, 어찌 대단하지 않으랴.

여기서 주의할 건 원작의 의도를 살리되 적절한 차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별다른 차별화 없이 원작에 편승한다면 재생산할 이유도 없거니와 '베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2012년 국내 초연 이후 3년 만에 돌아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배우들을 한 무대로 모이게 한 공연이다.
 

   
▲ '레미제라블'이란 작품 아래 전 세계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레미제라블'에서 외국 공연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단연 배우들이다. 영국에서 내한한 오리지널 제작진 등이 참여한 오디션에서 선발된 배우들은 작품의 명성에 걸맞은 연기로 화답한다. 극의 중심이자 가장 에너지 소모가 많은 장발장과 오로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자베르, 등장할 때부터 처연한 분위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판틴까지. 영국, 일본 등에서 '레미제라블'이란 작품 아래 활동하던 배우들이 한국 공연에서 만나 하나의 합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힘이 넘치다가도 금세 유약해져 관객들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다만, 원캐스트인 조연 배우들이 주연 배우들의 힘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배우들이 어우러져 대등하게 극을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소수의 배우가 그들을 끌고 가는 것처럼 느껴져 카타르시스가 종종 반감되곤 한다.
 

   
▲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이번 서울 공연에서 세계 최대, 국내 최초의 '하나미치' 무대를 선보인다. ⓒ레미제라블코리아

한편 이번 공연으로 흔치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는데, 바로 '하나미치' 무대를 통해서다. '하나미치(花道)'란 일본에서 가부키 공연을 할 때 쓰이던 연장된 무대 형태로, 사각형의 일반적인 무대 디자인에서 벗어나 좌우측 벽면을 따라 무대장치가 연속되도록 만든 무대다. '레미제라블'에서는 세계 최대이자, 국내 최초인 하나미치 무대를 선보여 작품 속 이야기가 관객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했다. 자신의 바로 앞, 혹은 옆으로 퇴장하는 배우들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은 덤. 출입구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장발장과 자베르의 대립 등 벽면의 무대에서도 계속해서 장면이 이어지기 때문에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 무대의 진가는 앙졸라와 마리우스 등 학생들이 바리케이드를 치며 혁명을 부르짖을 때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눈앞에서 깃발을 휘두르고 양옆에서 소리치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현장감에 '떼창'의 힘까지 더해지면 관객으로선 절로 박수가 나올 만큼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선물 받게 된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양옆을 고루 쓰기 위해 더욱 열심히 무대를 오갈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열심인 배우들이 종종 안타까울 만큼 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건 작품의 흠이다. 음향은 극장의 문제니 차치하더라도, 가사 자체가 쉼 없이 이어져 극이 진행될수록 따라가기가 힘들다. 송스루 뮤지컬 특성상 노래로만 모든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니 흐름이 끊기지 않게 덧붙여야 할 내용이 적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강약 구분 없이 전달되다 보니 배우가 긴 가사를 전달하기 위해 숨을 참는 만큼 관객도 덩달아 호흡을 멈추는 느낌이다. 극 초반 장발장이 신부의 자비로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장면에선 대사를 놓치기 일쑤라 장발장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기 힘들 정도다. 장발장이 다른 인물보다도 등장 시간과 존재감이 압도적이라 특히 그렇다.

또, 극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조명. '레미제라블'은 몇 장면을 제외하곤 어두운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극의 흐름과 어울리긴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 무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극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학생들의 전투나 장발장이 죽는 장면에서 배우들의 얼굴이 흐릿해 눈을 찌푸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아쉽게도 보이는 정도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떼나르디에 부부의 이야기가 나올 때도 이전 장면보다 밝아진 것일 뿐 전체적으로 환한 느낌은 아니다. 극에 집중한 상태에서 눈에도 힘을 주다 보니 자연스레 피로감이 몰려온다. 열연하는 배우들과 웅장한 무대를 선명하게 봤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몇몇 아쉬움은 있지만,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분명 원작의 매력을 살리면서 이전 공연들과의 차별화도 이루어냈다. 한국인의 감성을 너무나도 잘 아는 배우들과 '레미제라블' 서울 공연만을 위한 하나미치 무대, 적절하게 번역한 가사까지. 한국 공연에서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말자.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는 메시지도 얻을 수 있으니 하루하루가 무료한 사람에게도 추천이다.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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