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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는 외국의 말이 국내에서 우리말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외국의 말은 우리말 이외에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모든 언어를 이르다 보니 종류가 대단히 많다. 게다가 사용하는 외래어도 중구난방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같은 낱말이라 하더라도 쓰는 이에 따라 표기가 달라서 그 표기를 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서로 다른 낱말로 오인하게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뜻도 모른 채 어감이 좋다는 이유로 남발하기도 하고, 뜻과 전혀 관계없이 사용하기도 하며, 뜻을 오해하고 엉뚱하게 쓰기도 한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뜻은 전혀 모르면서 문장을 이해하는 것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정부에서는 외래어표기법을 제정해 이 원칙에 따라 외국어의 한글식 표기를 통일하고 있다. 워낙 많은 양이다 보니 그 가운데 대표성을 띠는 언어들을 우선으로 하여 외래어 표준 표기를 정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말로 일관된 규칙을 정하기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게다가 자고 나면 새롭게 나타나는 외래어를 그날그날 표준 표기로 정한다는 건 현실에서 가능하지가 않다.

외래어 표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말로 해도 충분한 낱말을 외래어로 표기하려는 경향이 너무 지나치다 보니 외래어 홍수 사태라는 표현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말을 잠식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외래어를 남발하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 말로는 '한글의 세계화'를 부르짖으면서 한글 사용보다는 외국어 사용을 자랑스러워 하고 외래어 표현을 지식인의 전형으로 내세우려는 경향을 보인다. '한글의 세계화'를 내세운다면 국제 사회에 나가서도 우리말로 연설하고 외국인들로 하여금 우리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외국어나 외래어는 생경하다는 이유로 뭔가 그럴듯한 괜찮은 의미를 주게 한다. 하지만, 우리말로 옮기면 이른바 '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외래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말 폄하를 따지기 이전에 눈가림에 속한다. 한마디로 속임수다. '어감'이라고 해도 될 것을 '뉘앙스'라고 해서 '말의 느낌'이라는 본래의 뜻이 달라지는가? '국제'니 '세계'니 '지구촌'이라는 낱말도 '인터내셔널', '월드', '글로벌'이라고 해야 유식해지는가?

이러한 외래어 남발은 '천박한 유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세계에서 행사를 하고 국내에서 우리말을 올바로 쓰는 것이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이러한 첫걸음조차 걷지 않으면서 '한글의 세계화'를 내세운다면 세계인들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물론 외국어의 낱말을 우리말로 일일이 대체하기도 어렵다. 우선 그 작업을 하는 곳이 사실 없다고 할 수 있다. 있기는 있다. 국립국어원 주도로 언론과 학자들이 모여 외래어 표기를 정하는 정부언론외래어표기심의위원회라는 곳이다. 그러나 심의 대상인 외래어가 워낙 많다 보니 위원회에서 정할 수 있는 표준 외래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바닷물을 조롱박으로 퍼내는 수준이다.

외래어 표기는 그렇다 치고 외래어에 해당하는 우리말 발굴이나 대체 낱말을 고민하는 기관은 없다고 봐야 한다. 국립국어원이 노력을 하기는 하지만 자체 연구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가에서 지원이나 예산 등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국립국어원은 국가 공식 국어 연구원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외래어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으랴.

한편, 세계 주요 언어에 한해 현재 외래어표기법을 제정하고 있는 가운데 이 모든 외국어를 대상으로 표기법을 정한다면 이 또한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많이 따른다. 이 때문에 일부 외국어의 외래어는 언어 분류상에서 같은 계통상에 해당하는 기존의 언어군을 준거 틀로 적용하고 있다. 현재는 중동 지역 언어군의 표준 외래어표기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래어표기와 관련해 많은 문제가 제기된다.

우선 상식에서 벗어나는 불만의 목소리다. 외래어는 현지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서 왜 현지에서 발음하는 것과 다르게 외래어를 표기하느냐는 목소리다. 예를 들면 'orange'는 '오렌지'가 아니라 '오뤤지', '어뤤지'의 발음이 나므로 이런 식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말을 들 수 있다. 이는 소리로 나는 말과 글로 표기하는 문자화의 차이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외래어표기는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이지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기본 원칙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맞게 표기하는 것이다.

우리말에도 이런 현상은 많다. '가치'와 '같이'를 예로 들어 보자. 이 두 낱말을 소리만 따지만 둘 다 '가치'가 된다. 소리가 이렇게 나온다고 '같이'를 '가치'라고 표기할 수는 없다. 외래어도 마찬가지로 표기법이기 때문에 소리 위주의 표기가 아니라 글로 나타낼 때의 원칙이다. 이는 일반인이라면 웃고 넘어갈 일일 수도 있지만 그나마 지식인층에 속하거나 고위 관리 내지 기업의 고위층 등 이 사회에서 지도층에 있는 위치라면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고 나면 쏟아지는 외래어를 일일이 표준 표기로 정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외래어 사용 자제다. 외래어를 사용한다고 본질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의 유식함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유식하다면 외래어가 아니라 우리말을 제대로 쓰고, 외국어도 제대도 써야 하는 것이 이른바 지식인의 바른 자세다. 외래어를 남발하는 것은 외국어를 좀 안다고 자랑하는 치기 어린 행동이다. 그렇다고 외국어를 아주 잘 안다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 든다.

[글] 김병동 (가갸소량 교수· 본지 한글 자문위원) 
[정리] 문화뉴스 홍진아 기자 hongjina@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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