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작품에 녹아드는 경험하지 못한 역사
3월 18일(금)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

[노트르담드파리] 공연사진_성당의 종들(Les cloches)_아크로밧 (제공.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성당의 종들(Les cloches), 아크로밧/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문화뉴스 문수인 기자] <노트르담 드 파리>는 15세기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대를 그린다. ‘백년전쟁’, ‘페스트’ 등으로 빚어진 혼란과 황폐 속에서 봉건귀족과 교회가 타락을 거듭함에 따라 중세 사회는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르네상스의 기운이 퍼지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사회가 아니었으며, 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던 사회였다. 귀족이나 성직자들은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았다. 민중의 신앙생활을 지배했고, 국왕이나 제후 및 기타 신도들로부터 토지를 기증 받아 대토지 소유자가 되었으며, 토지와 주민들을 지배하게 되어 세속적인 봉건 제후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더 가난해진 민중은 변두리로 완전히 내몰린다.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기도 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죄 없는 사람들을 ‘이단’이라 몰아 끔찍한 방법으로 고문했다. 집계된 수만 5,000만 명이라면 얼마나 많은 목숨이 로마 가톨릭, 그 손아귀에서 잔인하게 죽어나갔을까.

그렇게 중세시대의 ‘마녀’는 ‘백년전쟁’과 ‘페스트’를 겪고 난 뒤 사회적 혼란의 책임을 회피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에 집중 시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했던 지배계층이 만들어낸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방인의 아베마리아(Ave Maria paien), 엘하이다 다니(에스메랄다)/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방인의 아베마리아(Ave Maria paien), 엘하이다 다니(에스메랄다)/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시대에 유럽에 처음으로 집시가 등장할 만큼 많은 유랑민들이 생겨났다. 프랑스 파리에도 많은 집시가 몰려들었고, 이들은 노트르담 근교에 모여 살았다.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에 집결한 그들의 음악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당시 주교(뮤지컬 속 프롤로)는 자신의 직속 바티칸 수도에 있는 로마 가톨릭과 싸우는 등, 프랑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하나의 외교관의 위치였으며, 상당한 권력도 쥐고있었다. 

중세시대가 시작됨과 동시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힘은 점점 강화되어 종국에는 하나의 세력을 이룰 정도로 강성해졌다. 이렇게 막강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생겨났으며, 여러 채의 큰 성당을 지으면서 돈이 부족해진 로마 가톨릭교회는 면죄부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마녀(La sorciere), 안젤로 델 베키오(콰지모도), 로랑 방(프롤로)/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마녀(La sorciere), 안젤로 델 베키오(콰지모도), 로랑 방(프롤로)/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부르주아라는 제3계급의 등장, 영국군의 침입에 대항하여 일어선 ‘로를레앙의 소녀’ 잔 다르크의 출현은 농민의 자각으로 상징되어 겨우 싹트기 시작한 프랑스인의 민족의식과 가톨릭 신앙을 구체적으로 승화시켜 민족국가로서의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브르타뉴, 오베르뉴 등지가 왕역에 편입된 15세기 말에는 현재의 프랑스와 거의 비슷한 영역이 통일되었고, 16세기에는 다른 국가에 앞서 강대한 통일국가를 형성하였다. 그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사회, 문화의 조직 및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빅토르 위고는 강력한 휴머니즘의 소유자였다. 젊은 시절에는 열혈 왕당파로 행세하며 왕실과의 친분을 자랑했지만, 결국에는 열혈 공화파가 되었다. 결국 위고는 자신의 작품이 얼마나 정치적인지, 그 영향력을 깨달았을 것이다. 

소설 원작의 <노트르담 드 파리>가 쓰인 1831년 프랑스는 7월혁명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 권력을 회복한 부르봉 왕실의 샤를 10세는 극단적인 보수 반동 정치를 펼치고, 급기야 1830년, 언론과 출판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경제 불황에 시달리던 프랑스 민중은 바리게이트를 구축해 봉기한다. 

19세기 초에 대성당은 황폐한 상태였으며, 도시 계획가들은 노트르담의 철거까지 고려했다. 프랑스의 소설가인 빅토르 위고는 이 대성당의 찬미자로 대성당의 전통을 일깨우기 위해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꼽추)을 썼는데, 이 소설은 대성당의 운명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호하기 위한 기금을 모으는 운동이 이어졌고, 결국 1845년에 복원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7월 혁명’이며 시위에 이어 ‘영광의 3일’이라고 부르는 사흘간의 시가전이 펼쳐졌고, 샤를 10세는 망명하게 된다. 이날의 혁명은 유럽 각국의 반란과 봉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노트르담 습격(L attaque de Notre-Dame), 로랑 방(프롤로), 이삭 엔지(클로팽), 플로 칼리(페뷔스)/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노트르담 습격(L attaque de Notre-Dame), 로랑 방(프롤로), 이삭 엔지(클로팽), 플로 칼리(페뷔스)/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시대적 배경이 그대로 녹아든 듯 뮤지컬은 150분 간 호소하고 또 호소했다. 내한 공연을 자주 본 관객이라면 환호하겠지만, 확실히 한국 뮤지컬과 간극이 있다.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역사를 이렇게 풀어내는 구나 싶으면서도 굉장히 부러웠다. 

비극적이고 암울한 과거를 고발하는 뮤지컬이 다른 나라에도 소비 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철저히 소설 원작의 ‘뮤지컬’로만 보지 않는 시선에서 비롯된 생각일 듯하다.

한국 뮤지컬 시장에도 우리 또한 잊지 않아야 할 시대상을 조명하는 극들이 더 많이 뻗어나가길 기대해본다.

 

기적의 궁전(La cour des miracles), 엘하이다 다니(에스메랄다), 존 아이젠(그랭구와르), 이삭 엔지(클로팽) /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적의 궁전(La cour des miracles), 엘하이다 다니(에스메랄다), 존 아이젠(그랭구와르), 이삭 엔지(클로팽) /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한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콰지모도’ 역의 안젤로 델 베키오(Angelo Del Vecchio), 막시밀리엉 필립(Maximilien Philippe), ‘에스메랄다’ 역의 엘하이다 다니(Elhaida Dani), 젬므 보노(Jaime Bono), ‘그랭구와르’ 역의 존 아이젠(John Eyzen), ‘프롤로’ 역의 솔랄(Solal), ‘클로팽’ 역의 제이(Jay), 이삭 엔지(Isaac Enzi), ‘플뢰르 드 리스’ 역의 엠마 르핀(Emma Lepine), 젬므 보노(Jaime Bono)가 출연한다.

새롭게 합류하며 눈길을 끌고 있는 ‘프롤로’ 역의 로랑 방(Laurent Ban)과 ‘그랭구와르/페뷔스’ 역의 플로 칼리(Flo Carli), 에릭 제트네(Eric Jetner)까지 함께하며 환상적인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또 앙상블 군무들의 아크로바틱은 기존 무대 프레임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관객들의 변함없는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3월 18일(금)까지 연장해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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