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오혜재 개인전《잇다, 통하다, 함께하다》개최
1월 30일까지 송파구 오금로 170 B01 갤러리 아리아서 전시

[문화뉴스 문수인 기자] 얼마 전 다녀온 국립현대미술관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을 통해 만난 박수근(1914-1965)도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서구의 추상미술이 급격히 유입되어 화단을 풍미했지만, 박수근은 시종일관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거창한 구도를 절제하고 거칠거칠한 질감으로 표현한 그림을 고수했다. 그 점에서 박수근 작품은 그 시대의 날 것을 전달해왔고 작품 앞에 오래 머물게 했다.

전쟁 전 도청 서기와 미술교사를 지냈던 박수근은 전쟁 후에는 미군부대 내 PX에서 싸구려 초상화를 그렸고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온갖 수모를 견뎌내야 했던 곳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작품을 아끼는 후원자들을 만나게 해준 곳이기도 했다. 

박수근은 해방 후 외국인들에게 먼저 주목받았고, 《동서미술전(Art in Asia and the West)》(샌프란시스코미술관, 1957), 《한국현대회화전(Contemporary Korean Paintings)》(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 1958) 등을 통해 한국 중견작가들과 함께 해외에 소개되었다.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오혜재의 그림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 독학 예술가만이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있음을 느꼈다. 2007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2014년부터 ‘작가’로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녀를 만나 작품 너머의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의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오혜재입니다.

- 이번 전시를 개최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 또 자연과 작가님의 작품의 연결점을 어떻게 포착하시게 되었는지, 더 여실히 깨닫게 된 계기가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라는 게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거잖아요. 색감을 주제로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외국 출판사에서 발간한 색상표가 있는 컬러북을 사서 들여다보다 순간 제가 이걸 왜 샀나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 숲 사진을 보여주고 거기서 나온 색상을 대여섯까지로 차출해 배합표를 만들어놓은 거예요. 직박구리, 종달새의 몸, 결국 자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더라고요. 그럼 자연이 담긴 사진을 보면 될 거 같다. 선과 색, 그림의 형태의 모든 것이 자연에 기반 된 것이고 그걸 인간이 인간에게 또 다른 인간에게 전달되고 있었던 거죠. 본질적으로 인간은 자연에서부터 시작된 거고 자연의 일부이기에 지능을 가진 생명체로서 ‘표현’을 하기 시작했고, 그게 그림이겠죠.

실제로 그림을 그리다가 네셔널지오그래픽 같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연의 색감을 많이 들여다봐요. 자연에서 팔레트처럼 마음에 드는 색을 차출하고 배합해 표현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제 작품 중에서도 이런 의미를 띈 작품으로 이번 전시회를 열었고요.

연인들(The Lovers_2021)/사진=오혜재 작가 제공
연인들(The Lovers_2021)/사진=오혜재 작가 제공

-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과 문화에 대한 유의미한 화두를 제시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작품을 그리시면서 고민이 되는 부분, 스스로와의 갈등이나 마찰이 있진 않으셨나요?

누가 잘못했을 때 혼내고 강요하면 오히려 반항하고 거부감을 내비치기 마련인 것 같아요. 비판적인 정보를 부각하기보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보여드리는 게 효과적이라 생각했어요.

사실 우울한 그림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림을 보고 기분 좋아지려고, 행복감을 얻으려고 하기도 하잖아요. 안 그래도 사는 게 쉽지 않잖아요. 우울하고 힘든 그림 자체에 작품성은 있지만 제 입장은, 작품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보다 좋은 사례를 보며 따라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거죠.

- 개인적으로 자연은 우연의 산물이라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이를 만든 존재가 있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제가 지금은 불교라서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있기보다 우연의 산물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는 너무 아득해서 중요한 건 시작보다 진행 과정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 같아요. 생긴 건 무슨 이유든 간에 존재했겠지만 계속해서 등장하고 사라지고 태어나고 멸종하는 이 과정이 모두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잖아요. 어떤 이유로 인해 사라져도 다시 어떤 이유로 또 다른 새로움이 등장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끊임없는 몽상을 통해 재탄생하다!

- 전문 교육을 받은 예술가와의 차별이나 그로 인해 힘들진 않으셨나요.
제삼자 측면에서 보았을 때 미술계는 뚫고 들어가기 쉽지 않아 보였어요. 부딪혀보니 정말 그랬고요. 예를 들어 어떤 공모전에 나갔을 때 저 빼고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람들이었던 거예요. 이외에도 진보적이면서도 창의적이어야 하는 영역인데 보수적인 면이 강하고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책에서도 표현했듯이 ‘밑천 없는 예술순례’라고 하염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저를 알리기 위해 여러 아트페어와 미술전들을 찾아갔는데, 일단 관심이 없어요. 이메일로 보내라는 게 다반사에요. 그분들도 일일이 다 들여다보기 힘들다는 걸아니까요. 저는 미술계에 연도 없고요. 처음엔 정말 어려웠죠.

사실 콘텐츠만 좋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솔직히 국내보다 해외가 더 쉬웠어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추릴 수 있습니다. 

먼저 나이 제한. 국내는 서른 중반만 되면 지원하고 공모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외국은 나이 제한이 하나도 없어요. 이력서도 낼 필요 없고 오로지 그림과 설명, 그 포트폴리오만으로 판단해요. 또 어느 날 전시를 위해 상업 갤러리를 들어갔는데 첫 질문이 “미대 나오셨어요?”였습니다. 미대 안 나오면 전시가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이 두 가지 제약이 없으니 해외에서 성적이 좋았습니다. 2019년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를 통해 해외에서도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2020년부터 싱가포르 아시아작가연맹(AAA) 국제작가위원회 회원, 일본 글로벌 아트 플랫폼 트라이세라(TRiCERA)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어요. 

2020년 AAA 주최 코로나19 국제 자선 그림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맡았고, 아티스트 부문 출품작으로 최고상인 금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021년에는 이탈리아 현대작가센터(COCA) 주최 <제3회 COCA 국제 공모전>의 1차 선정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일종의 포상이 경력으로 남은 거죠.

2014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4~5년까지는 지지부진했어요. 기회를 얻어야 경력을 쌓을 텐데 한국은 경력을 쌓을 기회가 현저히 적고 어려워요.

갤러리라는 기능이 예전에는 유명하지 않은 작가를 안목 있는 갤러리스트가 ‘이 작가에게 가능성이 있고 한 번 키워주어야겠다’하고 캐스팅 해서 전시를 시작하게 됐다고 해요. 요즘에는 ‘네가 떠서 괜찮으면 내가 허락해줄게’ 이런 느낌인 거죠. 쉽사리 투자 비용 들이긴 어려울 테니까요. 그림을 못 그리면 제가 노력하면 되는 거지만 나이와 학연에 의해 기회가 박탈되는 경우는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봅니다.

‘제도 밖’ 예술을 추구하면서도 ‘제도 안’의 예술로 당당히 인정받은 예술가들

- 주로 무엇을 그리시나요.
제가 그리는 일러스트레이션은 사실 굉장히 부수적인 존재였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에 삽화같이 보조적인 역할로 보였어요. 

이제는 일러스트레이션이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어요. 한국은 아직 기술만 좀 있으면 흔하게 그릴 수 있는 정도로 생각하기도 해요. 왜 굳이 일러스트레이션이 구분되어 정의되느냐는 추상화 같은 다른 분야와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에요.

추상화는 남들이 알아보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은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면 실패한 거예요. 명확하게 소통이 되어야만 하고 이해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일러스트레이션이에요. 

제 작품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이라이트는 선이에요. 방수 펜을 써서 사용하는데 선의 굴곡이나 각도에 따라 그림 전체가 어떻게 나오는지의 차이가 커요. 전시회에서 한 작품 전체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빔 프로젝트로 쏘아 볼 수 있게 마련해두었으니 확인해보셔도 재밌을 것 같네요.

- 좋아하는 작가와 그 작가로부터 영향 받은 점이 있다면 답변 부탁드립니다.
정말 많지만 프리다 칼로를 정말 좋아합니다. 

7년 전 소마 미술관에서 프리다 칼로 원화 전시가 있었어요. 책으로만 봤던 그림을 원화로 볼 생각에 들떴었는데 기대와 달리 그림이 작고 소박한 거예요.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또 원화로 보니 붓 터치나 색감 같은 것이 죽지 못해 그린 것 같은 처절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직접 봤을 때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이 사람은 평생 즐거워서 그린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이 슬프고 잔인한 그림을 누가 사갈까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그 사람이 국민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절대 모방 표절은 불가할 정도로 자신의 것을 그렸기 때문이었어요. 결국 ‘자신’을 그렸고 그날 많은 걸 느꼈죠.

 

- '직장인'으로서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또 작가님처럼 직장인이지만 한편으로 작가의 꿈을 키워나가는 분들이 유의하면 좋을 것이 있을까요?

어릴 때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게 아니어서 빨리 취업을 해야 했어요. 어릴 때 미술교육은 꿈에도 못 꾸었죠. 그렇게 인문계로 진학했으면서도 만화 동아리는 꾸준히 했어요.

취직을 하고서 10년 동안 열심히 돈을 벌었어요. 워낙 일에 치이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의도치 않았던 것에 타협하기도 하고요. 이러다간 안 되겠다, 행복한 삶을 찾아보고 싶다 결심하던 찰나에 펜을 들고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어요. 무엇을 그릴지 몰라 막막해하다가 조카의 발을 그렸는데 회사 사람들이 우연히 그림을 본 거예요. 그 그림을 보면서 누가 봐도 제 그림이라는 거예요. 표절은 못 하겠다고요. 이때 힌트를 얻었죠. ‘아, 내 그림을 그려봐도 되겠다’ 싶었어요.

다른 업무를 하며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이 당신이 아니면 그릴 사람이 없다”라는 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요즘은 독창성 있는 작품에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기보다 팔리는 그림들이 도장 찍듯 찍어내죠. 경매, 투자같이 미술계가 점점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요. 현실적인 부분도 분명 있겠지만, 결국 독창적인 사람을 발굴하는 것이 소홀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최대한 공정한 토대 위에서 '작품'만으로 평가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독학 예술가는 ‘독학’을 해야 해요. 다른 작가 분들 작품도 많이 보면서 공부를 하는 거예요. 작품세계가 맞든 맞지 않던 일단 보고 궁금해 하고 탐구해보는 거죠. 사진을 많이 보는 것도 필요해요. 하나하나 입력된 걸 기반으로 상상하는 데에 더 수월하겠죠?

오혜재 작가의 『저는 독학 예술가입니다』(2021) 
오혜재 작가의 『저는 독학 예술가입니다』(2021) 

-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신지요.
『저는 독학 예술가입니다』(2021) 첫 장 자기소개의 마지막 문장이 이 질문을 대변할 수 있겠네요. ‘다년간의 국제 업무 경험과 석사 전공을 토대로, 예술을 통한 다양한 문화 간 이해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 문장이 제게 계속 지속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싶습니다. 


오혜재 작가와 대화를 하다가 생각난 ‘부캐 전성시대’. 본래 자신의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나를 갈망하는 시대이다. 이전의 나와 다르길 바라는 욕망이 수면 위로 고개를 들고 탄탄한 세계관을 창조하며 자라난 부캐들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다.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작가 오혜재가 그렇듯 실제 우리 부캐의 전성시대가 도래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은 물론 사회도, 제도도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일단 ‘콘텐츠’가 좋으면 된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작품보다 먼저, 그 사람의 나이와 혈연, 학연과 지연 등을 덧대면 작품이 흐리게 보인다. 그렇게 한 겹, 두 겹 그 부조리가 쌓여서 갔고 우리 망막조차 뿌연 연기 속에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 시간이었다.

 

•위치: 서울시 송파구 오금로 170 B01 갤러리 아리아(9호선 송파나루역 4번 출구에서 107m)
•관람시간: 월요일 휴관, 화-일요일 12:00-18:00, 목요일 14: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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