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강해인]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읽어주는 남자를 줏대 없는 남자로 만든 영화'. '악녀'를 향한 씁쓸한 칭찬으로 글을 연다. 불과 며칠 전 '불한당'을 관람하고서 근래 한국 영화 중 가장 독보적인 스타일을 자랑한다고 기록했다. '가장 독보적인 스타일'이란 말을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 알았다면, 말을 아꼈을 텐데….

예고편부터 비범했던, '악녀'는 칸 출정에서 성공적인 항해를 마치고 국내 관객들 앞에 섰다. 대종상 신인 감독상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정병길 감독을 꿈의 무대로 인도한 '악녀'. 이번 영화는 액션 스쿨 출신의 정병길 감독만 할 수 있는 연출로 무장했고, 그 독보적인 스타일을 향한 기대 덕분에 설렘 충만했던 영화다.

 

 

'내가 살인범이다'를 통해 감각을 뽐낸 정병길 감독은 '액션'에 방점이 찍힌 연출자다. 그리고 '악녀'에서 그 방점만큼이나 주목받는 건, 액션의 주체 '김옥빈'이다. '악녀'는 한국 영화에 드문 여성 원톱, 더불어 여성을 액션의 주체로 위치시키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정병길 감독이 직접 여성 원톱 영화를 향한 벽을 깨보고 싶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을 정도로 의지가 강했다. 김옥빈은 뛰고 미끄러지고, 쏘고, 찌르며 인간 병기로 길러진 숙희 역할을 해낸다. 함께 출연한 김서형이 탐을 낼 저도로 여태 없던 매력을 가진 캐릭터였다. 한국도 '킬 빌'의 우마 서먼이 부럽지 않을 캐릭터를 얻었다.

그래도 역시, '악녀'의 최고 매력은 정병길이 시도한 액션의 참신함과 실험성에서 뿜어져 나온다. 예고편에서 짧게 지나간 1인칭 장면부터 말해야겠다. 작년 개봉한 1인칭 시점의 영화 '하드코어 헨리'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은 극도의 몰입감을 느끼게 한다. 게임을 생각하며 연출했다는 정병길 감독은 숙희에게 총과 칼을 쥐여주며 자신만의 특색을 더했다. 이런 게임 같은 연출은 초반부 영화의 공간 및 설정과도 연결되는데, 근래 비디오 게임에서 볼 수 있던 장면을 볼 수 있다.

 

 

'악녀'의 오프닝 시퀀스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장도리 씬을 1인칭으로 표현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밀도 있게 잘 설계되었다.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는 매끄러운 편집이 인상적이며, 현란한 카메라 워킹은 액션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이 오프닝은 칸 영화제에서 열렬한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이 엄청난 오프닝 외에도 정병길 감독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오토바이 액션 시퀀스는 정말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이미지로 채워졌다. 여기에 '내가 살인범이다'에서 보인 카 체이싱 장면은 더 업그레이드되어 세련됨과 멋을 더했다. '악녀'는 액션 시퀀스만으로 문제적 작품이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액션 장면을 유심히 보면 편집에서 뚝뚝 끊기는 한계를 보이는 지점도 있다. 정병길 감독이 시도한 액션 장면이 안정적이라 하기엔 틈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힘도 후반부로 갈수록 느슨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도전한 스타일의 독창성은 이 틈을 메우고도 남으며, 그 파괴력은 객석을 홀리기에 충분하다. 정병길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을 극한으로 몰고 갔고 칸이 반할만한 근사한 액션 영화를 내놓았다. 상투적인 '칸' 언급을 굳이 할 필요도 없다. '악녀'는 한국 액션 장르를 수 걸음 전진시킨, 죽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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