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연극'에 대해 김태형, 지이선이 내놓은 그들의 대답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2017년의 마지막을 가장 밝게 빛낼 작품이 등장했다.

지난 21일 오후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연극 'The Helmet(더 헬멧)-Room's Vol.1(이하 더 헬멧)'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연극 '더 헬멧'은 '하얀 헬멧'이라는 공통된 소재로, 서로 다른 두 단체인 '백골단'과 '화이트헬멧'의 이야기를 각각 '룸 서울'과 '룸 알레포'라는 두 가지 에피소드로 풀어 가는 작품이다. 헬멧 A역에 이석준, 정원조, 헬멧 B역에 정연, 손지윤, 헬멧 C역에 양소민, 한송희, 헬멧 D역에 이호영, 이정수, 헬멧 E역에 김도빈, 윤나무가 출연한다.

여기에 각 룸을 빅 룸과 스몰 룸으로 나눠서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트릴로지' 시리즈나 '사이레니아' 등 '좁은 공간에서 느끼는 현장감'을 넘어서서 공간을 구분함으로써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없게 만들어 객석에 앉아서 '바라보는' 느낌을 걷어내고 공간에 '함께하는' 느낌을 극대화한 것이다.

즉 관객들이 룸 서울 에피소드를 보러 가서 빅 룸의 객석에 앉을 경우 빅 룸에서 벌어지는 사건만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스몰 룸에 앉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둘은 결국 하나의 큰 '룸 서울' 이야기로 귀결되지만, 반대쪽 이야기를 볼 수 없는 관객들은 눈 앞에 벌어지는 일보다 벽 너머의 일에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고 이는 작품에 대한 강한 집중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 김태형 연출

김태형 연출은 "이 이야기는 공간을 분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라고 밝힌 뒤 "하나의 공간을 나눠서 같은 시간을 쓰고 있지만 다른 상황의 이야기를 해보자. 양쪽에서 주고받는 대화나 음향을 통해 사인을 주고 받는 그런 방식의 공연을 준비하자는 형식에서 먼저 출발했다. 동일한 사운드를 두고 반대 방의 상황을 모르기에 건너편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게 만드는 등 형식에서 먼저 출발하다보니 거기에 적절한 이야기를 찾다가 서울에서는 이런 백골단에 관한 이야기. 알레포는 무너진 폐허에 갇힌 아이와 그 아이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형식을 먼저 구상하고 이야기를 찾아보자고 했다."고 공연의 제작 과정을 밝혔다.

또 동일한 타임라인에서 갈라진 두 공간에서 개별적으로 흐르던 이야기가 어떤 순간을 계기로 딱 맞아떨어지는 놀라운 연출을 선보인다.

김태형 연출은 그 방법에 대해 "특정한 신호도 있고 어떤 음향이나 대사가 있을 때 맞춰서 진행된다. 설사 한 쪽의 이야기가 완성되지 못했어도 반대쪽에서 신호가 올 경우 그 구간을 점프뛰거나 반대로 한 쪽의 진행을 기다릴 때 나누는 대화도 만들어뒀다. '버퍼링'이 가능한 구조를 마련해놨다."며 방법을 밝혔다.

▲ 지이선 작가

지이선 작가도 대본을 든 채 "그래서 (대본이)가로로 돼있다. 한 페이지에 양쪽의 이야기가 동시에 담겨있다. 그래서 배우와 스태프 모두 고생 많았다. 그래도 극장은 칸막이가 있어서 여유가 있는데 연습실에선 그냥 동시에 진행돼서 양쪽 보면서 정신없이 맞췄던 게 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해낼 수 있었다."라고 과정을 설명했다.

윤나무 배우는 이에 대해 "방이 나뉘고 싱크가 잘 맞아야 하는 게 있어서 (상대)배우들을 전적으로 믿고 가지 않으면, 완전 신뢰하지 않으면 잘 안 맞는다. 그래서 서로 믿고 의지하고 감화, 감동 받으면서 연습을 해서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석준 배우는 "'트릴로지' 시리즈가 너무 새로운 시도라서 관객을 코앞에서 만나는 기쁨과 내가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정말 재밌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간을 나눈다길래 대본 받으며 '이제 막 던져놓고 배우한테 하라고 하는구나' 했는데(웃음) 근데 또 이게 만들어지는 거 보면서 '난 이제 연극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공간 시간 모든 것을 초월한 연극이 나오는 거 같아서 굉장히 반갑고 흥분된 상태다. 트릴로지 시리즈에 영감을 얻어서 방을 나누게 됐다고 하셨지만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하고 앞선 공연이라 제게도 큰 의미가 있는거 같고 다들 그렇게 보실 거 같다. 앞으로 이들이 어느 공간으로 갈지는 궁금하지 않지만(웃음) 더 좋은 공간으로 가면 좋겠다."라며 이번 시도를 통해 새로운 연극을 만들어 가는 기쁨을 전했다.

'더 헬멧'은 이렇듯 '카포네', '벙커', '트릴로지' 시리즈 등을 통해 공간에 대한 꾸준한 고민을 계속해온 김태형 연출과 지이선 작가가 마침내 21세기의 새로운 연극이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내놓은 셈이다.

 

공간에 대한 고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평소 장애인 등 약자를 다루는 태도에서 드러난 '정치적 올바름'과 '여성 중심 서사'를 꾸준히 찾아온 지이선 작가는 새로운 창작극 '더 헬멧'에서 이를 또 한번 발전시켰다.

이날 시연한 룸 서울 에피소드에서는 백골단이 '헬멧'으로 등장하는데 여성은 조력자거나 피해자고 남성들의 이야기로만 기억하던 민주화운동 시절의 이야기 속에 묻혀져 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찾아내 새로운 여성 중심 서사를 만들었다.

이에 대해 지이선 작가는 "(시연을)보셨겠지만, 영화 '에일리언' 때문에 백골단 이야기를 풀 수 있었다. 제가 어릴적에 '에일리언' 보고 무척 감동받고 팬이 됐다. 그 시절의 어른들은 무척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들이지만, 여자는 '커피를 잘 타야' 한다고 가르쳐주신 분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에일리언'은 미래를 보면 저런 여성이 존재한다. 미래라는 건 여성이 우주에 나가서 사람을 구하고 괴물을 해치운다고 알려줬다. '백골단' 이야기를 일종의 장르물처럼 진행하기에 판타지라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분명 민주화운동에도 이렇게 활동한 여성분들이 계실 거고 묻힌 여성의 이름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그 당시 '에일리언'이 2편 먼저 개봉되고 나중에 1편이 개봉되기도 했다. 저는 평소 여성 중심 서사에 관심이 많고 같이 하는 김태형 연출님도 그렇고다. 그게 가능한 건 주변에 훌륭한 여성 배우, 스탭, 동료, 또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남성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는 앞으로 서사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중심 서사가 각광 받을 수 있는 때가 분명 있고 잘 만들면 큰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룸 알레포에서도 여성 역이 잘 드러나도록 만들었으니 꼭 보러와 달라"며 룸 서울에서 드러난 서사적 완성도에 관해 밝혔다.

김태형 연출 역시 "여배우들이 싸우게 하고 싶었다."며 "여배우 둘이 싸우고 장르물로 말하면 악당을 무찌르는 역할을 맡기고 싶었다. 격투 장면이 너무 어렵고 괴롭기도 했지만 끝까지 모른척하고 해야한다고 밀어붙여서 하게 했다. 그래서 '스몰 룸'에서 벌어지는 여자들의 격투뿐만 아니라 '커피를 타는' 행위와 여성으로서 운동하는 것. 그 안에 겪게 되는 운동이란 진보적인 행위와 반대로 무척 보수적인 남녀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작가님이 이야기를 충분히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경대장과 격투장면은 작가님이 '에일리언' 이야기한거처럼 여배우가 남배우를, 남성 캐릭터를 힘으로, 기술로 제압하는 게 부당한 폭력에 대해 복수하는 것을 꼭 해보고 싶었다. 여성들의 격투장면하면 흔히 생각하는 물거나 머리채를 잡거나 그런 액션이 아니라 남자들만 한다고 믿었던 액션을 해보고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그런 장면이 점점 이뤄지고 있지만, 무대에서 이뤄지지 않았기에 우리 배우들이 멋지게 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술감독님은 점점 신나게, 강도 높여가며 무리한 액션. 하지만 멋있는 액션을 해내게 해서 어제 그제 공연을 올렸고 그 장면에서 감동받는 모습을 보며 배우들에게 고맙고 같이 고생해서 만들길 잘했다 싶었다. 공연에서 말하기 웃기지만 '왜 여자가 그렇게 하면 안돼?' 이런 걸 충분히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시연되지 않은 '룸 알레포'의 경우 '백골단'과는 전혀 상반된 소재인 시리아의 '화이트헬멧'을 다룬다. '화이트 헬멧'은 시리아 내전 현장에서 활동하는 민간 구조대를 말한다. 하얀 헬멧을 쓰고, 파괴된 현장에 출동해 긴급 구조대 역할을 하는 자원 봉사자들로 2013년 시리아 알레포 지역에서 20여명으로 출발해 지금은 3,000여명이 함께 하고 있는 국제 평화의 상징이다.

지이선 작가는 '헬멧'을 통해 어떻게 이런 상반된 이야기를 만들게 됐는지에 대해 "이 작품에 대해 고민하게 됐던 부분이 방 두 개를 가지고 해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새로운 형식이니까 내가 진짜 하고싶은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애정을 가진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백골단과 시리아 내전 이야기에는 몇 년 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벙커 트릴로지'를 준비하며 작년에 전쟁과 인류에 대한 자료를 많이 준비하게 됐고 '화이트헬멧'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 그래서 연출님과 회사에 그 소재를 쓰고 싶다고 했고 그럼 '헬멧'이란 소재로 묶어서 '백골단' 이야기도 같이 가자고 제안해주셨다. 예전에 그런 이야기 나눈 게 있다. 우리는 마음 안에 '헬멧'을 다 가지고 있다.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가치를 갖는가에 대해 이 작품을 더 풍부하게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양쪽에 나오는 헬멧은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시리아에 나오는 헬멧은 사람을 구하는 헬멧이고 백골단은 사람을 억압하는 헬멧인데 우리는 그것을 같이 생각하고 이야기해보고자 헬멧이란 소재를 생각했다."고 전했다.

 

프레스콜을 통해 공개된 연극 '더 헬멧'은 신선하다는 말로 부족한 작품이었다. 이제 그들의 창작에 대한 관객들의 대답만이 남았다. 연극 '더 헬멧'은 2018년 3월 4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공연된다.

some@mhnew.com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