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다시 만나는 전설, 마리아 칼라스

 
   
▲ 배우 윤석화(왼쪽)와 연출 임영웅(오른쪽)이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 

"그건 우리들의 시간이었어요. 그 시간에 감사드립니다."

배우생활 40주년을 맞은 연극배우 윤석화가 1998년 이후 18년 만에 '마스터 클래스'로 다시 관객들을 찾는다.

오는 3월 10일부터 20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막이 오르는 이번 공연은 1998년 당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윤석화는 당시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해서 최연소 이해랑 연극상을 받는 영예를 안은 바 있다. 배우 윤석화의 치열한 무대인생 40년과 인간 윤석화의 삶이 더욱 깊고 진한 '마리아 칼라스'로 부활한다.

연극 '마스터 클래스'는 연극과 오페라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마스터 클래스란 음악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일류 음악가들이 지도하는 실기 수업을 뜻한다. 마리아 칼라스는 실제로 71년부터 약 2년 동안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직접 진행한 바 있다. 미국의 저명한 극작가인 테렌스 맥날리는 직접 이 수업을 참관해서 그 경험을 되살려 '마스터 클래스'를 창작했다고 전해진다. 열정과 자신감, 오만함과 풍미를 가진 마리아 칼라스가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되살아난다.

2016년 현재에도 여전히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오페라계의 신화 '마리아 칼라스'의 사랑과 배신, 성공과 좌절이 담긴 그녀의 삶을 연극으로 다시 재구성한다. 공연에 앞서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연출가 임영웅, 마리아 칼라스 역의 윤석화, 소프라노 소피 역의 배해선, 소프라노 샤론 역의 이유라, 테너 토니 역의 이상규가 참석한 가운데 '마스터 클래스'의 제작발표회를 진행했다. 음악감독과 피아니스트를 동시에 맡은 천재 마에스트로 구자범은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해 임영웅 연출님의 60주년을 기념하여 윤석화 배우가 '먼 그대'를 헌정한 바 있다. 이번에는 임영웅 연출이 윤석화 배우의 4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직접 공연 연출을 맡았다.

ㄴ 임영웅 : 연출하는 것에 대한 소감이라기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윤석화' 배우가 뭔가를 한다니까 뭐가 뭔지 모르고도 윤석화라서 참여했다.

임영웅 연출님은 한국 연출을 이끌어온 신화다. 연출가로서 마스터클래스의 가장 큰 매력은?

ㄴ 임영웅 : 단연코, 윤석화라는 빛나는 한국의 여배우다. 배우 윤석화와 많은 작품을 함께 해서, 윤석화가 이 작품을 의미 있게 선보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수많은 작품 중 40주년 기념공연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공연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ㄴ 윤석화 : 40년 배우의 길을 걸어오다 보니 '나는 무엇을 위해 연극을 했는가. 지금 나는 어디 있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 사회는 오래 하나를 하는 것에 대한 존중, 혹은 이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는 문화보다는 젊고, 신선한 것들에 대한 빠른 유행을 한다. '과연 내가 앞으로 얼마나 무대 설 수 있을까'하는 자괴감과 쓸쓸함을 종종 느낀다. 물론 대부분은 지금껏 많은 사람 앞에서 연극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무한히 감사하지만, 그 씁쓸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18년 전, 이 공연 초연 당시, '마리아 칼라스' 그녀의 삶과 젊은 나이에 오페라를 위한 열정이 그녀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한 그 치열함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전 세계 디바로 불리우는 마리아 클라스 당신도 그랬었군요.'와 같은. 본인도 어떤 고난과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녀처럼 이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예술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마리아 칼라스와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됐다. 이제 40년을 찍고, 이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더 큰 희망과 위로를 나 스스로 받고 싶고, 예술을 꿈꾸고 사랑하는 모든 관객에게 예술이라는 것이 때로는 이상하고 치열해야지만 예술이 있는 사회가 되고, 이는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통해 삶의 마디마디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이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좋은 가치가 될 거라고 믿었다.

   
▲ (왼쪽부터)이상규, 윤석화, 임영웅, 배해선, 이유라가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다

연극 '마스터 클래스'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가?

ㄴ 윤석화 :  연출님의 말대로 윤석화와 마리아 칼라스도 될 수 있다. 그 불꽃 튀는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윤석화라는 살아있는 악기로 이 시대에 연주하고, 마리아 칼라스의 그 정신과 가치를 윤석화가 줄 수 있는 살아있는 그 무언가가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리고 배우 이상규, 배해선,이유라 이 세 분의 아리아를 듣는 것도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또한, 음악감독과 반주를 동시에 맡은 구자범을 볼 수 있는 것도 의미 있다. 구자범과의 인연은 22년 전.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뮤지컬을 할 때 시작됐다. 연세대 철학과 졸업반에 있던 구자범은 그때 공연에서 피아니스트를 했다. 피아노와 음악을 순결하게 사랑하는 그의 모습과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아름다운 소년 같은 모습으로 기억된다. '마스터 클래스'에서는 음악감독과 반주자 역할을 동시에 해서 작품 뒤에서는 음악을 만들겠지만, 무대 위에서 피아노 치는 모습도 보여줄 것이라 큰 매력이 될 것이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연극 '나는 너다'에 이어 마스터 클래스까지 윤석화 배우와의 특별한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ㄴ 배해선 : '윤석화' 선생님이라는 그 이름이 참 커서, 그 그늘 안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것 같다. 때로는 스승님이기도 하고, 친한 옆집 언니, 엄마, 좋은 오빠, 형 같기도 하다. 어떨 때는 윤석화 선생님의 나이가 의심스러울 만큼 아이 같은 순수함을 가진 사람이다. 나에게는 여러 모습으로 존재하는 큰 나무 같은 분이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뜨거움이 떠오른다. 불꽃 같은 열정이랄까. 배우 본인 혼자만 돋보이는 무대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모두를 위한 무대를 만드시는 거로 기억한다. '토요일 밤의 열기'가 그러했고, '나는 너다.' 연출도 그러했다. 이때는 연출하셨는데도 같이 무대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40 주년을 대표하는 뜨거운 작품에 부족하고 오페라를 해본 적 없는 후배에게 같이 작업하자고 불러준 사랑과 열정에 감사하다. 말이 쉬워 40년이 아닌가. 오래 사셔서 계속 후배들과 예술을 빛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지치실 때마다 뜨거움이 차가우므로 변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 시대의 진정한 뮤즈가 무엇인지, 가르침이 무엇인지 이 공연을 통해 선생님은 많은 가르침을 우리와 관객들에게 준다. 나도 빛나는 소피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연극 '마스터 클래스' 1998년 초연 당시 류정한 배우와 함께 초연배우로 활약했다. 배우 윤석화와 18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라서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 지난 공연과 바뀐 점이 있을 것 같다.

ㄴ 이유라 : 윤석화 배우가 다시는 이 작품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다시 공연한다고 해서 반가웠고 기뻤다. 초연 멤버라고 다시 불러주셔서 영광스럽다. 18년 전에는 단순히 마리아 칼라스를 좋아하는 단순한 마음과 동경심으로 작품에 임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특별히 윤석화 선생님의 40주년 기념공연이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예술가이자 인간 윤석화에 대한 존경심과 동경함이 진심으로 우러나서 이 작품에 진지하게 임하고자 한다. 현재 제자가 너무 늙어버려서 좀 부끄럽지만, 선생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멋진 샤론이 되겠다. 18년 전보다 시간이 흘렀고, 내가 경험한 많은 공연들을 토대로 더 멋있고 완성도 있는 샤론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 테너 이상규가 오페라 '토스카' 중 Recondita Armonia를 열창하고 있다.

마스터 클래스 초연 당시 테너역을 맡았던 배우 류정한과 서울대 성악 동문인 걸로 알고 있다. 성악 전공인데 어떻게 연극으로 참여하게 됐는가?

ㄴ 이상규 : 노래하는 이유는 관객과 나의 감정과 이야기로 소통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어떤 무대건 뮤지컬, 오페라, 연극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 역시 도전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선배님들한테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

오늘 기자간담회에 구자범이 나오지 않았다. 구자범이 언론과 노출이 적어서 기대가 컸다. 구자범이 어떻게 이 작품에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ㄴ 윤석화 :구자범과의 첫 인연은 아까 언급했듯 94년도 '아가씨와 건달들'이었다. 대부분 전형적인 방식으로 클래식하는 다른 단원들과 구자범은 새로운 일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많은 예쁜 소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특별히 연습이 끝난 후에도 배우들을 위해 피아노를 쳐주어 연습을 일일이 해주었다. 그 후에 그는 독일에 갔고, 나는 연극배우로 열심히 활동하다가, 초청으로 서울에 온 구자범을 만났다. 스승과 제자, 예술 동지, 친구 같은 사이다. 아시다시피 그는 힘든 길을 걸었다. 그가 수면위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추어 합창단을 그가 지휘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연을 갔다가, 그러한 공연을 만든 구자범이라는 음악가 예술가가 귀하고 예쁘게 느껴졌다.

임영웅 연출의 조연출 노릇을 내가 종종 했는데, 용기를 내서 구자범한테 공연을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초연 때는 브로드웨이에서 음악 하던 친구가 했고, 지금 국내에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구자범이 생각났지만, 감히 그에게 부탁하기 어려웠다. 워낙 지휘자로 큰 사람이 됐다. 그래도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고, 고맙게도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당시 구자범은 "제가 공연 무대에 꿈을 가진 것이 선생님과 작업했던 22년 전 그 작품이었습니다. 너무 재밌을 거 같네요."라고 말했다. 특히나 그가 독일의 오페라 극장에서 지휘해서 이 작품에 매력을 느낀 것 같고, 그의 도전에 대한 내적 호기심이 연극 마스터 클래스에 드러난 게 아닐까.

   
▲ 연극배우 윤석화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8년 전 당시 기사를 살펴보니, '명성황후', '리어왕' 시절 윤석화는 슬럼프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마스터 클래스' 작품으로 호평과 상을 받았다. 상을 받고, 다시는 이 작품을 공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40주년 기념작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다시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ㄴ 윤석화 : '마스터 클래스'라는 작품을 다시는 안 하려고 했다. 당시 '명성황후'를 공연하고 처음으로 은퇴를 생각했다. 당시 나를 구해준 작품이 바로 마스터 클래스였다. 지금은 돌아가신 강유정 선생님이 나에게 작품 제안을 하셨다. 대본을 읽어봤고, 이 작품이라면 나를 위로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재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으로 난관을 뚫고 겨우 해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최연소 이해랑 연극상을 받아서 더는 여한이 없었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이 작품을 하는 내 내도 정말 힘들었다. 작품에 온 힘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그 안에서 나 스스로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는 안 하고 싶었다.

그런데 40주년 대표작품을 고민하면서, 40년 동안 고맙고 감사했던 관객, 기자들, 친구들, 선후배들한테 다 투표를 해봤는데 '마스터 클래스'가 많이 나왔다. 이쯤에서 이제는 이 이야기를 조금 할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꼭 잘돼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연극을 40년 동안 한 나 자신을 반추했다. 마리아 클라스를 통해서 예술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지금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았나.

배우 생활 40주년 맞은 소감과 기념 작품을 임영웅 선생님께 연출을 부탁한 이유가 궁금하다.

ㄴ 윤석화 : 40년 동안 한 것에 대해 가장 큰 소감은 "감사합니다"이다. 나를 보아준 모든 분에게도 감사하고, 고비도 많았지만 아직 버텨서 이만큼 온 나 자신에게도 감사하다. 그래도 항상 후회, 쓸쓸함, 회한을 느꼈다. 이 또한 내가 앞으로 더 살아가면서 작품에 녹여내야 하는 참된 삶의 모습이라고 믿는다. 이 작품을 하면서 슬펐던 점은 제작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박정자 선생님이 40주년 때 혼자 애쓰시는 걸 보면서 안 하면 그만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러나 내가 40주년이 되니 박정자 선생님의 입장이 됐다. 40주년 기념공연 꼭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내가 이 시점에서 방점 하나를 찍지 않으면 다시 더 나아갈 힘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아서 공연을 올리게 됐다. 환경이 어떠하든 나의 길을 묵묵히 가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가장 큰 응원과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와 가장 많은 작품을 함께 하시고 아버지 같으신 임영웅 선생님이라면 나를 응원해주실 거라는 생각을 했다. 연극인으로서 많은 길과 방향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선생님이 연극인으로서 60주년을 맞은 작년에 부족한 힘이지만 '먼 그대'라는 작품을 45일이라는 시간 동안 연출, 각색해서 모노드라마처럼 공연할 수 있었다. 선생님을 향한 내 나름의 사랑이었다. 열심히 노력했다. 메르스라는 악조건도 있었는데, 매진도 되고, 선생님도 보러오셔서 뿌듯했다. 선생님이 연로하셔서 어렵지만 내게도 선생님이라는 큰 그늘이 필요했다. 사실은 나도 살 떨린다. 나도 나이가 있는데 과연 배우로서 에너지를 보여주고 대사도 다 외울 수 있을까 걱정된다. 그래도 연습하면서 가는 거고, 선생님이 계시면 응석도 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보다 선생님은 나를 이해해주시니까. 선생님이 계시면 안심이 되는 게 있다. 장인. 한마디 딱하면 내가 딱하고 알아먹는다. 선생님이 연출을 해주면 천군만마를 얻는 느낌일 것 같았다. 사실 제안하면 거절하고 야단맞을 줄 알았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울먹)

올해 계획은?

ㄴ 윤석화 : 극장 스케줄 잡기 힘들지만, 9월에 여건이 된다면 새 작품을 하나 할 계획이다. 후배들과 함께 창작극을 공연해보고 싶다.

윤석화 선생님을 젊은 시절부터 봤는데,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ㄴ 임영웅 : 윤석화라는 배우가 처음에 등장했을 때 당돌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겁 없이 뭐든지 덤벼들었다. 이는 자기가 자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누구나 배우 하면 자신감은 있다. 그러나 겁 없이 덤벼들 만한 용기도 필요하다. 실제로 작업을 같이 해보니까 연출가보다 더 열심히 작품을 읽고, 생각하고, 분석하는 그런 배우다. 사실 열정과 노력만으로 좋은 배우가 될 수는 없다. 그녀는 특별하다. 있는 그대로 개성을 가지는 좋은 배우다. 지금은 성장해서 한국의 대표 연극배우 몇 명을 꼽으라고 하면 손가락 안에 들지 않나. 

[글] 문화뉴스 김진영 기자 cindy@mhns.co.kr

[사진, 영상]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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