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김민경 기자] 2016년 5월 17일 이후.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고, 나의 세계는 어떤 변화를 겪어야 했는가.

지난해 5월,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라는 가해 동기를 밝혔다. 또한 가해 범위를 '여성'으로 한정시킨 이유에 대해서는 '평소에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답했다.

사건 보도 이후, 수많은 여성들은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 주장하며, 스스로 피해자가 되지 않는 '우연을 겪었다'라는 표현으로 분개와 애달픔을 게워냈다. 곧이어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각종 차별의 일상이 곳곳에서 고백되어졌다. 이후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으로 치부하며 인식하지 못했던 가장 보통의 사회 현상에 대입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됐다.

문화예술계 또한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묵살되거나 묵과해야만 했던 문제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본지는 5.17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맞아, 미술계의 페미니즘을 작품으로 살펴본다.

미술과 미술제도는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페미니스트들은 성적 불평등과 여성의 억압, 그리고 이것이 문화와 역사를 구성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페미니즘 미술사학자들은 여성이 작품 제작의 기회를 박탈당했고, 여성의 작품들이 성차별적으로 평가되었음을 밝히고자 했다. 또한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여성의 지위가 미약한 이유와 여성 미술가가 남성 미술가에 비해 경력을 쌓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성과 젠더를 연구하는 페미니즘 미술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여성해방운동의 영향이 컸다. 여성해방운동은 사회와 사회제도 전반에 공공연히 혹은 은밀하게 퍼져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밝혀냈다. 이들은 여성이 발언권을 가져 사회의 공적 영역에 전면적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을 주도적으로 꾸릴 수 있도록 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평등을 주장했다. 그들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고 동등한 권리와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는 사회를 원했다. 그러나 여성해방운동은 사회적 가치의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할 때 정점에 다다랐다. 이들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회에는 여전히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이 기존의 가치들이 사회적, 정치적 삶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는 새로운 사회로의 근본적인 재편성이 필요했다. 

미술 작품 속에 나타난 젠더 이슈들은 어떤 것일까? 한 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 프랑켄탈러, 마드리드 스케이프(부분), 1959년, 255 x 403cm, 볼티모어 미술관

추상표현주의화가 '헬렌 프랑켄탤러'는 1950년대 아방가르드 그룹의 일원으로 활발히 활동한 중요한 위치의 화가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항상 그의 작업을 자연과 연관시켜 직관적이라고 평가하거나 물의 흐름과 같은 자연적 메타포로 비유했다. 다시 말해 프라컨탤러의 작업을 전형적인 여성적 작품으로 보았던 것이다. 과연 지적인 이 작품을 남자 화가가 그렸다면 그런 평가를 받았을까?

▲ 에드가 드가, 운동하는 스파르타 젊은이들, 캔버스에 유채, 1860년경, 109.5 cm x 155 cm

이 작품은 뒤에 중년의 여성과 남자들과 앞의 소년과 소녀로 시각적으로 구성되었다. 이 소년과 소녀들의 미래가 뒤의 어머니 아버지 뻘의 모습처럼 될 것을 암시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리 안정적이지만은 않다. 소녀들은 후경의 성숙한 여성들보다는 오히려 소년들의 신체와 더 비슷해 보인다. 소년들 역시 뚜렷하지 않은 신체와 생식기의 형태로 인해 성숙한 남성들보다는 소녀들과 비슷해 보인다. 무엇이 과연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가? 어쩌면 성이 자연적인 것이 아닌 체계와 연관이 되있는 것은 아닐까? 남성과 여성의 이분구조를 붕괴시키는 이 그림이 많은 의문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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