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여기 최고의 배우는 아닐지 몰라도 최고가 되기 위해 땀흘리는 이들이 모인 극단이 있다.

바로 '배우훈련집단'을 자처하며 연기와 생업을 병행하는 이들이 모인 곳 극단 '배우는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영어선생님, 청원경찰, 일용직 노동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낮에는 생업에 매진하고 밤에는 연기 열정을 불태운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연극 동호회, 뮤지컬 동호회가 상당한 수에 이르지만 극단 '배우는 사람들'은 "연극을 취미로서 하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시대가 낳은 아픔의 한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배우로서 생활하는 게 사실 힘든 면이 많아요. 수입이나 생활이나.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벗어나기)위해서 직장이 필요한 게 사실이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집단은 '배우를 꿈꾸는' 집단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들은 창단 3년차를 맞아 2018년 1월 12일부터 14일까지 극단의 5번째 공연인 연극 '나빌레라'를 올린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연극 '나빌레라'는 2012년 '젊은 연극제 프린지 페스티벌'에 선정된 손유진 연출의 작품으로 극단 서울공장의 배우이자 '배우는 사람들'의 대표인 백유진 연출이 맡아 새로운 해석으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

늙은 정난 역에 김혜미, 어린 정난 역에 안서희, 순이 역에 이지현, 정우 역에 조유진, 덕만 역에 채수룡, 일본군 장교 역에 김대일, 일본군인 타이치 역에 김동재가 출연한다.

지난 13일 오후, 직장에서 퇴근한 이들이 MHN스테이지에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백유진 연출, 이서율 조연출과 함께 전 배우가 자리한 인터뷰 현장에서 이들은 "이전까지 모두 전석매진을 기록했다"며 '열심히 할테니 잘 봐주세요'보다 '기대하고 오셔도 좋습니다'를 외치는 당당한 배우들이었다.

▲ 극단 배우는 사람들. 좌측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동재, 김대일, 백유진, 조유진, 채수룡, 안서희, 이서율, 이지현, 김혜미.

연극 '나빌레라' 어떤 작품인지 설명해달라.

ㄴ 백유진 연출: '나빌레라'는 우리처럼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와 그 주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번 공연에 임하는 소감을 알려달라.

ㄴ 백유진 연출: '나빌레라'라는 작품은 '위안부'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연출할 때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마음 속에 책임감이 무겁기도 하고, 최대한 그때 소녀들을 생각하면서 그 마음을 진실성 있게 대변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ㄴ 김혜미: 그동안 '나빌레라' 하면서 '늙은 정난' 역을 세 번 정도 해왔다. 89세 할머니를 연기하는게 제 나이에 있어선 너무 어렵고 깊은 상처를 가진 할머니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연기로 표현할 수 있을까. 판소리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해서 계속 연구하고 길가면서도 할머니를 주시하게 되고 그들의 사연을 보게 됐다. 생활 속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이번 '배우는 사람들'과의 '나빌레라'에서는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무거운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관객들이 보실 때 한 여자의 사랑, 추억이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ㄴ 김대일: '나빌레라'라는 작품을 공부하며 느낀 게 일단 다른 작품과 다르게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있고 좀 더 책임감 있게 연극을 올려야 할 것 같다. 저희가 '나빌레라'라는 극을 올리면서 아직도 '위안부' 사건이 역사적으로 풀리지 않고 있는데 이 연극으로 할머님들이 조금이라도 위로 받으시면 좋겠고 저희가 연극을 성공적으로 올리면서 이를 통해 '위안부'에 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돼고 할머니들을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게 연극을 올려야 할 것 같다.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저희가 아직 부족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공감하려고 저희 배역에 대한 분석도 열심히 했고 무척 열심히 달리고 있다. 이번 공연은 정말 마지막 공연이다 생각하고 열정있고 책임감 있게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ㄴ 백유진 연출: 일본군 종군'위안부'라는 사건은 우리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며 마주치고 등교하는 아이들, 집에서 투닥거리는 내 여동생, 내가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이야기.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에게 또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이야기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

작품에 판소리가 들어가고, 연습 준비 과정에서 마치 음악극 같다는 이야기도 하더라. 음악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궁금하다.

ㄴ 백유진 연출: 공연예술에서 음악이 쓰이는 경우는 많은데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은 음악이 단지 BGM(배경음악)으로 쓰이는 게 아니라 음악이 쓰이는 장면에서 배역이 다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판소리 역시 대사로 다 할 수 없을 때, 분에 넘칠 때 그것을 노래로 표현한다. 음악과 극 안의 삶이 함께 공존하는 마음이면 좋겠다는 의도로 연출하기 위해서 음악을 선택하게 됐다.

연출적 초점을 어디에 맞췄는지 알려달라.

ㄴ 백유진 연출: '위안부' 사건은 사실 영화도 많이 나오고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안부' 사건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걸 당한 소녀와 주변 사람들도 그저 저희처럼 밥 먹고 잘살고 평범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연기하는 것은 실제로도 힘든 일이었을 것 같다.

ㄴ 김혜미: 제가 26인데 89으로 가기엔 너무 힘들고 어렵고 아직은 그런 김혜미라는 사람 안에 말 못할 비밀이 없기에 좀 더 힘들었어요. 나와있는 '아이 캔 스피크', '귀향' 등도 보고 출퇴근 시절에는 '위안부' 할머니의 영상을 보면서 다녔는데 덕분에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어요. 어떻게 더 녹여낼 수 있을까. 89세 할머니의 모습. 담담하면서도 그 아픈 시절을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힘든 모습을. 그래서 제 역이 '나빌레라'가 만들어지면서 많이 변했다. 원래는 살아있는 할머니기도 하고 영혼이기도 했고 꿈을 꾸기도 했어요.

지금은 어떻게 정리됐는지.

ㄴ 백유진 연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 꿈에 자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 친구들이 나오면서 그 꿈을 통해 누구에게도 말 못했던 한을 풀고 가는,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지르지 못한 걸 질러보고, 웃어보고 싶은 걸 웃어보고 그런 여정을 즐기는 과정을 그렸다.

 

반대로 일본군 연기도 그렇고, 어려운 작품에 참여하는데 힘들지 않은지.

ㄴ 김동재: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극 전체로 봤을 때 일본군들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서 일본군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지 고민도 좀 됐다. 그리고 작품하면서 저희끼리 장면을 만들고 전체적으로 런을 돌고, 공연 끝나면 벅차고 설레야 하는데 오히려 극이 끝나면 전체가 겸손해져서 커튼콜 때 숙연해지고 역사를 생각하고, 그 시절을 헤어나올 수 없는 감정이 들더라. 마음으로 연기하는 모습을 훈련해서 보여드리려고 하고 있다.

ㄴ 안서희: 배역으로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하는 건 당연하지만 '나빌레라'에서 다루는 삶은 보통의 삶이 아니다보니까 마음적으로 힘든 게 많았다. 그걸 개인적으로 너무 깊게 빠지지 않으면서도 배역으로서 살려고 하는 게 제게는 좀 어려웠다. 많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방향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했다. 배우로서 분석하는 게 힘들다기보다는 한 여자로서, 개인으로서도 힘든 면이 많은 작품이었고 그래서 애착이 더 많이 가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연습하면서 직접적으로 '위안부'에 관한 장면. 위안소에 가는 장면이 있다면 성폭력을 당하는 연기를 매일마다 그걸 되풀이해야 하니까 배역이고 연기라고 해도 힘든 면이 있기에 마인드컨트롤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저만 힘든 건 아니고 저희가 16세, 12세 역을 해야 하니까 다른 역들, 악역을 연기하는 배우도 힘들었을 것 같다.

ㄴ 이지현: 그냥 말만 한다고 위로가 되는 건 아니잖나. 그 사람의 아픔을 알아준다고 느껴질 수 없기도 해서 그런 면을 잘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또 일본군이 쳐들어오기 전에 '정난'이랑 '순이'랑 '덕만'이 순수하게 노는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런 걸 잘 표현하고 싶다.

ㄴ 이서율 조연출: 저는 조연출로서 큰 그림을 본 느낌은 배우들은 '위안부' 쪽으로 (생각이)많이 빠져서 연기하고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많이 무거울 거다. 제3자로서 보기엔 한 여자의 사랑이 보이고, '위안부' 이야기도 담기기 때문에 '위안부' 이야기도 가슴에 새겨지고 한 여성의 사랑에도 같이 따라갈 수 있다. 그러면서 저희의 현재를 바라볼 수 있게끔 세 가지의 면을 같이 생각할 수 있는 '나빌레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극단 '배우는 사람들'을 보면 '배우훈련집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어떤 의미인가?

ㄴ 백유진 연출: 저희는 연극, 연기 전공이 아닌 사람들도 많은 집단이다. 꿈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현실에 부딪혀서 꿈을 찾지 못했던 사람들이 뒤늦게 용기내서 모인 집단이라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더 열정들도 있는 것 같고 극단 '배우는 사람들' 대표로서는 제가 현장에 나가서 배우를 하다보니까 우리나라 내에 배우훈련 자체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좋은 훈련이 많은데도 배우들이 잘 모르는 것 같더라. 그래서 세계의 많은 배우훈련을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나라 배우 예술이 더 예술적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하는 집단을 만들고 싶었다.

배우훈련에 대해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해달라.

ㄴ 백유진 연출: 일단 왜 배우 훈련을 해야하는지 말씀드리겠다. 연기는 음악, 무용, 미술 등 다른 예술과 달리 '매일매일 훈련하게끔' 하지 않는 면이 있다. 예컨대 연기 훈련과정을 마치고 나면 배우들은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개인 훈련을 하지 않고도 시장에 나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훈련은 관계를 형성하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지속적인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 이렇게 매일 하는 연습은 예술적인 정수를 계속 흐르도록 하고, 통일된 앙상블을 만들고, 개인과 그룹으로 하여금 무대적 언어를 말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배우훈련의 종류는 무척 많지만, 몇 가지 꼽자면 앤 보가트의 '뷰포인트', 일본의 '스즈키메소드', 폴란드의 '그롭톱스키 시스템',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꼬메디아 데 아르테'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마무리 인사를 부탁한다.

ㄴ 조유진: 저희가 이번으로 5회째 정기공연을 올리는데 그동안 공연이 모두 전석매진을 기록했다. 프로도 아니고 젊은 친구들이 모인 공연이지만 저희 극단의 공연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찾아오신 관객분들께도 기대를 가지고 오셔도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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