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의 연희단거리패의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이 연극은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의 일대기이다.

이중섭의 호는 대향(大鄕).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이희주(李熙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오산고등보통학교(五山高等普通學校)에 들어가 당시 미술 교사였던 임용련(任用璉)의 지도를 받으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文化學院) 미술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독립전(獨立展)과 자유전(自由展)에 출품하여 신인으로서의 각광을 받았다. 분카학원을 졸업하던 1940년에는 미술창작가협회전(자유전의 개칭)에 출품하여 협회상을 수상하였다. 1943년에도 역시 같은 협회전에서는 태양상(太陽賞)을 수상하였다.

이 무렵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山本方子)와 1945년원산에서 결혼하여 이 사이에 2남을 두었다. 1946년 일시 원산사범학교에 미술 교사로 봉직하기도 하였다. 북한 땅이 공산 치하가 되자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친구인 시인 구상(具常)의 시집 『응향(凝香)』의 표지화를 그려 두 사람이 같이 공산주의 당국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6·25 사변이 일어나고,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그는 자유를 찾아 원산을 탈출, 제주도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였다.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이중섭은 홀로 남아 부산·통영 등지로 전전하였다. 1953년 밀항하여 가족들을 만났으나 굴욕적인 처가 신세가 싫어 다시 귀국하였다. 이후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그의 나이 40세에 적십자병원에서 운명한다.

화단 활동은 부산 피난 시절 박고석(朴古石)·한묵(韓默)·이봉상(李鳳商) 등과 같이 만든 기조전(其潮展)과 신사실파에 일시 참여한 것 외에 통영·서울·대구에서의 개인전이 기록되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 많은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강한 개성적 작품으로 1970년대에 이르러 갖가지 회고전과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972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과 화집 발간을 위시하여, 평전(評傳)의 간행, 일대기를 다룬 영화·연극 등이 상연되었으며, 많은 작가론이 발표되었다.

그가 추구하였던 작품의 소재는 소·닭·어린이(童子)·가족 등이 가장 많다. 불상·풍경 등도 몇 점 전하고 있다. 소재상의 특징은 향토성을 강하게 띠는 요소와 동화적이며 동시에 자전적(自傳的)인 요소이다.

「싸우는 소」·「흰소」(이상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움직이는 흰소」·「소와 어린이」·「황소」(이상 개인 소장)·「투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등은 전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닭과 가족」·「사내와 아이들」·「집떠나는 가족」(이상 개인 소장)과 그밖에 수많은 은지화(담뱃갑 속의 은지에다 송곳으로 눌러 그린 일종의 선각화)들은 후자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극작가 김의경(金義卿, 1936~2016) 선생은 1960년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원 연극학과를 수료하였으며, 1983년 미국 하와이대학 연극학과에서 수학하였다.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사무국장‧부위원장을 거쳐 1994년 3월 이후 회장을 맡았으며, 한국연극협회에서는 상임이사‧부이사장‧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극단 실험극장 창립동인 및 대표,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장, 국립극장 공연과장 등을 지냈다. 1976년 9월 극단 현대극장을 창설하고 동 대표를 역임하였다. 그는 한국연극의 국제 교류에 노력한 연극인으로서, 1967년 이후 국제극예술협회 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고 있으며, 기타 국제교류에서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단막극 「애욕(愛慾)의 우화(寓話)」(실험극장 초연, 1963)가 문공부 주최 신인예술상 연극부문에서 단체상을 수상하여 인정을 받고, 『문학춘추』에 「갈대의 노래」(1964), 「신병후보생」(1964)이 추천 완료됨으로써 극작가로 데뷔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남한산성」(1973), 「논개」(1975), 「함성」(1976), 「원효대사」(1976), 「북벌」(1978), 「삭풍의 계절」(1982), 「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1984),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985), 「조국은 외롭지 않다」(1986), 「처용무」(1987), 「길 떠나는 가족」(1991) 등이 있다. 1975년 희곡 「남한산성」으로 제11회 백상예술상 희곡상을 수상하였고, 1986년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로 제22회 백상예술상 희곡상을 다시 받았으며, 1991년엔 「길 떠나는 가족」으로 제15회 서울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하였다. 그 외 1989년엔 문화훈장 '관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희곡집 『남한산성』(1977)이 있고, 그 외 번역서로 『세계 신경향 희곡선』(1976), 『연극론 12장-아더 밀러 연극론집』(1978), 『스즈키 연극론』(1993), 『경극과 매란방』(1993) 등이 있다.

   
 

이윤택(1952~)의 연희단거리패는 1986년 7월 부산 가마골소극장 개관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민간 소극장 연극 정신과 방법론을 탐구하는 실험극단으로 출발했다. 이후 서울 게릴라극장과 밀양연극촌을 중심으로 지역과 경계를 넘나들었다. '오구', '바보각시', '느낌극락같은', '시골선비 조남명', '아름다운 남자' 등 전통과 동시대를 만나게 하는 작품은 물론 '햄릿', '허재비놀이',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코마치후덴', '피의 결혼' 등 해외극을 한국의 독자적인 현대연극 양식으로 수용하는 작품들로 호평 받았다.

1990대 이윤택은 일본의 도야마 현 도가예술촌으로 공연을 하러 간 적이 있다. 도가무라는 1973년 원래 다섯 채의 갓쇼즈쿠리(짚으로 지붕을 엮는 방식의 전통 가옥 형태)를 모모세강 유역에 모아 「도가 갓쇼문화마을」이라 이름지었다.

1976년에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가 이끄는 와세다 소극장(현 극단 SCOT : Suzuki Company of Toga)이 이곳으로 거점을 옮기고 갓쇼즈쿠리의 민가를 개조하여 「도가산보」라 이름짓고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전국 각지로부터 수많은 관객이 찾아올 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지혜가 서려 있는 산촌에서의 예술 활동으로서 각 계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1982년에는 그리스 식의 야외극장(이소자키 아라타 설계)을 신설, 스즈키 다다시는 그 동안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살려 일본 내 최초의 세계 연극제 「도가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 또 1983년에는 스즈키가 창출한 배우 훈련법인 스즈키 트레이닝 메소드를 가르치는 「국제 연극 하계대학」을 열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시설이 도야마 현으로 이관되어, 갓쇼 문화마을은 도야마 현립 도가 예술공원이 되었다. 그 후로 도야마현 난토시 (도가마을은 2004년 행정구역 합병으로 난토시가 되었다.)에 의해 극장, 연습실, 숙소 등이 차례로 정비되어, 현재 주변의 「도가다이산보」,「리프트 씨어터」를 포함한 7개의 극장, 연습실, 200명 이상 숙박 가능한 숙소에 이르기까지 무대예술의 일대 거점이 되었다.

매년 여름에 이루어지는 「SCOT 썸머 시즌」, 다국적 배우에 의해 올려지는 무대공연, 전세계의 배우를 위한 스즈키 트레이닝 메소드 교실, 아시아 각국의 연출가들에 의한 「아시아 연출가 페스티벌」, 일본의 젊은 연극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인 콩쿨」, 「고교생 하계 연극교실」등의 인재 육성 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이윤택은 일본 도야마현 도가예술촌을 방문한 후 1999년 1월 고향 밀양의 한 페교에 연극촌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창고극장, 숲의 극장, 우리동네극장, 가마골소극장, 스튜디오극장, 성벽극장이 차례로 건립되고, 자료관, 사무실, 편의점, 식당도 만들었다. 최근에는 윤대성 문학관이 들어서고, 해마다 7월과 8월이면 밀양연극제를 개최해 금년 2016년에는 제16회 밀영여름공연예술제를 성대하게 개최하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로 인해 밀양시에는 2016년에 국립극장에 버금가는 밀양아리랑 아트센터를 개관하고, 12일간의 연희단거리패의 공연작품으로 전석매진이라는 대성황을 거두었다.

이윤택은 경남 김해시 생림면 낙동강 끝자락 마을 도요리 도요마을 중심에 있는 폐교에도 각종 발표와 워크숍을 할 수 있는 사랑방으로 만들고, 마을 주변 빈집을 사들여 예술인 숙소, 연기 훈련장, 출판사, 카페, 방문객 숙소 등으로 수리해 도요 예술공동체를 형성했다. 거기에 도요출판사까지 차렸다. 2016년에는 20년만에 시집과 시극<숲으로 간다>를 집필하고 출판했다.

이윤택은 대도시 중심과 국공립공연장 위주의 공연예술 활동이라는 고정관념을 극복한 친자연적, 친환경적 공연예술 장을 건립, 공연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한국공연예술의 발전과 창달을 선도하고 우리 연극을 세계정상급 수준으로 이끌고 있는 문화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무대는 객석을 향해 낫을 내려놓은 듯한, 낫 모양의 언덕길이 상수에서 무대 중앙을 향해 구부려져 내려오도록 만들어지고, 배경 가까이 산봉우리 형태의 조형물 여러 개를 무대좌우로 이동시키면서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인형극에 사용되는 어린이 모형 인형을 비롯해 나비, 소, 커다란 물고기, 꽃게 등의 종이바탕에 대나무 살을 붙여 만든 조형물을 출연자들이 들고 그 행세를 하며 등장하고, 객석 하수 쪽에 연주석을 마련해, 타악기와 현악기 그리고 피리와 노래로 극적 분위기 창출에 기여한다. 배경에 영상으로 1956년 9월 6일에 사망한 화가 이중섭의 기일을 비롯해, 6 25사변이 발발한 1950년과 1951년 등 년대가 영상자막으로 투사된다. 이중섭의 그림이 움직이는 화폭으로 재현된다.

이중섭이 즐겨 그렸던 작품의 소재인 소, 게, 새, 물고기, 어린이 인형이 천재적인 설치미술가 이영란의 손길로 되살아나 등장한다. 오케스트라 박스에 앉은 연주자들의 연주음은 극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이끌어 가고, 출연자들을, 움직이는 소조상(塑彫像)으로 연출해낸 연출가 이윤택의 예술혼은, <길 떠나는 가족>을 한 폭의 역동적인 조형예술적 연극작품으로 그려낸다.

극중 일제의 패망은 히로히도 일본왕의 육성방송을 통해 전달되고, 6 25사변은 북한군의 복장으로 등장한 출연자를 통해 식별이 된다. 이중섭이 일본으로 건너간 장면은 일본전통의상을 입은 출연자들에 의해 구별되고, 동란시절의 어려운 모습은 지게를 이중섭과 길거리 주막을 통해 전달된다. 도입과 대단원에서 낫 형태의 언덕길로 마치 동화 속의 생명체 같은 한지종이와 대나무 가지로 제작된 인형들이, 출연자들의 작동으로 춤추듯 무대를 가득 채우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2인 또는 3인의 출연자가 이중섭 작품 속의 생명체를 마임으로 표현하거나 캔버스의 이젤형상으로 서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이중섭으로 출연한 연기자가 이젤에 화판을 놓고 잠시 소의 머리를 그리는 장면은 연극의 백미(白眉)라 하겠다. 대단원에서 출연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들이 이중섭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듯 퇴장하는 장면은 기억 속에 영원히 아로새겨질 듯싶은 명장면이다.

구상 시인의 해설로 시작된 연극은 현대 서양화가 중 피카소를 비롯한 야수파를 소개하면서 이중섭의 그림이 야수파 계열의 화풍을 지니고 알린다. 이중섭의 고향 원주에서의 모습이 부친과 모친과 함께 펼쳐진다. 일제치하에서 군대보다는 그림 그리기를 택하고, 그의 소 그림을 야마모토라는 일본여인이 좋아하면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6 25사변 발발로 부인은 아이와 함께 일본으로 떠난다.

이중섭은 남하해 국제에서 지게꾼 노릇을 하며 지낸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화업에 몰두하지만 이중섭은 캔버스를 구입할 돈이 없어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가 구상 시인과 재회하게 되고, 화가로서의 작품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외국작품의 모작이라는 비평을 듣게 되면서 분노와 심적 고통으로 정신질환을 앓게 되고, 결국 1956년 9월 6일이라는 자막과 함께 별세한다.

   
 

윤정섭이 이중섭으로 출연해 호연과 열연 그리고 작화로 갈채를 받는다, 김소희가 어머니와 주모 등 1인 다 역으로 출연해 인기를 독차지하다시피 한다. 오동식 역시 1인 다 역으로 출연해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다. 일본여인으로 허가예가 출연해 호연과 열창으로 갈채를 받는다. 정연진, 이동준, 신명은, 안윤철, 박정우, 현슬기, 박현승, 오혜민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성격창출 그리고 노래는 물론, 인형과 함께 벌이는 움직임은, 무대를 이중섭 화백의 그림의 세계로 창출시키는 충분한 역할을 해낸다. 특히 주인공 이중섭의 절규 이후의 정적과 느린 인형의 움직임은 이윤택 연출가만이 연출해 낼 수 있는 탁월한 예술적 기량이다.

윤현종, 전상민, 김시율 등 연주자의 기량이 극 분위기를 100%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김시율의 열창은 기억에 남는다.

미술감독 이영란, 무대제작 김경수, 조명 영상디자인 조인곤, 안무 김윤규, 작곡 윤현종 전상민 김시율, 인형제작 이영란 박경자 그 외의 제작진과 기술진의 기량과 열정이 드러나, 대학로 홍익대 아트센터 대극장(극장장 고희경) 연희단거리패의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을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좋을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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