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가족의 해체가 당연시된 지금, 가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탄생했다.

28일 개막해 31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가족病 혼자라도 괜찮을까?(이하 가족병)'은 문화예술 콘텐츠로 타인에 대한 인식 변화와 사회 구조 개선을 추구하는 명랑캠페인에서 새롭게 제작한 연극으로, '행복한 가족'이란 단어 속에 숨어 있는 '행복하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연출에 김재엽, 출연에 백운철, 정원조, 지우, 권민영, 양은주, 유종연, 한상완, 김원정, 김세환, 박희정, 권윤애, 이다혜가 출연한다.

극 중에도 등장하듯 이미 50% 이상의 가정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양부모 가정이 아닌 한부모 가정, 미혼모 가정, 다문화 가정 등이 자리한 현 상황을 반영하듯 연극 '가족병'은 주로 한부모 가정이지만, 그 안에서도 편부 가정, 편모 가정, 아이가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 고등학생까지 여러 가지 처지인 가족의 형태를 비추고 그로 인해 우리가 가져온 편견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 이야기한다.

전막 시연과 함께 이어진 간담회는 김재엽 연출과 어른 역의 네 배우 백운철, 권민영, 정원조, 양은주 배우가 함께했다.

   
▲ 좌측부터 백운철, 권민영, 정원조, 양은주 배우와 김재엽 연출.

그동안 사회성 높은 작품을 많이 했다. 이번 작품을 만든 계기는.

ㄴ 김재엽 연출: 사회에 있어 가장 기초 단위는 가족 같다. 거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시대에서 살아 있는 개인들, 가족들에 대해 무심했던 시기인데 명랑캠페인 쪽에서 계속해서 미혼모나 한부모 가정 등에 대해 인간 대 인간으로 기본적 관심이 있던 것 같고 그런 생각이 어우러져 이 작품이 나온 것 같다.

   
 

작품에서 다양한 가족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어떤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적이었는지.

ㄴ 양은주: 전 사실 미혼이다. 그래서 부모 입장 중에 도리어 자녀 입장으로 이걸 많이 보게 됐다. 제 대사 중에 모성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부성을 강요받으면 어떻게 된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저희 부모님을 생각해보며 나는 어린 시절에 어떻게 가정 교육을 받았나 많이 생각해보게 됐다. 또 심지어 우리 부모님은 조부모님에게 어떤 교육을 받았나 생각해서 더 부모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ㄴ 정원조: 저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게 아이에게 도움된다는 것과 꼭 부모가 아니어도 누구든 봐준다면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그런 사람이 진정 가족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ㄴ 권민영: 저 역시 혼자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함께 날 지켜보고 같이 함께한다는 점이 가장 맘에 와 닿았고 저는 '가족병'에서 유치원 선생님 역을 해서 (현실의) 아이들이 소꿉장난할 때 애완동물 역이 가장 인기 있다는 점에 충격받았다. 요즘 아이들도 부모님도 어떻게 사랑을 주고받는지 모르는구나, 서로 서툴구나 생각하게 됐다.

ㄴ 백운철: 그동안 편견은 개인의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연습하면서 우리 집의 부모님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제 부모님은 지금 고아지 않나. 저도 곧 고아가 될 것이고. 제 상태가 어디에 처해있는지 한번은 고민해봐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점에 생각해본 적 있다. 나는 나이를 먹었으니 괜찮은 게 아니라 나 또한 편견 속에 갇혀서 편견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느꼈다.

   
 

연습 과정에서 많이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본인이 가진 기존의 생각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장면이나 상황이 있었는지.

ㄴ 백운철: 가족사진 에피소드가 그랬다. 가족사진이라 하면 당연히 부모님과 저 형제들, 손자들 등이 모여 찍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 에피소드에서 말했듯 남편이나 아내를 원하지 않고 양육을 원하는 경우 유치원에서 양부모가 함께한 가족사진을 요구한다면 아직 사회가 성숙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느냔 점을 연습하며 깨달았다.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가부장적 편견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고 느낀 장면이었다.

ㄴ 정원조: 첫 장면에 교과서의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편견을 갖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했을 때 알게 모르게 그런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배우지 않나. 우리가 정상을 어떻게 규정짓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고 느꼈다.

ㄴ 권민영: 연습과정에서 의견 나누며 공통된 게 다들 어릴 적에 부모님께 쟤네 집 어때, 쟤네 부모님 어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이 있더라. 우리조차도 크게 인식하지 못한 채 편부 편모 가정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우리부터라도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료 준비하며 어떤 지점에서 가장 분노하거나 바뀌면 좋겠다 생각했는지.

ㄴ 김재엽 연출: 교실의 학생 절반이 통계와 자료로 양부모 가정이 아니라고 나오더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게 절반도 안 되는 걸 알고 우리가 과연 그만큼 주변에 관심이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우리가 옆집에 관심이 없고 옆의 가족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정상과 비정상이란 개념을 빨리 벗어나서 동시대 가족의 모습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보이고, 그중 가장 약자인 아이들에게 가족의 정형화된 형태를 주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느꼈다. 우린 이미 차별을 겪거나 가한 기성세대라면 아이들에겐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 생각했다.

   
 

현실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센 내용을 연극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주안점을 둔 부분과 공연 기간이 짧은데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ㄴ 김재엽 연출: 실제로 경험한 게 아니다 보니 리서치를 많이 했다. 한부모 가정에 대한 반편견 교육이나 해외 사례 등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았다. 한부모 가정에서 어떻게 육아를 하는 것이 방법일지. 양부모 가정이 한부모 가정에 대해 느끼는 우월감 같은 편견은 어디서 나올까. 사실 고난을 겪는 아이들은 한부모 가정보다 오히려 양부모 가정에서 더 많더라. 그래서 우린 많은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있다는 생각과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많이 찾았다. 저도 네 살된 아이가 있어 작품 만들며 교육법을 공부하게 된 것 같다. 현실의 일인데 이를 드라마나 캐릭터로 풀어내는 것에 대해 부담감은 있었다. 리서치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 역시 또 다른 선입견이 있을 수 있어서 당사자나 부모님들이 이 공연을 본다 생각하면 쉽게 드라마적 캐릭터로 그려내도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이번 공연이 일종의 초연인데 조심스럽게 하고 있고 앞으로 실질적으로 또 다른 커뮤니티에서 공연할 수 있는 새로운 연극 형태로 발전하고 싶다. 실제로 한부모 가정이 등장해도 좋을 것 같고 극을 연기하기보단 무대 안에서 이야기하는 형태로 만들고 싶기도 하다. 지금은 아무래도 계몽적이고 육아법 강좌 같은 부분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강좌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공감도 가고 좋지만, 너무 이야기가 많아 선명해지지 않는 느낌인데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ㄴ 김재엽 연출: 기존의 우리가 생각하던 선입견에 대해 의심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가족이란 말을 들었을 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런 선입견을 버려야 할 것 같고 대체로 사람들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이나 의무 때문에 자신을 억압하는 부분이 많다. 엄마는 엄마로서 아빠는 아빠로서 아이는 아이로서. 하지만 모인 사람이 행복해지자고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부모님들도 삶에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중요하다 생각하는 등 일종의 이기적 가족주의가 생긴 것 같다. 그게 정말 정확히 서로를 원해서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심리학자들이 대부분 대화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을 해결하는데 요즘 가족들은 서로 대화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지적한다. 젊은 부모들,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법을 이미 잊어버렸다고 하더라. 가족 안에서 대화하는 법을 찾아야 할 것 같고. 두세 명 작게 나오는 씬에서 관객에게 말을 거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비슷한 말을 하더라도 말 걸기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렉쳐 퍼포먼스 같은 느낌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도 있지만, 관객들과 만날 방법을 작품 속에서 좀 찾아보고 싶다. 어떻게 다가갈지는 아직 미흡하지만 시작하며 변화를 계속 추구하고 있다.

   
 

본인이 되고 싶은 부모상이 있다면.

ㄴ 양은주: 여러 사람이 함께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말이 와 닿았다. 나는 인간관계를 폭넓게 하고 있는지. 대화를 많이 하고 있는지 싶었다. 부모는 절대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줄 수 없다는 말이 와 닿았다. 저도 선생님, 친구 어머니 등에게 오며 가며 배웠던 것 같고 만약 제가 가정을 이루게 되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만들고 아이를 편하게 만들어주고 주변에 의지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로 카운셀러 역을 했는데 관객들이 기억하면 좋겠다는 메시지가 어떤 건지.

ㄴ 정원조: '이상하다'고 할 때 엄마, 아빠가 있다. 없다를 가지고 이상한지 아닌지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것보단 부모님이 올바른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한부모인 건 중요하지 않다.

에피소드가 많았을 텐데 그걸 선별해 가져온 기준이 뭔지. 지금 형식으로는 관람층이 너무 제한적이지 않나. 가정이 없는 솔로이거나 젊은 사람에게도 보여줘야 하는 극인데 어떻게 보여줄 계획인지.

ㄴ 김재엽 연출: 명랑캠페인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업이 돼야 할 것 같다. 커뮤니티 연극을 만들다 보면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서 커뮤니티 자체가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경험이 있는 극이 있는데 이 극은 오히려 커뮤니티의 경계를 없애야 한다. '가족병'이란 제목도 힘들었다. '가족병'이란 제목 자체가 일종의 선입견을 만드는 것 같았고 교과서 같은, 상식 이상의 선을 벗어날 수 없기에 드라마적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스토리텔링이 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있다. 가족에 대한 에피소드를 찾다 보니 이혼에는 백 가지 이유가 있다는 말도 있다. 각각이 경우에 따라 달라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가족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렵더라. 리서치와 스토리텔링 사이에 유기적 결합이 필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관객과 어떤 지점을 소통하고 싶은가.

ㄴ 김재엽 연출: 작품 준비하며 어릴 적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배우들과도. 내가 어떻게 컸는지 돌아보게 된 작품인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는 것까지 단계가 나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여전히 아이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 내 안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작품으로 관객을 만났으면 싶다.

ㄴ 양은주: 저는 이 작품을 보고 자신을 돌아봤을 때 스스로가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많이 사랑하면 좋겠다. 또 옆의 친구도 사랑이 필요해 보이면 사랑을 나눠주고 그런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ㄴ 정원조: 저도 누군가에게 내가 어떤 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생각에 그치지 말고 바로 실행에 옮기시면 좋겠다.

ㄴ 권민영: 작품 재밌게 보시고 일상생활에서 편견 없이 어떤 아이든 각자의 상황을 인정해주고 바라봐주시면 좋겠다.

ㄴ 백운철: 제가 과연 누구를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인지 돌아봤으면 좋겠다는 게 절 보는 생각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동정할 그릇이냐. 공연 보시는 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시면 어떨까. 동정받지 않고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공연을 준비했다.

연극 '가족병'은 31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에서 공연된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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