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모두 이룬 그녀에 대한 이야기

[문화뉴스 울트라문화] 서울적십자병원 병리과장 이민진 원장은 하얀 가운을 입고 데스크에 앉았을 때와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모습이 전혀 다르다.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모두 이룬 그녀와 함께 음악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낮에는 의사, 밤엔 뮤지션

화창한 봄날 오후, 양재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이민진 원장을 만났다. 우아한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일찌감치 도착해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왠지 의사라고 하면 차가운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데, 이 원장은 첫인상도 감성적이고 여성스러운 분위기였다. 이 원장은 사실 어렸을 때부터 의사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고. 오히려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해서 어린 시절 피아노 앞에 줄곧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레슨 교사로부터 피아노 전공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지금의 본업은 의사이다.

“피아노를 무척 좋아하기는 했지만, 어린 마음에도 음악만큼은 부담 없이 자유롭게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피아노 전공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약사이신 어머니를 보고 자연스럽게 의대에 진학하게 됐어요”

비록 진로는 의사로 결정했지만, 피아노에 대한 꿈을 아예 놓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피아노를 오랫동안 연주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악보 없이 연주하게 됐고, 우연한 계기로 작곡도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갑자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을 연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때 처음 작곡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혼자만의 취미일 뿐 다른 이들에게 들려줄 기회가 없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송년회 때 여러 사람 앞에서 피아노를 독주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때 처음으로 청중하고 호흡을 맞추며 연주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어요. 공간이 오롯이 음악으로만 채워진 느낌이었죠. 인생의 경험이 쌓이면서 어른이 되어가듯, 곡을 통해 느끼는 감정도 변하고 성숙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음악을 매개로 타인과 공감하는 법을 배운 것이죠”

그해 송년회 때의 연주를 시작으로 이 원장은 음악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고 생각나는 곡들을 녹음했다. 이렇게 차곡차곡 모은 자작곡들로 지난 2015년에는 <넌 지금 어디에>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의사와 뮤지션은 모두 마음을 치유하는 사람

병원 일로 바쁜 이 원장은 일반 뮤지션처럼 작곡 활동을 많이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일상에서 얻는 영감의 역할이 컸다. 병원에서 마주하는 환자나 보호자, 가족들의 모습, 혹은 진료봉사 때 본 보호자의 애달픈 눈빛 등에서도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요즘은 개별 환자의 특성에 맞춰서 치료계획을 세우는 ‘맞춤형 진료’를 지향하고 있잖아요? 이런 때일수록 기계적이고 지식만능적인 치료보다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치유해줄 수 있는 진료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찌 보면, 음악과 의사가 하는 일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어 보이지만, 이 원장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두 가지 일이 모두 ‘치유’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의사가 되는 과정이 우리 몸을 의학적으로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한 긴 여정이었다면,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상처받은 마음을 음악으로 치유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음악이 박자와 리듬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의사 역시 환자의 고통을 치료하기 위해 마음을 터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녀는 새로운 소리 또는 음악적 기법에 대해 보다 많은 공부를 할 계획이다. 더불어 자신의 곡들이 듣는 이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그래서 다시 듣고 싶어지는 곡이 되는 것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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