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50년도 아니고 100년도 아닌 70년을 왜 기념해야 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이 일곱 번 지나야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정부도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 토요일인 광복절을 대신해 14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짧지 않은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점차 광복의 그 날이 있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잊게 된 것 같다. 과거를 돌아볼 틈 없이 오늘 하루 사는 것에 급급해 광복절을 그저 '빨간 날'로 여기고 있진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광복절이 다가오면서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 행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를 계기로 역사를 조금씩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심심치 않게 마주하는 것이 있다. 바로 민족의 노래 '아리랑'이다.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 오랜만의 복귀 무대를 위해 선택한 곡도 다름 아닌 '아리랑'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주로 사용하는 피겨 스케이팅에서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의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0.1점 차이로 순위가 뒤바뀌는 아슬아슬한 경쟁에서 선곡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이 흐르고 김연아 선수가 빙판 위를 누비기 시작한 순간, 순위를 떠올린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넓은 경기장을 가득 채우던 흥겹고도 구슬픈 가락을 들으며 국민은 아마 그동안 김연아 선수와 함께했던 지난 세월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 순간 순위는 아무 의미 없었다.
비단 이때뿐만이 아니다. 아리랑은 오랜 시간 우리 민족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불러왔던 노래다. 일제강점기 국민의 삶과 사랑 그리고 투쟁의 역사를 담아낸 뮤지컬 '아리랑' 속 아리랑은 일제 치하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 때도, 광복되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거리 위로 쏟아져 나왔을 때도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아리랑을 통해 응축된 감정은 '아의 아리아'에서 절정에 이른다. 뮤지컬은 넘버(노래)로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전달한다. 때에 따라 춤이나 무용 같은 움직임이 더해지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배우의 입을 통해서다. 하지만 '아의 아리아'는 이 같은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다. 배우들이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기도 하고 차마 전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데, 인물의 감정이 극대화되는 이 장면에서 배우들은 '아'라는 한 단어로 사람들의 한과 괴로움을 표현한다.
고선웅 연출은 이 장면에 대해 "멋진 가사로 써넣을 수도 있었지만 극 중 상황에서 세 사람은 통곡을 넘어서 말도 안 나오는 상태였을 것"이라고 그 이류를 설명했다.
원수인 줄 모르고 치성과 결혼하는 수국이나 일본 앞잡이라고 마냥 욕할 수 없는 치성, 독립을 위해 동지를 모아 기약 없는 싸움을 하는 수익 등 수많은 인물의 아픔과 한은 어떤 말로 표현해도 모두 담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대사가 전혀 없는 그 장면은 놀랍게도 그 어떤 장면보다 훨씬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한다.
아리랑은 인류 보편의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곡조와 사설 구조로 되어 있어 함께 부르기가 쉽고 여러 음악 장르에 자연스레 수용된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특히 굳이 가사를 붙이지 않고 음만 흥얼거려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이 전혀 흐려지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 역사 곳곳에 아리랑이 스며있는 이유고 앞으로 아리랑을 조금 더 접대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