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시옷 규정과 합성어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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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 오래 동안
길과 둘길, 행 길과 행
등굣길/하굣길 → 등/ 길 

사이시옷 규정은 사람들이 많이 어려워하는 우리 문법 가운데 하나다. 규정에 따르면 ‘순우리말+순우리말’, ‘순우리말+한자말’, ‘한자말+순우리말’ 형태의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가 날 때 등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실제 적용에서는 많이 어려워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적용하기에 혼란을 겪는 것이다. 바로 띄어쓰기 규정과 합성어의 조건이다. 즉 사이시옷을 적용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기 전에 띄어쓰기 규정을 철저히 지킨 상태에서 합성어로서 자격이 있느냐 여부부터 살펴봐야 한다.

사이시옷은 두 단어를 하나의 단어로 만들 때 사이시옷 규정에 적용되는 현상이 나타날 때 사용된다. 즉 합성어가 될 때이고, 합성어가 된다는 것은 두 단어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붙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일상에서 우리는 띄어서 써야 할 단어를 마치 하나의 단어처럼 알고 쓰는 경우가 많다.

우리 어법에 따르면 모든 단어는 띄어서 사용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띄어쓰기 규정을 무시하면서 두 단어를 하나로 묶어 사용하다 보니 사이시옷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오랫동안'이란 단어도 사실은 '오래 동안'이 올바른 표현이다. '오래'와 '동안'을 붙이게 되면 뒷말 '동'이 '똥'으로 발음되면서 경음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사이시옷을 적용해야 하는 줄 알고 '오랫동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성어의 조건은 두 낱말를 하나로 할 때 크게 각각의 단어가 원래의 뜻에서 벗어나 새로운 뜻을 나타낼 경우, 축약 형태로 나타날 경우의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원칙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오래+동안'이라는 하나의 단어 형태인 '오랫동안'으로 잘못 알고 쓰는 것이다.

'오래+동안' 형태인 '오랫동안' 또는 '오래동안'은 합성어로서 새로운 고유의 뜻을 취하지 못하고 단순히 '오래'와 '동안' 각각의 뜻으로만 이뤄진 말이어서 하나의 낱말로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축약 형태로 이루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합성어로서의 자격이 없다. 따라서 '오래 동안'이라고 띄어서 써야 한다.

낱말을 띄어서 써야 한다는 건 기본이지만 전문용어나 고유명사 등에서는 특별한 경우로 허용된다. 또 합성어에는 전문용어나 고유명사처럼 붙여 쓰는 낱말이 있기도 하지만 '오랫동안'이라는 단어가 전문용어나 고유명사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 표기는 잘못된 것이 된다.

요즘 '둘레길/둘렛길'이 많이 생기고, 왕이 나들이할 때 '행차길/행찻길'이라는 단어도 눈에 띈다. 그런데 '둘레+길'이나 '행차+길'이 되면 사이시옷 현상이 발생해 각각 '둘렛길', '행찻길'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둘렛길'이나 '행찻길'이 '둘레'나 '행차'와 '길' 각각의 의미를 상실하고 '둘레+길', '행차+길' 형태가 될 때 새로운 의미를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붙여서 쓸 수 없는 말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를 붙여서 쓰다 보니 사이시옷 현상이 발생하고, 붙여쓰기 원칙을 생각하지 않은 채 사이시옷 규정만 따짐으로써 '둘렛길'과 '행찻길'이라고 표기하게 된 것이다. 이는 잘못이다.

그러나 고유명사로서 '○○둘레+길', '××행차+길'로 붙여서 써야 할 때는 각각 '○○둘렛길', '××행찻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전에 잘못 올라와 있는 사이시옷 적용 단어로는 '등쿗길', '하굣길'을 들 수 있다. 이 낱말들을 거론한 이유를 알 것이다. 바로 띄어쓰기 규정을 무시한 채 붙여서 쓰다 보니 하나의 단어로 오해하고, 이로 말미암아 사이시옷 현상이 생김으로써 '등쿗길'과 '하굣길'로 잘못 표기한 사례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교+길'과 '하교+길' 형태가 '등교'나 '하교'와 '길' 각각의 의미를 잃고 새로운 뜻으로 사용되는 말인가? 합성어의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낱말이다. 따라서 '등굣길', '하굣길'은 '등교 길'과 '하교 길'과 같이 띄어서 써야 올바르다. '등굣길', '하굣길'은 사이시옷 규정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주장한 내용일 뿐이다. 이를 받아 들여서 사전에 표제어로 등록한 것도 아무 생각 없이 올린 것이다.

[글] 김병동 (가갸소량 교수· 본지 한글 자문위원) 
[정리] 문화뉴스 홍진아 기자 hongjina@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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