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아띠에터) 김효상 playticket@mhns.co.kr 플레이티켓 대표·공연전문프로그램 마포FM 김효상의 '플레이

[문화뉴스] 공연을 소개하고 공연을 이야기하고 공연을 만나보는 공연전문방송 플레이투스테이지 

김향은 공연평론가이자 드라마투르그이고 현재 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학부에 재직 중이며 연세대학교 공연예술연구소 전문연구원이자 외래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Q. 공연을 대하는 평론가로서의 기본 마인드는 무엇이라 할 수 있는가.
ㄴ 평론가의 마인드는 일단 공연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라고 할 수 있다. 평론가는 일반 관객에 비해 공연에 대한 전문지식이 조금 많은 ‘전문관객’이라 할 수 있고 공연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그 감동을 기록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다수의 사람이 블로그 등을 통해 공연 후기 등을 남기고 있는데, 이러한 후기와 평론이 다른 점은 자기 감상의 기록이 아닌 공연에 대한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기록과 더불어 이에 대한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Q. 평론이 공연과 관객 사이에서 어떠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며 또 어떤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가?
ㄴ 평론은 공연과 관객 사이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공연과 관객 사이엔 수많은 대화가 있는데, 평론이 대화의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평론이 관객과 공연제작진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관객에게는 작품에 대해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를, 공연제작진에게는 이후의 발전된 작품 제작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공연에 대한 애정이 기본이고 또 관객이 그 작품에 대해 관심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의도적인 흥행몰이와는 거리가 있다. 평론이 공연과 관객 사이를 잇는 홍보활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플스 42회 게스트_공연평론가 김향

 

Q. 평문을 보면 줄거리와 비평 부분으로 나뉘는데 공연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독자들이 평문을 읽다 보면 아무래도 내용에 대한 이해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평론을 쓸 때 이점에 대해서 고려하는가?
ㄴ 모든 평문이 줄거리와 비평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상 작품, 게재할 잡지 그리고 그 잡지에서 요구하는 분량에 따라 줄거리와 비평 부분의 비중이 달라질 수 있다. 평문은 소통을 목적으로 하기에 일단 게재하는 잡지와 그 잡지를 읽을 독자의 수준을 고려하면서 글을 쓴다. 이 과정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공연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줄거리를 생략하면서 쓰게 되고, 대중적인 작품이 아니라고 여겨질 경우 줄거리까지 되도록 잘 풀어서 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실은 ‘내 글을 과연 몇 사람이나 읽을까’하는 의심을 가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공연 장르는 일반적인 관객들보다는 마니아층이 많다는 생각에 나의 글 역시 조금 전문적인 관객이 독자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니 줄거리보다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견해를 중심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오늘 인터뷰를 보고 혹시 앞으로 나의 평문에 관심 가질 독자들을 위해 친절히 더 쉽게 풀어서 쓰도록 노력하겠다.

 

Q. 호평과 혹평을 할 때 작품의 절대적인 완성도로 평가하는가 아니면 기존의 그 단체가 보여주었던 수준을 감안하는가.
ㄴ 절대적인 완성도의 기준은 매우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공연에 대해서도 평론가들에 따라 완성도가 ‘높다’ 혹은 ‘부족하다’라고 상반된 평가를 할 수 있고 ‘절대적인 완성도’라는 것 역시 상대적인 기준에 따라 다르다. 호평과 혹평이 작품에 대한 ‘좋은 평가’ 또는 ‘나쁜 평가’라는 이항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호평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감동’을 주면서 삶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반면에 혹평하는 작품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가 잘 드러나지 않거나 자기 만족적인 성향의 작품들인 경우다.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작품인 것이다.

호평과 혹평은 일종의 ‘달콤한’ 또는 ‘쓴 약’과도 같다. 하지만 제작진이 이러한 평가들을 모두 공연발전을 위한 조언(약)으로 받아들인다면 실제로 ‘나쁜 평가’라는 것은 없는 것이고 ‘좋은 평가’만 남게 된다. 기본적으로 ‘보면 안 되거나 시간과 돈이 아까운 나쁜 공연’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마추어가 기술이 늘었다고 해서 무조건 호평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 상태에서도 진정성 있는 자기표현을 하는 경우에만 호평한다. 반면 기성극단이라도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의식’이 없다면 혹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 플스 방송 중

 

Q. 최근 들어 연극이나 창극의 실험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관객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측면을 이번 평론집(유희와 치유)에서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실험들을 공연예술이 발전하기 위한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서 제작진을 격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지적을 해야 하는 것인가?
ㄴ ‘공감대 형성’이라는 것이 모호하다. 관객 개인의 감성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요즘 창극들을 ‘실험성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연출가들이 창극을 연출하고 있는데, 이들이 그동안 창극계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의 독특한 연출 방식에 따라 창극을 다채롭게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주로 국립창극단이 유수한 연극, 오페라 연출가들에게 창극을 연출할 기회를 준 것이어서 창극이 다양하게 표현된 것뿐이지 연출가들 개개인이 창극을 실험한 것이라 볼 수는 없다.

그중에 내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때는 ‘판소리’를 근거로 하는 창극의 정체성이 음악적 측면에서 잘 드러나지 않은 경우이거나 판소리를 근거로 하는 듯하지만 음악 내용과 무관한 시각적인 형상화가 과잉되었을 때였다. 내 평가는 ‘과도기’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창극 장르를 통해 연출가가 어떠한 시대적·예술적 의식을 드러내는가를 논하는 것이다. 국립창극단은 국민의 세금으로 공연 제작을 하는 공공예술단체이다. 이미 검증받은 예술가들의 작업이니 ‘격려’가 필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이번 평론집에서 음악극을 평론한 장에서 특히 국립창극단의 작품이 많이 언급되었다. 창극의 지향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ㄴ 창극 관객 확보와 창극 정체성 확립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창극의 관객이 있어야 공연이 성립되는 것인데, 그동안 창극에 대한 인식이 뮤지컬이나 서구 오페라에 훨씬 미치지 못하여 일반 관객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 들어서 창극의 저변이 많이 확장되었지만, 여전히 창극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이 많다. 창극을 처음 보는 관객들이 많기 때문에 창극 공연이 장르적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요즘 관객들은 뮤지컬에 익숙하며 공연을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그러면서도 뮤지컬, 오페라, 창극 장르의 차이를 변별하려 애쓰는 듯하다. 창극 정체성 확립은 주변 예술 장르들과 융합하는 가운데 ‘판소리에 근거한 창극’의 독특성이 부각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주변 예술 장르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 ⓒ 김향

Q. 제작하는 입장에선 쉽지 않은 문제다.
ㄴ 다른 장르도 그렇겠지만, 창극은 특히 제작하기 쉽지 않다. 판소리에 근거하면서도 근대적인 무대 위에서 구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개방적면서 고도의 예술성을 지닌 장르이다. 게다가 서구의 음악에 익숙해진 관객들과 융합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최대한 쉽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그 과정에서 판소리 본연의 장점을 살리면서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려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판소리를 살려보려 하였으나 쉽게 뮤지컬 스타일로 가버리는 작품도 있다. 이것은 예술적인 상상력과 관련이 있다. 특별한 기준이 있어서 그 선을 넘고 안 넘고의 문제로 판단할 수 없다. 판소리를 기반으로 발휘될 수 있는 상상력의 문제다.

국립창극단은 창극을 제작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최소 20년 이상 기량을 닦아온 소리꾼들이 있고 오랫동안 창극을 제작한 제작진들이 있다. 다만 늘 새롭게 연출가들이 바뀌는 것이 다를 뿐인데 그들이 자신의 예술적인 메소드를 창극에 시도할 때 판소리에 근거한 창극의 장르적 상상력을 어떻게 발휘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Q. 혹시 상업극에 대한 평론을 해본 적이 있거나 해볼 생각을 하는가? 그리고 상업극과 아닌 것의 경계를 넘나드는 단체나 연출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ㄴ 일단 상업극이란 것에 대한 정의가 좀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업극에 대한 관심은 아주 많다. 상업극이 관객을 끌어모으는 이유가 뭘까 많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에 악어컴퍼니 등의 상업극을 평론하기도 했다. 다만 요즘 공연되는 상업극들은 초연보다는 상설, 재공연 되는 작품들이 많아서 평론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성향이며 초연되는 다른 작품들이 많아서 상설 상업극을 볼 시간이 없을 뿐이다.
상업극과 예술작품의 경계를 넘나드는 단체나 연출가들에 대해서는 유능하다고 생각한다. 상업극도 작품성이 있는 새로운 레퍼토리의 개발이 요구되는데 예술작품을 주로 만드는 제작진이 상업극을 만들 경우 극 발전에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예술작품도 관객이 없으면 공연으로 성립되지 않기에 관객과의 ‘상업적’ 소통이 요구된다. 상업극과 예술작품을 구분하는 것의 기준이 모호하지만, 이 두 계통의 메커니즘이 공유되는 것이 공연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 김향

Q. 공연을 많이 보다 보면 처음엔 신선하거나 감동적으로 느껴졌던 마음이 점점 식상해진다. 그때가 되면 대중성과 전문성의 안목이 분리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ㄴ 분리되는 지점이 있다. 공연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비평적인 관점이 생긴다. 변별력이 생기면서 독창적인 공연을 하는 단체와 상상력이 부족한 단체가 보인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도 매 학기 공연관람을 같이하고 있는데 같은 공연에 대해 다른 느낌을 듣는다. 공연을 많이 보지 않은 학생들이지만 학생 개인이 가진 특정한 경험과 공연이 맞아서 독특한 부분에서 공감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들로부터 듣게 되는 이러한 공연에 대한 느낌들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Q. 공연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ㄴ 공연을 계속 꾸준히 관람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즐겨라 그러면 인생이 즐거워질 것이라 확신한다.

 

   
▲ 플스 42회 방송을 마치고.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