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가을 뒤 덮쳐오는 겨울의 찬바람 같은 인생의 무상함
故 최인호 작가의 10주기, 2005년 공연 이후 19년 만
2월 25일까지 한진아트센터에서 공연

사진=에이콤 제공 / [리뷰] '겨울나그네' 연륜 배우·앙상블의 활약, 그러나 너무 아쉬운 시대착오적 서사
사진=뮤지컬 '겨울나그네' 포스터 / 에이콤 제공

[문화뉴스 김예품 기자] 우리 인생은 항상 원하는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다. 종이에 그은 볼펜 선 위로 안전하게 정해진 길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뮤지컬 '겨울나그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성숙한 가을과 뒤 따라오는 인생의 혹독한 겨울같은 모습을 담았다. 

故최인호 작가의 장편소설 '겨울나그네'는 1983년의 소설작품을 1986년에 영화로, 1990년애 드라마로, 1997년에는 마침내 뮤지컬로 옮겼다. 뮤지컬 '겨울나그네'는 故 최인호 작가의 10주기를 맞아 2005년 세 번째 시즌으로 막을 내렸던 원작을 각색해 다시 무대 위로 올랐다. 감독에는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를 성공시킨 에이콤 대표 윤홍선이, 예술감독에는 뮤지컬 '영웅'의 연출을 맡았던 윤호진이, 연출에는 김민영이 맡았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의대생 한민우와 성악과 정다혜는 캠퍼스에서 마주친 뒤로 갑작스레 사랑에 빠진다. 두 청춘이 사랑의 설렘을 만끽하는 와중 민우는 아버지를 잃고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민우는 방황에 빠지고, 비어버린 다혜의 옆자리에는 민우를 친동생처럼 아끼던 선배 박현태가 지키며 옆을 맴돈다. 한편, 자기 핏줄을 찾으러 간 민우는 클럽 '나이아가라'에서 매혹적인 여인 제니를 만나고 마약과 술에 빠지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사진=뮤지컬 '겨울나그네' 공연 장면 / 에이콤 제공
사진=뮤지컬 '겨울나그네' 공연 장면 / 에이콤 제공

극의 초반에서 대학 캠퍼스와 클럽 '나이아가라'를 배경으로 하는 앙상블의 무대는 척척 맞는 호흡을 자랑한다. 대학 캠퍼스에서는 청춘의 활기참을, '나이아가라'에서는 옛 클럽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일제히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앙상블의 안무와 풍부한 표정이 화려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2024년 관객에게는 조금 올드한 이야기다. 술집 마담의 '사생아'였던 민우, 아들 민우에게 자애롭지만 빚에 쫓기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아버지, 민우와 사랑을 약속하며 오매불망 몇년간 기다리기만 하는 다혜까지. 그래도 1980년대의 원작 '겨울나그네'의 캐릭터를 시대 흐름에 맞게 일부분 수정한 노력이 보인다. 

장편인 원작을 뮤지컬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략으로 인해 급전개는 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민우와 다혜가 사랑에 빠지는 부분에서는 배우들이 갑자기 큐피드의 화살을 맞았나 싶었으나, 뮤지컬 '겨울나그네'만의 개성이리라 생각된다. 

사진=뮤지컬 '겨울나그네' 공연 장면 / 에이콤 제공
사진=뮤지컬 '겨울나그네' 공연 장면 / 에이콤 제공

뮤지컬 '겨울나그네'를 완성한 데에는 특히 연륜 배우들과 앙상블의 몫이 아주 컸다. 제니 역의 여은은 화려하고 애절한 두 면을 놀랍도록 완벽하게 소화했고, 아버지 역의 서범석은 호소력있는 목소리로 관객들의 마음을 만진다. 또 하버트의 김상현과 로라킴 역의 오진영이 능숙하고 매우 잘 다듬어진 연기로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무대를 이끌어간다. 무대를 채워 공간감을 부여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뮤지컬의 꽃, 앙상블의 호흡에도 박수를 남기고 싶다. 

다혜 역의 한재아는 그시절 성악과 3학년 대학생만의 풋풋하면서도 성숙한 연기로 관객들까지 가슴설레게 만든다. 노래도, 연기도 흠잡을 곳이 없다. 민우 역의 이창섭은 역시나 단단하고 감성적인 목소리로 공간을 울린다. 뮤지컬 배우로서의 연기와 표현, 감정과 몸짓은 무르익어가는 단계인 듯하다. 현태 역의 진진은 애잔한 서브남주 연기를 톡톡히 하며 관객들의 웃음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자아낸다.

한편, '겨울나그네'는 오는 2월 25일까지 한진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한민우 역 이창섭, 인성, MJ, 렌, 박현태 역 세븐, 려욱, 진진, 정다혜 역 한재아, 임예진이 출연한다. 

문화뉴스 / 김예품 기자 press@mhns.co.kr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