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어주는 남자 #017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스파이 브릿지'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영화리뷰 웹진 '무빗무빗'의 에디터.

[문화뉴스] 2015년 n월 m일. 국정원은 오랜 기간 쫓던 북측의 스파이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수년째 첩보활동을 펼쳐 온 그는, 체포 직전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모두 없앴다. 국정원은 그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었는지 구체적인 조사를 시도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특히 핵 공격을 두려워하는 시민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한편, 변호사 A는 "스파이도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며, 그를 변호하고 있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A 씨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위의 기사는 '스파이 브릿지'를 현재의 한국 상황으로 바꿔본 글입니다. 냉전 시대의 스파이를 다룬 이 영화는 한국 관객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읽힐 수 있죠. 스파이, 즉 간첩은 한국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국가적 상황 덕분에, '스파이 브릿지'는 국내 관객이 몰입할 구석이 많죠. 영화 속의 냉전 및 분단 상황을 여전히 타자화하지 않을 수 있는 몇 없는 국가가 한국입니다.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
'스파이 브릿지'엔 재미있는 컷 전환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재판이 시작되고, 카메라는 법정에 모인 사람들이 국기에 경례하는 장면을 보여준 이후, 교실에서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죠. 냉전의 공포가 법정을 뛰어나와 아이들이 있는 교실까지 침투했고, 아이들은 핵에 대한 공포를 영상물로 접하며 눈물까지 흘립니다. 그들의 세계, 냉전이 지속 중인 세계가 매우 위험하다는 걸 주입받는 모습이죠. 냉전 시대의 불안함이 만든 풍경입니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안보교육을 받는 이 모습에선 군대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조만간 한국 유치원에서 볼 수 있을 광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도노반(톰 행크스)는 이를 부정하죠. 그는 전쟁의 공포에 빠진 아들에게 전쟁이 일어날 리 없다고 안심시킵니다. 그는 못 마땅해 하죠. 도노반은 이 공포를 국가가 주입하는 허상이라 생각하고 있고. 더 나아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볼 뿐입니다. 이는 이후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음을 목격한 스필버그의 결과론적 시점이자, 그가 그 시절 정부에 가진 반감의 시점으로도 바라볼 수도 있죠.

   
 

이 공포 속에 국가(정부)는 청년들에게 희생을 요구합니다. 뛰어난 인재들은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명분으로 스파이 활동을 강요받죠. 적의 영공을 비행하며 사진을 찍으라는 임무. 그런데 그들의 임무엔 이런 전제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공식적인 소속은 없으며, 작전 중 생포될 것 같으면 죽으라는 비정한 지시. 청년들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되어야 하고, 운이 없으면, 국가를 위해 자멸해야 하는 소모품이었네요. '본 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 등 관객은 많은 첩보 영화에서 버림받은 스파이를 목격한 적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섬뜩할 것입니다. 이 스파이들이 베일에 싸인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었기에. 그저 군인이라는 현실 속의 평범한 청년들이었기에.

국가라는 이름의 방패
앞서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을 봤다면 국가라는 이름의 방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안보를 위한 일이라며 시민의 희생을 요구하지만, 정작 그들은 어떠한 희생, 불편을 감수하지 않죠. 정부에서 파견된 인물들은 국가적 위험을 피하고, 국가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작전의 정면에 나서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국익을 위해 학생(민간인)의 안전은 무시해도 좋다고까지 하죠. 그러니까 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할 때만 국가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명분을 만듭니다.

   
 

이는 결국 국가라는 이름 뒤에 숨어 위험을 회피하고, 인권과 죄의식 등의 복잡한 문제는 생각하지 않겠다는 비겁한 행위입니다. 포로 교환 작전 중 도노반을 제외한 인물들은 국민 개개인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국익이라는 것, 자신들의 성과라는 것에 목을 매고 있죠. 치졸하지만 민감한 문제입니다. 국가의 안보와 개인의 인권 중 무엇이 더 소중한가. 스필버그 감독은 국가가 아닌 개인의 입장을 걱정하며 챙기는 도노반을 통해 그가 옹호하는 것, 비판하는 것을 명확히 표현해 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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