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들이 포토타임 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나무, 김종태, 김지현, 정연, 박은석, 이석준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관객의 사랑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행복하게 준비했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지난 2년간 매진을 기록하며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시카고 렉싱턴 호텔의 비좁은 방 661호에서 각각 1923년, 1934년, 1943년에 일어난 세 가지 사건을 그려내는 옴니버스 연극인 '카포네 트릴로지'는 코미디 '로키', 서스펜스 '루시퍼', 하드보일드 '빈디치'까지 총 3개의 장르로 구성됐다.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무대다. 무대 앞쪽에 객석이 정렬되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카포네 트릴로지'는 무대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백여 개의 객석만을 배치해 극 중 배경이 되는 렉싱턴 호텔의 답답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완성해낸다. 또한, 무대와 관객석 사이는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50cm 남짓의 간격만이 있을 정도로 가까워 마치 배우들과 함께 호텔 방 안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22일 오후, 대학로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배우들이 공연장 출입구까지 모두 활용해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으로 변한 이곳에서 하이라이트 시연과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 (왼쪽부터) 윤나무, 김지현, 이석준

연출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ㄴ 김태형 연출 : 나이키 경쟁 상대는 닌텐도란 말이 있다. 연극, 뮤지컬을 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연극의 경쟁 상대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관객들이 집에서 편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극장으로 굳이 발걸음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발걸음 한 관객들이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배우와 같은 공간에서 집중하고 체험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영국에서 이 공연을 봤을 때 그 밀폐된 공간에서 느꼈던 것들을 관객들과 함께 느껴보고 싶기도 했고.

첫 공연 이후 작품이 계속 매진되고 있다.
ㄴ 김태형 연출 : 매진이 되는 이유는 객석이 백석 밖에 안 돼서 그런 것 같다. (웃음) 회당 백 명만 보는 공연이지만 수 백 명, 수천 명이 봐도 만족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우리 공연이 특히 미디어의 일방적인 소통으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사랑받는 것 같다.

이 작품의 내용이나 장르는 기존의 것을 모방한 것이다. 장르의 특징이나 특색, 형식은 다른 작품에서 가져왔지만 생소한 공연장 형태와 이야기 전달 방식, 여러 가지 상징들이 적절하게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보고, 듣고, 몸으로 체험하고. 감각으로써 공연을 접할 수 있어서 더 많은 분이 찾아주시고 경험해주셨으면 좋겠다.

작품이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는데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설명해달라.
ㄴ 김태형 연출 : 소품이나 음악적 특색들이 연관 있다. 다른 공연의 캐릭터나 사건을 언급하거나 환기구에 숨겨놨던 독약을 세 공연에서 모두 사용하는 식으로. 세 이야기 모두 1923년부터 1943년까지의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피아인 '알 카포네'가 번성하는 시기부터 퇴락할 무렵까지 마피아란 거대 세력이 경제와 실권을 지배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그리고 있다. 폐쇄된 공간(호텔 방)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을 왜 한국에서 해야 하는지 고민도 있었다.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지금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이란 사회를 벗어나고 싶어 하고, 관피아란 말이 등장할 정도로 어떤 거대 세력이 실세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시대의 이야기지만 통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 공연을 준비하면서 원작을 어느 정도 각색했는지 궁금하다.
ㄴ 김태형 연출 : 원작의 반 이상을 새로 쓴 것 같다. 기존 대본을 번역하는 수준이 아니라 빨간 풍선을 비롯해 여러 상징을 새로 만들었다. 굳이 한국적으로 바꿨다기보다 공연을 좀 더 재밌고 흥미롭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또, 오리지널 공연은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공연되는 형태였기 때문에 세트, 의상, 음악 여러 가지 요소들이 지금보다 더 간결했다. 우리는 장기간의 공연이어서 대본이나 소품 등을 좀 더 세련되게 공들여서 만들었다.

각색하면서 많은 상징과 오브제를 추가했다.
ㄴ 지이선 작가 : 빨간 풍선이 대표적이다. 이 공간은 총이 일상적으로 난무하는 공간이다. 외부의 일상적이고 편안함을 상징하는 빨간 풍선과 총, 이 두 극단적인 상징이 충돌하면서 더 많은 의미를 가져올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서 풍선을 가만히 두는 것만으로도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세 가지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에서 빨간 풍선을 처리하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 로키에서 '롤라'가 풍선을 들고 호텔 방을 나가고, 빈디치에선 풍선만 방 밖으로 나가게 된다. 루시퍼에서 풍선은 터지고. 빨간 풍선이 세 가지 에피소드를 관통하면서도 각기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왼쪽부터) 김종태, 이석준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형식이 굉장히 독특한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ㄴ 이석준 : 대본 봤을 때는 무대가 이런 형식인지 몰랐다. 연극이라고 하셔서 참여했는데 무술 감독님도 계시고 안무 선생님도 계신다. 뮤지컬보다 더 힘들다. (웃음) 세 편의 작품이라고 해서 재밌을 줄 알았는데 연습하면서 쉬운 작품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양쪽에서 관객들이 쳐다보고 있어서 숨을 곳도 없고 기댈 곳도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관객들이랑 같이 호흡하니까 오는 시너지가 분명히 있다. 제가 주고자 하는 것보다 관객분들이 더 많은 것을 가져가시는 것 같다.

공연장이 협소해 연습 때와 달리 수정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ㄴ 김종태 : 액션 장면은 애초에 공간을 정해놓고 연습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하지만 상황 안에 들어와서 감정을 가지고 임하니까 연기를 하면서도 많이 무서웠다. (웃음) 주로 방어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 더 그랬다. 벽을 두드리거나 전화기를 부수는 식의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관객분들이 의외로 무서워하셨다. 코앞에서 그런 장면들이 펼쳐져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적절히 조절하고 있다.

   
▲ (왼쪽부터) 정연, 김지현

세 가지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성격이 모두 다르다. 가장 새로웠던 캐릭터를 꼽아달라.
ㄴ 김지현 : 로키의 '롤라' 역이 가장 새로웠다. 코미디를 담당하는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어서 연습하면서도 힘든 부분이 많았다. 다른 배우들, 특히 정연 배우가 너무 재밌게 잘 해줘서 굳이 내가 많이 웃기지 않아도 이분들로 충분하구나 생각했다. (웃음) 코미디란 장르가 힘들지만, 관객들이 웃었을 때의 쾌감이 엄청나다. 도전이었지만 재밌게 하고 있다.

에피소드별로 성격이 다른 세 캐릭터를 흡수해야 한다.
ㄴ 정연 : 30배로 힘들다. (웃음) 캐릭터가 한 공연 당 하나로 보기도 힘들다. 배우로서 고민하며 힘든 시간도 많았는데 공연 자체가 대본이 탄탄하고 각색을 워낙 잘해주셨다. 그리고 공연장이 주는 분위기가 배우가 연기하게끔 큰 도움을 준다.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보이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 (왼쪽부터) 윤나무, 박은석

어떤 에피소드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 궁금하다.
ㄴ 박은석 : 제가 주인공인 빈디치가 가장 매력적이다. 원작 대본에는 없는 상의 탈의 장면이나 운동 장면도 넣어주셔서 몸무게도 7kg을 뺐다.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가장 매력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웃음) 코믹 연기나 일인다역처럼 캐릭터가 확확 변하는 연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이라 걱정도 많이 했는데 동료 배우들이 잘 도와줘서 좋은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유독 몰입이 잘 되는 캐릭터가 있는지.
ㄴ 김종태 : 세 작품 모두 무대 안에서 편안히 하고 있다. 로키는 즐겁고, 루시퍼는 슬프고, 빈디치는 참혹하고. 무대 밖은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어야 해서 전쟁터 같다. (웃음) 이 작품은 배우보다 관객들이 몰입을 더 잘해주시는 것 같다. 세 작품 모두 우리와 동떨어진 시대, 사람 이야기지만 들여다보면 사람 사는 이야기는 결국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욕망에 얽히고 치정에 얽히는 인물들을 보면서 내가 맡은 역할 뿐만 아니라 모두 캐릭터한테 연민이 가는 것 같다.

   
▲ (왼쪽부터) 김종태, 정연, 박은석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한다.
ㄴ 이석준 : 안톤 체홉의 작품을 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웃음) 작품에 대한 고민이 행복했던 작품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만들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연극답고 제가 꿈꾸던 방식이어서 관객의 사랑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만큼 행복한 작품이었고, 직접 찾아와주셔서 이 공간 안에서 함께 즐기셨으면 좋겠다.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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