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세련미와 우아함의 극치, ‘느림의 미학’
조선의 예술천재 ‘효명세자’가 ‘효’로서 던지는 메세지
남성의 ‘춘앵전무’ 새로운 기술적 연출과 만나 더욱 눈길 사로잡아

[문화뉴스 박준아 기자] 지난 6월24일~26일 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을 맞아 더욱 특별했던 무용단의 마지막 정기공연 ‘춤으로 빚은 효’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려 관람했다.

​‘춤으로 빚은 효’ 포스터 (사진=국립국악원 제공)​
​‘춤으로 빚은 효’ 포스터 (사진=국립국악원 제공)​

이번 공연은 조선시대의 예술 천재 ‘효명세자’가 어머니 순원왕후의 40세를 기념하는 진작례에서 직접 예제한 궁중무용작품 17종 중 효사상을 엿볼 수 있는 7종(망선문, 춘대옥촉, 보상무, 향령무, 박접무, 춘앵전무, 첩승)을 엄선해 원형에 가깝게 선보였다.


다시 생각해보는 '효'의 의미

'효'는 유교국가 조선의 근간으로, 좁은 의미로는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뜻하지만, 넓게는 나라와 백성을 존경하고 섬기는 정신을 담고 있다.

그의 세자명이 효(孝)명(明) 효로 밝힌다는 의미이니 그의 효심이 얼마나 극진했는지 알 수 있는 다른 한 대목이다. 

‘효’로 국가의 기강을 중심을 바로잡고 ‘예’로서 세상을 조화롭게 하고자 했던 효명세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정조’의 손자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박보검이 연기한 ‘이영’역할로 알고보면 꽤나 친숙한 인물이기도 하다.

조선 최고의 예술천재 ‘효명세자’의 예작들은 국가의 의전을 장식하는 부수적 지위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예술로 빛날 수 있게 했다고 평가받는다. 


 '효'의 바람 가득한 이상향을 표현

공연은 아버지 순조가 22세 꽃다운 나이에 허망하게 죽은 아들을 위해 직접 지은 제문으로 시작했다.

전쟁의 화마를 피하지 못해 타고 남은 순조의 어진 (사진=문화재청 홈페이지)당시 순조의 비통함이 고스란히 담긴 제문은 역설적이게도 효명세자의 효심이 얼마나 깊었는지 더욱 느껴지기도 했다.
전쟁의 화마를 피하지 못해 타고 남은 순조의 어진 (사진=문화재청 홈페이지)당시 순조의 비통함이 고스란히 담긴 제문은 역설적이게도 효명세자의 효심이 얼마나 깊었는지 더욱 느껴지기도 했다.

 

직후, 어머니 순원왕후와 순조의 만수무강을 바라는 효명세자의 효심을 담은 7종의 정재 중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온다는 가사를 부르며 추는 '망선문(望仙門)'이 공연의 첫 문을 열었다.

윤대라는 특별무대 위에서 보등과 당을 들고 추는 춘대옥촉 (사진=국립국악원 제공)
윤대라는 특별무대 위에서 보등과 당을 들고 추는 춘대옥촉 (사진=국립국악원 제공)

이어 '춘대옥촉(春臺玉燭)'과 '보상무(寶相舞)', '향령무(響鈴舞)'에서는 화려한 무대 장치와 무구(舞具, 춤을 출 때 쓰는 도구)로 선보이는 신선들의 축하 무대가 펼쳐졌다.

 

버드나무 위 꾀꼬리 - '춘앵전무'에서는 버드나무 가지로 상징되는 화문석 위에서 독무로 선보이는데, 봄날의 버드나무는 '회춘'을 상징하기도 해 장수의 의미도 담고 있다. (사진=BRIC 생물종 홈페이지)
버드나무 위 꾀꼬리 - '춘앵전무'에서는 버드나무 가지로 상징되는 화문석 위에서 독무로 선보이는데, 봄날의 버드나무는 '회춘'을 상징하기도 해 장수의 의미도 담고 있다. (사진=BRIC 생물종 홈페이지)

신선세계를 지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린 '박접무(撲蝶舞)'와 '춘앵전무(春鶯囀舞)'도 무대를 수놓았다. '박접무'에서는 봄날의 호랑나비가 날갯짓하며 노는 형상을, '춘앵전무'에서는 이른 봄날 아침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자태를 춤으로 표현했다.

 

 무동의 춘앵전무를 추는 박성호 무용수 (사진=국립국악원 제공)
 무동의 춘앵전무를 추는 박성호 무용수 (사진=국립국악원 제공)

특히, 사진과 다르게 본 공연에서는 바닥 위에 깔릴 화문석이 무동의 위로 내려와 그 안에 맵핑한 영상을 쏴, 과거와 현대를 잇는 특별한 연출로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 잡았다.

무산향과 더불어 유일한 독무인 춘앵전무는 원래는 여기(女妓)가 추는 것과 무동(舞童)이 추는 두가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여성만 이 춤을 추기때문에 남성의 춘앵전무를 접한 건 귀한 경험이었다.

박성호의 무동의 춘앵전무는 여기의 춤과 비슷한 듯 다른 오묘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는 춘앵무의 백미라고 불리는 화전태에서 더욱 그러했다. 화전태는 꽃 앞에서 우아함을 품은 자태(姿態)로 치아를 드러내지 않은 채 은은한 미소를 짓는 춤사위를 말한다.

공연의 마지막은 효명세자가 직접 지은 열 첩의 창사(唱詞, 궁중무용을 하며 부르는 가사)를 부르며 형태를 바꿔가며 추는 춤인 '첩승(疊勝)'으로 막을 내렸다.

 

구름위를 걷는 듯, 물속에서 해파리가 유유히 움직이는 듯한 무용수의 움직임은 무대 위를 마치 신선세계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관객을 이끌었다.(출처=Pixels,Quang Nguyen Vinh)
구름위를 걷는 듯, 물속에서 해파리가 유유히 움직이는 듯한 무용수의 움직임은 무대 위를 마치 신선세계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관객을 이끌었다.(출처=Pixels,Quang Nguyen Vinh)

무대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궁중무용인 만큼 느껴지는 낯설음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무용수들의 구름 위를 걷는 착각을 일으키는 동작들과 완벽하게 대칭적이고 기하학적인 대형의 소위 ‘칼군무’는 신선세계 어딘가 비현실적인 공간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것같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40세 생신을 맞은 어머니의 생일을 그가 그린 이상향으로서의 신선세계와 아름다운 자연으로 가득 채운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던게 아니었을까.

끝으로, 마지막 일곱 번째 첩승을 지나 인간세상으로 돌아온 듯 효명세자가 등장하여 아버지 순조의 만수무강 하라는 가슴 애절한 대사를 읊는다. 효명세자의 바람은 공연 시작에서 순조가 읊은 제문과 대조되며 더욱 절절한 가슴의 울림을 줬다.


궁중무용이 갖는 깊은 호흡과 느림의 미학이 공연장 전체를 가득 채웠던 ‘춤으로 빚은 효’는 아쉽게도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마지막 정기공연이었다.

다행히 이런 아쉬움을 달래 줄 공연이 오는 7월11일 같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다. 바로 장르를 넘나드는 전통공연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은 들숨무용단의 ‘패강가’이다.

대동강의 옛 이름 패강가, 대동강의 노래에  무동의 춘앵전무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던 박성호 무용수도 등장한다고 하니 더욱 큰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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