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강해인]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박열'은 근래 이준익 감독의 관심사가 어디를 향해있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도', '동주'에 이어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했다는 것('박열'은 영화의 시작부터 실제 인물의 등장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동주'에 이어 1900년대 초가 배경이라는 점 등을 통해, 아직 그가 일제강점기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준익 감독은 과거의 시간에서 발견한 인물과 그들이 만든 역사적 순간을 후대에 전하는 역사의 전달자 역을 충실히 하는 중이다.

 

 

이준익 감독은 역사 속에서 또 한 번 주옥같은 순간을 찾는 데 성공했다. 박열은 독특한 가치관과 행동으로 독립운동을 펼쳤고, 후미코와의 일화가 더해져 정말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그리고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이기에 영화화했을 때 관객이 흥미를 느낄 구석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주목할 만한 인물에 비해, '박열'이 주는 감흥은 이준익 감독의 예전 작품만 못하다. 대신, '박열'은 '박열'이란 인물에게 도취된 인상을 주는 영화다. 그래서 역사물이라는 장르 외엔 '사도', '동주'와 결이 많이 다른 영화다.

우선, 인물의 내적 갈등이 평면적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위인으로서 관객이 기대하는 '열사로서의 위대한  모습은 당연히 있지만, 그 외의 묘사가 아쉽다. 후미코(최희서)와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마저도 그 당시의 일화를 전해 듣는다는 것 외의 느낌을 받기 힘들다. 영화의 감성이 전작보다 건조해졌다. '사도'에서 봤던 영조의 시기심과 불안감, 그리고 '동주'에서 봤던 동주의 송몽규를 향한 열등감 등의 복잡한 정서를 느끼기 힘들다. 그런 특별한 심리와 관점이 '박열'엔 희미하다.

 

 

플롯의 배치도 평이해졌다. 자유로운 플래시 백을 통해 시간을 재조립하고 재해석하며 극에 리듬감을 줬던 '사도'와 '동주'에 비해, '박열'은 시간의 흐름을 거의 이탈하지 않고, 사건의 경과를 비춘다. 이런 무난한 전개 역시, 영화를 굉장히 건조하고 평범하게 만들었으며 위인전 혹은, 다큐멘터리적이다. 그래서 '박열'은 재연 그 이상의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이준익 감독은 그가 '사도'와 '동주'에서 도달한 역사극의 성취를 외면하고, '박열'을 연출했다. 할 수 있는데도 시도하지 않은 형식과 연출에 관해서는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아마도 이준익 감독은 '박열'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던 것 같고, 그 인물의 이야기만으로도 영화에 힘이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떠한 기교 없이 박열이란 인물을 대중에게 묵직하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이준익 감독이 선택한 정공법으로 영화의 매력은 다소 줄었다. 그 대신 박열이란 인물의 삶을 객관화해 알리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이번에 이준익 감독은 '박열'이란 영화 대신 '박열'이란 인물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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