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하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공간 마련

▲ 지난 30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는 야구소년 발표회가 열렸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상당히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학생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야구가 아니다. 야구를 잘 함으로써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있겠지만, 선수 이전에 학생이라는 사실은 공부하는 이들이나 운동하는 이들에게 모두 적용되기 마련이다. 수능 시험을 앞두건, 전국무대를 앞두건 간에 학생들이라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을 으뜸가는 가치로 두어야 한다. 수행평가나 현장 학습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도 학교 안에만 있으면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야구 선수들이 목동 야구장에서 야구를 하는 것도 현장 학습의 일환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30일, 서울 모처에서는 꽤 의미 있는 소모임이 열렸다. 선수들이 아무 제약 없이 본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야구 소년 발표회'가 열린 것. 이종열 SBS SPORTS 해설위원과 '코치라운드'의 주관 아래, 리틀 및 학생야구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선수들의 속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 꽤 유의미한 시간이 이어졌다.

프로야구도 자기 PR의 시대,
재사회화의 과정도 이러한 소모임에서 시작

일부 선수들은 아직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 듯,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종열 해설위원이 되도록 학생들 스스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짧게 질문을 이어가면서 꽤 자연스럽게 발표회가 진행됐다. 팀의 에이스이면서도 올해 부상으로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해서 안타까웠다는 한 고교 선수는 "3학년 선배가 긴 이닝을 던지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다. 적어도 내가 다치지 않았다면, 마운드에서 힘을 보탤 수 있었다는 생각이 컸다."라며, 강한 승부욕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그러한 만큼, 내년 시즌에는 좋은 모습으로 마운드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그러는 한편, 초등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야구의 매력에 빠져 리틀야구단에 가입했다는 유소년 선수도 있었다. 아직 야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추후 선동렬이나 최형우 같은 선수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에 반해 내년 시즌부터 중학교에 진학하는 한 선수는 "초등학교 시절, 8번을 치다가 5번으로 올라갔다. 그렇지만, 내 실력이 중/하 정도라고 생각한다."라는, 다소 놀라운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상당히 의외라고 밝힌 이종열 해설위원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해당 학생은 "좋은 투수들이 나올 때 다른 친구들은 잘 친다. 그런데, 나는 실력이 떨어지는 투수들의 볼은 잘 받아 치는데, 에이스가 나올 때마다 잘 못 친다. 어느 투수가 나오건 잘 쳐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솔직하게 본인의 의견을 밝혔다.

▲ 선수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운 이종열 SBS SPORTS 해설위원. 사진ⓒ김현희 기자

이에 대해 이종열 해설위원은 "국가대표 선수들도 상대 국가에서 에이스를 내면, 못 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타자들이 위축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절대 아니다. 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서로 격려한다. 그 나이 때 그러한 고민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모두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유일하게 고교생으로 참가하여 가장 먼저 발표한 선수 역시 "초등학교 때 잘 했던 친구들이 자만하여 그 실력이 정체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선수들이 고교 때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맏형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리틀야구에서 시작하여 초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갔다는 유소년 선수는 본인의 롤 모델로 '클레이튼 커쇼'를 언급하여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롤 모델 중에서 유일하게 메이저리거가 언급됐기 때문이었다. 폼 교정 이후 4학년 때 홈런 두 개를 쳤다는 이 유망주는 추후 KBO 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발표회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좋은 시도로 바라볼 수 있다. 학부모들도 잘 몰랐던 아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그 하나요, 발표를 했던 선수/부모님간 상호 커뮤니케이션 구도를 형성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재사회화 교육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 또 다른 하나다. 학생야구의 절반은 어떤 의미에서 학부모들께서 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소모임을 만들고, 또 아들들을 참가시킨다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빠를수록, 그리고 지속될수록 좋다.

한편, 본지에서도 해당 소모임의 활성화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 8월 야구팬 박성진씨로부터 기증 받은 장서, 짐 애보트의 자서전을 기증하여 참가자 전원에게 배포했다.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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