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니버설발레단의 '그램 머피의 지젤' 연습 모습이 20일 공개됐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지젤'의 원작 스토리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 원작과 가깝게 가면서 다른 세상 속을 상상하게 됐다. 그러기 위해 새로운 움직임과 동작으로 '지젤'을 재탄생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아야 했다. 관객들이 '지젤'이라는 원작을 새로운 영혼과 마인드로 바라보는 바람이 있다. 원작도 여러 작곡가의 작업이 있었고, 안무도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안무자가 같이 작업하면서 지금의 완벽한 작품으로 만들어지게 됐다."

무용수들이 우리 북 리듬에 맞춰 날갯짓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추는 무대는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쭉 사랑을 받고 있는 발레 명작 '지젤'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오는 6월 13일부터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호주 안무가 그램 머피와 함께 '그램 머피의 지젤'을 공개한다. 그램 머피는 호주 발레단과 영국 버밍엄 로열 발레단을 거쳐 호주 시드니 댄스 컴퍼니 예술감독을 31년간 역임한 명 안무가다. 한국에서 처음 공연을 하는 그가 본인의 첫 작품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호주 발레단을 위해 만든 '백조의 호수'(2001년) 공연을 보고 그램 머피의 매혹에 빠졌다고 했다. 이 작품은 영국의 다이애나 비, 찰스 왕자, 숨겨진 연인 카밀라의 삼각관계를 과감히 입혀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극적 연출도 화제를 모았기 때문에 그가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세계 초연으로 안무할 '그램 머피의 지젤'이 궁금해진다.

'지젤'은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인 고티에의 대본과 아돌프 아당의 음악으로 완성된 로맨틱 발레의 대표작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젤'이 '알브레히트'를 만나 사랑을 하다가 배신을 당한다는 기본 줄거리를 제외하고 음악, 안무, 세트, 의상 등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실상 새로운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20일 오전 서울시 광진구에 있는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그램 머피의 지젤'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기자간담회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을 비롯해 안무가 그램 머피, 자넷 버논 조안무가, 유병헌 예술감독이 참석했다. 그램 머피는 기자간담회 진행에 앞서 리허설 영상 상영 소개를 하면서 취재진과 인사했다.

   
▲ 안무가 그램 머피(왼쪽)와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오른쪽)이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소개에 앞서 "지금은 작품 안무의 뼈대만 앙상하다. 그래서 근육과 살을 덧붙이는 작업이 남아있다. 이 영상을 보여준다고 했을 때 두려웠다. 그래도 이렇게 미흡한 모습이지만 보여드리면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시점에선 연습의 50% 정도가 완성됐고, 주어진 음악으로 안무 스케치를 모두 진행했다. 1막 50분, 2막 30분의 안무가 완성됐다. 무용수들이 조금씩 나오는 인물들의 역할에 대해 내면 세계에 끼워 맞추듯이 부분부분 만들어야 끝까지 가서 무용수들이 이 작품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 수 있다"고 현재의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영상 소개와 간단한 작품 설명 후 질의응답 시간과 연습실 공개 행사가 진행됐다. 작품이 변한 것에 대해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했으면 좋을지, 원작과 '그램 머피의 지젤'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등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다양한 내용을 재구성했다.

음악을 바꿔서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기보단 창작이 된 것 같다.
ㄴ 그램 머피 : 명작을 해석하면서 다른 음악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작 '지젤'과 그 안무가 워낙 강하게 관객의 머릿속에 풀로 밀착된 것처럼 느껴진다. 관객도 새로운 것을 상상해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관객으로 하여금 이번에 새롭게 작곡된 음악은 강하기 때문에 '지젤'처럼 눈을 감고 예전의 주제를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기존의 '지젤'을 생각할 수 있게끔 하는 장면이 두 장면 있다.

자넷 버논 : 작품을 만들면서 인물 세 명인 '베르테', '울탄', '미르테'에게 동화 속에 나오는 캐릭터보다 현실적인 삶을 부여하고 싶었다. 음악을 바꾸게 된 계기 중 하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춤으로 하고 싶었다.

그램 머피와 자넷 버논의 관계가 궁금하다.
ㄴ 그램 머피 :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넷 버논과 저는 호주 발레 학교에서 10대 시절부터 만나게 됐다. 그래서 19살에 첫 작품을 만들었는데, 자넷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나의 뮤즈이자 동반자다.

자넷 버논 :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고 같이 작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첫 씨를 심는 순간이다. 굉장히 먼 여정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 작품을 만드는데 2년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싸우기도 하고 토론도 한다. 부안무가로 일하는데, 그램과 하나가 되어서 작품을 만든다. 그래서 시작부터 끝까지 연습실에서 매일 같이 있으면서, 무대에 오르는 순간까지 지낸다.

그램 머피 : 안무가로 있기 때문에, 작품 밖에서 작품을 지켜보는 것이 필요한데 자넷이 그런 역할을 한다.

   
▲ 조안무가 자넷 버논이 취재진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원작과 다른 내용이나 캐릭터의 다른 특징이 있다면?
ㄴ 그램 머피 : '지젤' 원작을 보면서 '윌리'(결혼하지 않고 죽은 처녀의 영혼)들이 왜 그렇게 '젠틀'하냐는 생각에 '윌리'들이 좀 더 악령의 모습으로 변화를 시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심정이 사랑의 반대편이 복수인데, 2막에서 안무적으로 '윌리'들을 강렬하게 표현한 것이 그 이유다. 악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 속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지젤'도 원작에선 서정적이고 소박한 캐릭터로 나오는데, 나의 '지젤'에선 좀 더 강렬하고 의지가 강한 여자로 표현됐다.

자넷 버논 : 원래 '지젤'이 심장이 약한 인물인데, 그것도 생각했다. 하지만 안무가 워낙 어려워서 심장이 약한 사람은 할 수 없다.

그램 머피 : 이 작품에선 '윌리'의 여왕이자 복수의 화신 '미르테'와 '지젤'의 어머니이자 크리스탈의 수호자 '베르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작에서 궁금한 점은 '지젤'의 부모는 누구이며, 그 부모의 사연은 어떤 것인가가 있었다. 어떤 이유로 죽어서 '미르테'가 복수에 화신이 됐는지 항상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미르테'와 '베르테'의 스토리를 추가했다. 두 여인이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는 설정을 넣었다. '지젤'의 아버지를 '울탄'으로 지어봤다. 두 여인이 사랑하는 '울탄'이 '베르테'를 사랑하게 되자 자살을 하고 복수의 심장을 가진 '미르테'가 등장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이 작품에선 '베르테'의 역할도 두드러진다. 흥미 있는 캐릭터로 발전한다. 원작과 다르게 1막과 2막 모두 등장한다. 그리고 결국엔 자기 남편과 딸을 죽인 '미르테'를 완벽하게 복수하고 없애버리는 사람의 역할로 등장한다. 여기에 '힐라리온'을 부각했다. 어리석고, 질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젤'을 짝사랑하는 남자를 살을 붙여 표현하고 싶었다.

'울탄'이 '베르테'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나?
ㄴ 그램 머피 : 사람이 사랑할 땐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역시 '베르테(Berthe)'를 선택했을 것 같다. 이름이 지구(Earth)에 가깝고, 심성적으로 따뜻하고 풍부한 여자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미르테'는 '베르테'보다 부족의 정신적 지주와 같다. 그런 점에 '울탄'이 매력을 느끼고 '베르테'를 선택한 것 같다.

   
▲ 안무가 그램 머피가 무용수들의 연습을 지켜보고 있다.
음악을 영화 음악가인 크리스토퍼 고든에게 맡겼다.
ㄴ 그램 머피 : '마오의 라스트 댄서' 등 영화의 음악을 작곡했다. 같이 작업하면서 굉장히 서로 마음이 맞는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정을 많이 갖고 있는데, 그 중 영화 음악을 가장 많이 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데 큰 공감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중요 장면과 작품, 춤의 길이 타이밍에 관해 이야기를 한 후 작곡가에게 자유롭게 맡겼다. 너무 많은 제한을 두면 작곡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상에 대한 포인트는 어떻게 줬는가?
ㄴ 그램 머피 : 원작이 독일을 배경으로 했는데, 공주와 왕자의 세계를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세계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달라고 디자이너에게 요청했다. 원작 '지젤'처럼 귀족사회, 농민사회가 나뉘어 있지 않고 동등한 가치를 가진 세계이지만, '지젤'의 세계는 현실적이고 자연과 가까운 재밌고 소박한 세계라면 '알브레이트'의 세계에선 더 물질적, 미래적, 기술적인 우주의 세계에 온 것 같지만 딱딱한 세계를 표현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알브레이트'의 세계가 굳어있어서 영혼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지젤'을 만나게 되고 사랑한다.

'지젤'이라는 원작으로 모든 것을 바뀐다. 꼭 '지젤'이라는 이름을 쓸 필요가 있었나?
ㄴ 그램 머피 : 뭔가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서, 명작을 존경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또한, 홍보적인 측면에서 '지젤'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명작들도 현대인을 위해 재접근하면서 젊고, 새로운 관객에게 명작을 소개할 수 있는 이해를 도울 수 있듯이 '지젤'이라는 명작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 세상에 맞게끔 재해석하고 싶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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