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에 남아 살았는데 뭐가 달라졌냐"

 

[문화뉴스 MHN 이민혜 기자] 제69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루마니아 출신 크리스티안 문쥬(Cristian Mungiu) 감독의 영화 '엘리자의 내일'이 10일 국내 개봉했다. 루마니아를 냉철하게 비판해온 그는 이아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교사와 저널리스트로 일했고 부쿠레슈티 영화학교에서 연출을 공부했다. 몇 차례의 단편 영화 제작 후 하우스푸어 청년들의 좌절과 서방을 향한 동경을 묘사한 장편 영화 '내겐 너무 멋진 서쪽 나라'로 감독 데뷔를 했으며, 낙태문제와 사회현상을 날카롭게 비판한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종교적 억압에 갇혀 비극적 상황에 부닥치는 과정을 그린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신의 소녀들'에 이어 2016년에 선보인 영화 '엘리자의 내일'은 한 가족의 비극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한때 루마니아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졌던 '로메오'(애드리언 티티에니)는 작은 마을에서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자 의사 연약한 아내 '마그다'(리아 버그나)와 영국 캠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앞둔 딸 '엘리자'(마리아 빅토리아 드래거스)와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바로 전날 엘리자가 괴한에게 폭행을 당하고 그 트라우마로 시험을 망치게 된다. 

아내 '마그다'는 몸 하나 지탱하기 버거워 보이고, 뇌압이 높은 '노모'는 세상을 떠날 듯 위태롭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디선가 날아오는 돌덩이는 집 유리창과 차창을 깨부수고, 불륜 관계인 학교 선생 '산드라'(말리나 마노비치)은 임신 소식까지 알린다. 풀어낼 수 없을 만큼 엉켜버린 현실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탈출구는 오로지 '엘리자'가 졸업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 유학을 가는 것이다. 그는 딸의 성적을 위해 교육 관계자에게 선처를 부탁하기도 하고 '경감'(블라드 이바노브)와 경감의 지인 '불라이'까지 얽히면서 비리와 부정이 오가기 시작한다. 루마니아 사회에서는 웃돈을 받고 진료를 해주기도 하지만 로메오는 돈에선 청렴하지만, 비리와 부정이 단지 호의이고 아량인 것처럼 모순을 보인다.

 
 

"때로 인생에선 결과가 더 중요하단다. 너에게 늘 정직하라고 가르쳤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아. 그들의 무기로 싸워야 할 때도 있어."

루마니아는 악명 높은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1918~1989)가 축출되고 1991년 총선과 함께 새롭게 출발했음에도 여전히 부패가 기승이다. 심각한 학연과 연줄, 촌지 등 미래가 없는 국가로 묘사가 될 정도이다. 사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은 한국 사회와 다를 것이 없다. 많은 부모가 자식들의 삶을 자신이 이루어내지 못한 꿈에 대리만족하기 위해 조언이라는 핑계로 말도 안 되는 교육과 간섭을 하기도 한다.

 

고된 현실 안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 수도 있겠다. 비참한 현실에서 탈출하려다 보면 도덕이나 정의는 무너지기도 한다. 영화 '엘리자의 내일'은 이러한 현실을 실감 나면서도 예술성 높게 그려낸다. 러닝타임 127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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