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전공하다, 춤에 매력을 느낀 춤꾼
하반기, 정동극장 신작 구상 중

[문화뉴스 조희신 기자] "어린 시절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시네필이라 영화 연출을 전공했는데, 연출을 배우기 위해 부전공으로 무용을 선택했어요. 그러다 스크린에서 느끼지 못한 강렬한 감정을 무용에서 받게 됐죠.”

화가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김윤수 안무가는 예술의 피를 물려받아 어린 시절부터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끼면서 살아왔다. 부전공인 무용과 전공인 영화 연출에 갈팡질팡하는 그에게 스승인 정재만 씨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엄중히 말했다. 

그렇게 무용의 길을 택한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춤의 대가라 불리는 김백봉, 정재만 등의 스승에게 한국의 전통춤과 근현대 춤 양식을 전수받으며 춤을 수련했다.

안무가 김윤수
안무가 김윤수

1997년 국립무용단에 입단 즉시 주역으로 데뷔하며 2년 후 안무가로서도 화제를 일으켰다.

습작을 마친 29살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윤수 무용단으로 ​​현대춤협회 주최의 안무가 경연페스티발에서 걷는 새 시리즈의 완결형 작품인 '​걷는 새 III – 뫼비우스의 띠'​로 모던발레와 현대무용 작품들을 제치고 한국무용 작품으로 최고상을 수상했다.

이어 ‘만찬 Supper’, ‘공 Emptiness’, ‘MANDARA’ 등의 작품으로 최우수안무가 선정, 대통령 표창 등의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영화 연출을 못했던 나름의 한을 가진 가운데, 무용 작업에 있어 후회를 남기지 말자고 다짐했죠. 스스로 선택한 무용인데, 후회하지 말자고. 이외에도 영화 연출에 대한 한을 안무로 풀고 있기도 해요.“

김윤수 무용단 2006 춤작가 12인전 20주년 기념 초청 공연 이미지/사진=김윤수 제공
김윤수 무용단 2006 춤작가 12인전 20주년 기념 초청 공연 이미지/사진=김윤수 제공

화려한 이력을 쌓고 있는 그는 지난해 10월 국립정동극장의 2021 예술단 두 번째 정기공연인 '소춘대유희-백년광대' 안무가로 참여했다.

‘소춘대유희_백년광대’는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을 올리지 못하게 된 국립정동극장 사람들 앞에 100년 동안 공연장을 지키며 살아온 백년광대와 오방신(극장신)이 찾아와 함께 광대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그는 좋은 기억도 있지만, 코로나19로 힘든 기억이 떠오른다고 밝혔다. 10월 27일 공연 출연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전날 공연 포함한 11월 7일까지 예정된 잔여 공연이 모두 무산됐기 때문이다.

"확진된 5~6명의 무용수를 제외한 새로운 버전의 안무를 만들었어야 했어요. 다행히도, 불상사에 대비해 짜놓은 안무들이 있어 즉시 대응이 가능했죠."

이 공연은 무대 중앙을 가로질러 객석을 연결하는 브리지, 멀티프로젝션 맵핑, ​​​ CG로 광대들의 모습을 복원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여 신선하다는 평이 많았다.

​​

"80년대 후반, 디지털로 진입하기 이전에 이미 컴퓨터를 활용한 공연들이 있었어요. 지금의 공연은 기술의 발전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공연은 이러한 기술을 서사와 잘 맞물리게 활용도 극대화를 했어요. 보통 서사와 부딪혀 감상의 흐름을 끊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서사 깊숙이 개입할 수 있게끔 잘 조율된 공연이었죠.”

이런 서사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배우와 안무가의 호흡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무가가 자신의 이해를 무용수에게 잘 전달해야지만, 무용수가 감정화 시킬 수 있다고 한다. 

 

무용수가 가짜 표현을 하면 관객은 단번에 알아채 버려요!

"무용수가 가짜 표현을 하면 관객은 단번에 알아채 버려요. 상대방의 표현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고 있으므로 진정성의 측면에서 이해가 반드시 선행돼야만 진실한 연기와 춤이 나올 수 있어요.“

한국의 역사나 개인의 일생을 1~2시간 안에 관객을 이해시키기 어렵기에 감정과 혹은 충격, 서사의 연출법 등으로 감정이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공연을 다 본 관객은 '내가 왜 슬펐지', '내가 왜 웃음이 나왔지' 등을 생각하며 공연에 관련된 영화나 정보를 찾게 된다.

그렇게 공연을 잊게 돼도 느꼈던 감정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자리매김하게 된다고. 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현대무용을 관람하게 되면 어렵게 느끼길 마련이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안무’라는 틀은 안무가들의 평생 고민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김윤수 안무가는 그런 고민을 크게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윤수 무용단 2013 'MANDARA' /사진=김윤수 제공
김윤수 무용단 2013 'MANDARA' /사진=김윤수 제공

"몇 십 년 전에 세미나가 개최됐는데, 그때 주제가 ‘한국무용의 대중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였어요. 세대의 책임론이 저에게 왔지만, ‘대중화를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의제를 갖고 논하는 것보다는 대중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그는 드라마, 영화 선호도도 변하는데, 대중들에 대한 정의를 내려놓지 않고 어떻게 대중화시키는지에 대한 의제를 30년 동안 반복하고 있는 건 탁상공론일 뿐이라고 답했다. 

순수 예술인들은 대중화를 쫓아야 한다는 강박을 조금이나마 덜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하는 그다.

"객석이 비어있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강박은 공포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연명하기 힘든 순수 예술인 이 객석을 채우는 것에 대해 연연하며 대중성을 쫓는다는 그 자체가 모순됐다고 생각해요."

하이패션도 대중이 보기에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을 통해 몇 년이 지난 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간소화된 버전을 착용하고 다니고 있다. 

그는 대중 예술이 충분히 하고 있기에 순수 예술이 대중에게 확장하면서까지 자신의 값을 낮출 필요가 없다고 한다.

대중이 알아주지 못하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 일에 자긍심을 갖고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년 이상 된 단체들은 국립화 돼야만...

예술인들이 자신을 낮추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하는 김윤수 안무가.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어보니,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 정책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무용가로 먹고사는 존재이기에 그들의 입지가 그리고 사회로서 진출이 우리 세대보다 훨씬 힘들어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행정력을 갖추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국립무용단의 증설이 적어도 3개 단체 이상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는 국립무용단, 국립정동극장과 국립국악원 등의 단체들이 각자 미션을 갖고 예술 행정을 하고 있지만, 독과점 형태를 띠고 있어 경쟁이 없다고 한다.

"매년 정기공연을 하고 좋은 평가를 받는 단체들은 국립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해외 경우는 매년 정기공연을 하고 좋은 평가를 받고 20년 이상 된 단체들은 국립화시켜버리죠. 대한민국에도 이런 부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국공립 무용단 신설과 독립무용가 지원 및 무용단 관리 정책 실현 등 쉽게 이뤄지지 않는 목표로 갖고 있기에 그는 안무가로서 작품보다는 후대 무용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밝혔다.

"올 하반기 국립 정동극장 신작 구상과 구체적인 실행안을 준비 중에 있어요." 

새로운 시도와 해석, 동시에 안정감을 가진 작품으로 현대 한국 춤을 이끄는 안무가 김윤수. 교육자로서 후학양성에 힘쓰는 한편, 무용을 위해 그가 이뤄나갈 행보에 기대를 가져본다.

 

주요기사
인터뷰 최신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