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지난 11월 24일 오후 대학로 한 카페에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사내' 역으로 출연 중인 윤석원 배우와 만났다.

'나나흰' 혹은 '나타샤'로 불리는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작품이다. 당대 최고의 모던보이인 시인 백석 역에 강필석, 오종혁, 김경수, 고상호, 진태화가, 평생을 기다리며 백석을 그리워한 자야 역에 정인지, 최연우, 정운선, 곽선영이, 사내 역에 윤석원, 김바다, 유승현, 안재영 배우가 출연해 2018년 1월 22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된다.

배우 윤석원은 '사내'로 출연해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굵직하게 장면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채우며 자야와 백석의 사랑을 이어주고 있다. 한편으론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통해 북한군 상위 이창섭 역을 맡고 있는데 인터뷰를 해보니 그 두 캐릭터가 공존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야 한다는 직업의식과 함께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함으로 관객들이 무대를 가장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있었다.

멋진 배우보다 매력적인 사람이란 말이 어울리는 그와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자기 소개 부탁한다.

ㄴ '쌍둥이 아빠' 윤석원입니다. 직업은 배우고요.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유니플렉스 1, 2관을 오르내리며 두 작품 같이 하고 있는데 어떤가.

ㄴ 힘들진 않아요. 제가 잠시 연기를 쉬며 사업도 하다가 1년 반만에 공연을 하는데 이런 좋은 작품을 하게 해서 늘 감사한 마음이죠.

최근작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명동로망스'부터 '여신님이 보고 계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 한국적인 소재나 배경을 지닌 작품에 많이 출연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ㄴ 글쎄요. 특별히 고르는 건 아니지만, 서민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보면 누구의 시선에서 작품이 흘러간다고 생각하세요?

 

사내 혹은 자야의 회상이 아닌가?

ㄴ 테이블 작업과정에서는 처음에 사내가 일반적인 멀티 역도 아니고 접점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게 사내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뭘해도 돼요. 정당성이 생겼죠.

조금 더 이야기해달라.

ㄴ 대본 처음 볼 때는 하나의 큰 줄기를 가져가서 맥락이 이어져야 하는데 이 작품은 사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개연성이 없어요. 제가 어떤 장면에서는 엄청 개입하기도 하고 그냥 동떨어져서 보기도 하고. 그래서 연습할 때도 배우들과도 그렇게(사내의 머릿속) 통일하고 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또 유니플렉스에 와서 조명, 음향, 무대가 갖춰진 상태로 하니까 더 명확한 게 생기더라고요.

 

프레스콜 때 사내가 시를 읽는 장면이 있었다. 백석의 시를 읽을 때 어떤 심정으로 읽는지.

ㄴ 그래요? 제가 그런 걸 했었나(웃음). 그때는 다른 의미를 두기보단 시를 읽는데 집중했네요. 사실 오디션을 보기 전엔 백석에 대해 몰랐어요. 지금도 잘 모르지만요. 우스갯소린데 오프닝 때 제가 책을 펼치잖아요. 늘 다른 쪽이 펴져요. 공연하고 한 달 정도 지나서 보게 되니까 그냥 펼치는 게 아니라 그 펼친 부분의 시를 읽게 돼요. 처음에는 문장이 흩날려진 느낌이었는데 이젠 시마다 내 이야기같기도 하고 어느 여인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백석과 시에 대해)공부를 더 해봐야겠다 싶어요.

윤석원 배우가 생각하는 사내는 어떤 사람인가?

ㄴ 그냥 '윤석원'이에요. 그냥 정 많은 사람이죠. 공연하면 '북관의 계집' 때 마음이 참 아파요. 처음에는 '북관의 계집' 대사들이 집주인으로서 뭐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연출님과 이 대사를 어떻게 칠까 대해 고민을 했는데 마지막에 내린 결론은 이 말이 옛날 자야에 머리 속에 남있던 어떤 아픈 지점인 거에요. 실제로 집주인이 자야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자야의 기억 속에 있는 집주인의 모습. 그래서 마지막에 '한 번 하는 게 어렵지, 두 번 하는 게 어렵나.' 이 대사를 할 때만큼은 윤석원(사내)으로 치게 돼요. 미안한 마음으로요. 요즘에 '북관의 계집'보다 '여승'이 더 슬퍼요. 어제 (정)운선 씨랑 공연했는데 '여승' 파트가 세 개로 나뉘어져 있어요. 두 파트가 자야를 바라보며 부르다가 세 번째는 관객을 보며 불러야 하는데 어젠 이상하게 관객을 못 돌아보겠더라고요. 그 마지막에 보면 자야의 걸음걸이가 할머니처럼 변하는데 그걸 보며 너무 슬퍼서 노래를 못 부를 뻔 했어요. 너무 안타까운 장면인 것 같아요. 배우들이 연기들을 너무 잘해요.

그렇게 연기 잘하는 자야와 백석을 가까이서 보는 느낌은 어떤가. '사내'는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역할이기도 해서 무대 위의 관객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ㄴ 배우들마다 성향이 너무 다른데 가까이서 보는 거 참 좋은 일이고요(웃음). 연기들을 너무 잘하니까요. 저번 주쯤에 (김)경수 씨가 '어느 사이에'를 부를 때 소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막 폭풍처럼 몰아치다가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그 세 마디를 부르는데 그게 귀에 팍 박히는 거에요. 연습실에서도 그 단어들 때문에 폭풍처럼 노래하는 거라고 했는데 그래서 (김)경수 배우가 참 좋은 배우구나 다시 한번 느꼈어요. 만약 제가 백석을 하게 된다면 저 단어를 한 옥타브 내려서 해보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어요.

 

관객들에게 '사내'로 연기하며 보여주고 싶은 느낌이 있는지?

ㄴ 그런 게 없어요. 저는 제가 튀면 안돼요. 자야와 백석을 보조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제일 잘 보조해주는 부분은 어디인가.

ㄴ '여승'인 것 같아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앞에 있는 거라 연습도 무척 늦게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ㅇ연습 전에는 '별로 비중있는 넘버가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공연을 하면 할수록 '북관의 계집'보다 훨씬 밀도있는 넘버구나. 잘 불러야겠다. 그런 생각을 매일 하고 있어요.

 

앞서 말했듯이 '사내'와 '이창섭'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두 캐릭터의 다른 점이나 같이 연기하며 어려운 점이 있는지.

ㄴ 일단은 제가 유니플렉스 직원인 것 같고요(웃음). 제일 먼저 드릴 말씀은 두 작품에 누가 안 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두 작품 성향이 너무 달라서 체력, 목관리 모두 관리가 힘들거든요. 혹시라도 실수할까 컨디션 조절하고 조심하고 있어요. 정신적으로는 솔직히 힘들지 않아요. '창섭'이란 인물과 '사내'란 인물이 저는 그렇게 다르지 않거든요. 행동적으론 너무 다르잖아요. '창섭'은 사자탈을 쓴 너구리에요. 아저씬데 직업이 군인인 것 뿐인거지. 사내는 곧 저니까 정서적으로 충돌되는 건 오히려 없어요.

이야기하면 냉혈한 이창섭이 맞나 싶다(웃음). 혹시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지. 좀 전에도 '백석'을 해보면 어떨까 했는데.

ㄴ '백석'은 40세가 넘어서 해보고 싶어요. '백석'이란 캐릭터가 객석에서 보기엔 날라다니는 느낌인데 그걸 눌러줘야 하거든요. 대사 하나, 노래 하나를 누른 상태에서 날라다니는 거랑은 다르거든요. 그게 나이에서 온다고 생각해서 마흔 넘어서 한다면 좀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못할 것 같아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석구' 해보고 싶어요. 근데 못하겠죠. 나이가 너무 많아가지고(웃음).

 

같은 '사내' 역인 김바다 배우와 특별히 다르게 하자고 한 지점이 있는지?

ㄴ 특별히 뭘 어떻게 하자고 하지 않았어요. 제가 쌍둥이 아빤데 일란성인데도 성격이 다르거든요. 따로 산 지 30년인데 당연히 저와 다르겠죠(웃음).

1년 반 동안 연기를 쉬었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게 있는지.

ㄴ 제가 예전에도 '스프링 어웨이크닝' 공연 후 2년 정도 쉰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연기에 대한 철학이 바뀐다기보다는 그냥 살면서 사는 생각, 정서나 상황이 바뀌면서 그런 면에서 연기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것 같아요. 예전에 20대 때는 배우란 직업과 연기가 무척 위대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에게 왜 연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냐고 강요도 했었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게 직업이 됐잖아요. 그러고나니까 20대 때 열정보다 더 위대한 게 직업의식이다. 해야될 것을 해내는 게 정말 중요하다(웃음). 그렇게 바뀐 것 같아요. 또 50대 60대 되면 바뀔 수도 있겠죠. 지금은 내가 가진 직업을 최선을 다해서 해내자는 마인드에요.

아무래도 그런 과정을 겪은 이유는 가족들 때문인지.

ㄴ 가장이 된 게 제일 크죠. 연기에 대한 위대함보다 먹고 사는 거 자체가 더 위대하구나 싶어요.

 

그럼 이참에 '쌍둥이 아빠' 윤석원의 쌍둥이 자랑을 들려달라(웃음).

ㄴ 일단 딸쌍둥이에요. 이름은 '우리', '나라' 구요. 22개월 됐어요. 다른애들보다 2-3키로 잘 크는 것 같아요. 애가 힘이 너무 세서 첫 째가 제 폰을 들고 있으면 제가 힘으로 뺏어야 할 정도에요. 와이프도 배우라서 둘 중 하나는 뭔가 배우를 하고 싶어할 거 같은데 안 하면 좋겠어요(웃음). 우리나라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거든요.

여배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시기다.

ㄴ 전 여배우들에게 절대 말을 안 놓거든요. 그렇게 대접 받아 마땅해요. 남자배우들보다도 몇배는 더 잘한다고 생각해요. 주변 분들만 봐도 (곽)선영 씨, (정)운선 씨, (전)미도 씨, (김)지현 씨. 누구 하나 못하는 분이 없잖아요. 얼마나 치열하게 살겠어요.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요. 와이프도 배우니까 공연 보러 오면 하고 싶다고 하고 그래요. 얼마나 피가 끓겠어요. 그런데 저만 활동하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어서 무척 미안해요.

맞다. 또 여배우가 남배우에 비해 소수자인 것처럼 대학로 배우들 역시 무척 좋은 실력을 갖고 있어도 빛을 못 보는 경우도 많다.

ㄴ 맞다. 이거 꼭 써주세요(웃음). 진선규 배우가 잘돼서 너무 좋아요. 제가 데뷔한지 이제 10년 됐는데 한 7년 전에 뵈었거든요. 이후 늘 롤모델이 (진)선규 형님이었어요. '저 형처럼 되자' 그런데 잘돼서 너무 행복해요. 이전에도 팬이라서 공연하시는 걸 많이 보러 다녔거든요. 특히 2004년 '거평이(거울공주 평강이야기)' 때 너무 충격받았어요.

 

그렇다면 여배우들, 진선규 배우처럼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참 많은데 '연기를 잘한다'는 건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ㄴ 저는 그게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이 무대에 서있는데 멋있다. 예쁘다. 노래 잘한다. 몸 잘쓴다. 이런 것들도 잘한다는 표현 속에 뭉뚱그려지는 거 겠지만,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이해가 된다.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본인의 '사내'에 대해서는 만족하는지?

ㄴ 아직이에요. 무대에 설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워요. 아 오늘 또 이걸 해내야하는구나. 싶어서 고통스러워요. 연기 잘하시는 분들은 그렇대요 무대 밖에서 연기하는 나를 본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경지는 아니고 계산인지 정서인지 모르겠지만, 무대 위에서 충실하자고 생각해요.

배우 데뷔 10년이라고 했는데 데뷔 과정이 어땠는지.

ㄴ 저는 원래 직장을 다니다가 연기를 하게 됐어요. 원래 택배회사를 다녔거든요. 지금은 없어진 회산데 택배도 하고 중국, 일본 오가는 일도 했고요. 지금은 죽었지만, 형으로 삼던 의형제가 있었어요. 그 형이 연극 '밑바닥에서'를 참 좋아했어요. 그게 뮤지컬로 올라간다고 해서 같이 보러갔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공연 끝나도 한동안 못 일어나다가 다다음주쯤 회사를 그만두고 그 작품 오디션만 1년 정도 봐서 데뷔하게 됐어요. '배우' 역할이었죠.

 

10년 동안 배우로서 지냈는데 앞으로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ㄴ 저는 팬들한테 인정받는 배우도 좋아요. 그러나 더 원하는 건 같이 하는 배우들한테 더 인정받는 배우가 되는 거에요. 그게 선규형이었고. 그 형처럼 되고 싶습니다.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알려달라.

ㄴ '돈키호테'를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어요. 대극장 공연에서 저 사람이 공감간다는 역은 '돈키호테'가 처음이었거든요.

취미나 쉬는 날 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지?

ㄴ 별 다른 건 없고 맛집 돌아다니는 거에요. 얼마 전에는 안산 쪽에 샤브샤브 뷔페가 있는데 거기가 맛도 좋고 애들 뛰어노는 정원이 있어서 좋더라고요(웃음).

마지막 인사 부탁한다.

ㄴ 제가 1년 반을 쉬어서 항간에 은퇴했다는 이야기가 돌았어요. 저 하고 있고요(웃음). 출연료도 안 높으니까 많이 불러주세요(웃음). 진짜로 생각보다 좋은 창작물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관객분들 관심 가져주시고 배우들 스탭들 창작진들, 허투루 하는 거 없이 열심히 하고 있으니 대학로 가득 메워주세요.

 

직접 만난 윤석원 배우는 그의 말마따나 푸근하고 평범했다. 그의 그런 특별하지 않음이 무대 위에선 오히려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배우 윤석원이 출연하는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2018년 1월 28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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