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배우 최지혜, '라흐헤스트' 변동림 役 열연
"이상 보내는 동림, 나라도 그럴 듯...믿음 있기에"
"눈물 때문에 힘든 작품...많이 운다고 좋은 연기는 아냐"
오는 11월 13일까지 드림아트센터 2관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문화뉴스 장민수 기자] 뮤지컬배우 최지혜가 뮤지컬 '라흐헤스트'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지난 2020년 뮤지컬 '광주'로 데뷔한 후 이제 겨우 3년 차.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신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한 감정 표현과 탄탄한 가창력을 뽐내고 있다.

'라흐헤스트'는 이상과 김환기, 두 천재의 아내이자 스스로도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김향안의 삶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최지혜가 맡은 변동림은 김향안의 어린 시절 이름이다. 극 중 동림은 시인 이상과 열렬히 사랑하고, 아프게 이별한다. 그런 동림을 최지혜는 "내면이 단단한 인물"로 정의했다.

"동림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도 그 앞에서는 씩씩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죠. 계속 눈물이 날 것 같아도 참게 되고요. 그런 노력들을 보시는 분들이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동림으로서 어떻게 해야 더 위로를 줄 수 있을지 중점을 뒀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동림이 향안에게 '나 슬프지 않아'라고 해요. 그게 관객분들께 와닿으려면 (동림이) 충분히 아픈 과거로 존재해야 해요. 충분히 기뻐하고 슬퍼하고 또 아파하고. 매 순간 내가 충실해야 그게 잘 쌓이겠죠. 그리고 후련하게 '나 슬프지 않아. 괜찮아'라고 했을 때 매끄럽게 잘 와닿을 거라 생각했어요"

사진= 뮤지컬 '라흐헤스트' 공연 장면 / 홍컴퍼니 제공
사진= 뮤지컬 '라흐헤스트' 공연 장면 / 홍컴퍼니 제공

극중 동림에게 가장 안타까운 상황을 꼽으라면 여지없이 이상과의 이별을 결정하는 장면일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이상은 자신의 꿈을 좇아 동림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동림 입장에서는 마냥 응원하기만은 어려운 상황. 최지혜 역시 동림의 선택에 공감하면서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저도 보낼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근데 동림처럼 똑같이 너무 아프고 힘들 것 같아요. 무대에서 맨날 '그래요, 가요'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매번 '설마, 같이 가자고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근데 진짜로 가면 마음이 무너져요. 그럼에도 이상과의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털고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근데 사실 그냥 보면 너무 나쁘죠"

'라흐헤스트'는 김향안과 변동림의 삶이 역순으로 전개된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인물이 한 무대에서 이야기를 펼쳐낸다. 무대 위 마주하는 또 다른 나를 연기하고 싶지는 않을까 궁금하다.

"김향안으로도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리허설 때 향안의 연기를 보는데 '나도 저런 거 해보고 싶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연출님께 '10년 뒤에 다시 향안으로 섰으면 좋겠다'라고 슬쩍 말하기도 했죠(웃음). 동림과 향안이 다른 건 경험의 차이인 것 같아요. 처음 겪는 아픔과 겪어본 뒤의 아픔. 그게 잘 만나서 위로가 됐을 때 메시지가 전달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뮤지컬 '라흐헤스트' 포스터 / 홍컴퍼니 제공
사진=뮤지컬 '라흐헤스트' 포스터 / 홍컴퍼니 제공

'라흐헤스트'는 상당히 감성적인 작품이다. 무대 위 네 명의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에서 끌어낼 수 있는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낸다. 하지만 대놓고 감정의 동요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섬세하게 절제하면서 관객들을 울린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제 막 3년 차에 들어선 신인 배우에게는 더더욱. 그럼에도 최지혜는 부족함 없는 실력을 선보이고 있다.

"무대 위에서 이렇게 많이 우는 역할은 처음이에요. 전 매 순간 느껴지는 걸 무대에서 다 쏟아내려고 해요. 평소에도 눈물이 좀 많아요. 공감도 잘 하고. 근데 제가 많이 운다고 좋은 연기는 아니잖아요. 노래는 해야 하는데 눈물, 콧물이 막 나서 그 순간 빨리 생각을 바꾸려고 하죠. 근데 그러다가도 향안 언니 눈을 보면 다시 감정이 올라와요. 그게 제일 힘들어요"

"극 마지막에 하는 불어 발음도 어려워요. 연출님이 동림이 프랑스어 공부를 한 인물이니까 신경 써서 연기해달라고 하셨거든요. 저희 작가님 지인분이 녹음해서 보내주셔서 다 같이 연습했어요. 언니들은 잘하는데 전 어렵더라고요"

사진=뮤지컬 '라흐헤스트' 공연 장면 / 홍컴퍼니 제공
사진=뮤지컬 '라흐헤스트' 공연 장면 / 홍컴퍼니 제공

최지혜는 어린 시절 피아니스트가 꿈이었지만 우연히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를 본 뒤 뮤지컬배우로 꿈을 정했다고 한다. 보자마자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라고. '라흐헤스트' 속 음악은 서정적이고 감미롭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는 최지혜의 음악 취향과도 딱 맞아떨어진다. 여러모로 그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런 그에게 이번 작품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인터뷰를 하는 동안 최지혜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위로'였다.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도, 작품을 통해 전하고픈 메시지도, 무대 위에서 얻게 되는 감정도. 

"요즘 대학로에 없는 작품이잖아요. 따뜻하고 잔잔하고 섬세한 작품. 위로가 될 것 같았어요. 누구나 생각하기 싫은 상처들이 있잖아요.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의 과정 안에 소중한 순간이었고, 그게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됐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꺼내기 싫은 상처나 아픔으로만 남아있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을 매 공연마다 하죠. 보시는 분들한테도 그런 메시지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제일 좋아하는 대사도 맨 마지막에 '너의 느낌표를 믿어'라는 말이에요. 그게 가장 이 작품과 동림이 본질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어요. 가장 단순하지만 명쾌하다고 느껴졌어요. 네 생각을 믿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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