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예술은 언제나 시간의 영향을 받는다.

창작자가 생각한 예술의 의미는 변하지 않지만, 어떠한 시대 속에 존재하는지에 따라서 그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의미는 달라지기 마련이고, 연극 '엠.버터플라이(연출 김동연)'는 그러한 맥락에서 지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세계는, 혹은 한국은 '평등'과 '행복'이라는 화두 속에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아이러니함이 반복되고 있다. 갑은 을을, 을은 병을, 병은 정을 착취하려 애쓰고 있고, 그러한 비현실적인 현실적 구조 속에서 개인의 행복이라도 누리기 위한 '욜로'와 '짠내'가 진동하고 있다.

그 한복판에 놓여 있고, 결코 쉬이 지나치지 못하는 담론이 '여성혐오' 혹은 '미소지니(misogyny)'다. 남성이 여성을 '남성보다 하찮은' 존재로 대하고 있는가. 이들이 흑인, 장애인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가 등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명의 의견이 나오면서도 의견을 합리적으로 취합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다.

다만 앞서 예시와 달리 실제로는 '흑인'보다 '여성 흑인', '장애인'보다 '여성 장애인'이 더 연약한 위치에 처한다는 관점에서 '여성혐오'에 관한 이야기 자체를 흘려들을 순 없다고 여겨야 할 것이다.

지난 3일까지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 '연극열전'의 연극 '엠.버터플라이'는 바로 이러한 지점을 매우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1988년 초연 후 국내에서는 2012년, 2014년, 2015년 공연 후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연극 '엠.버터플라이'는 프랑스 외교관과 중국 배우의 실화를 바탕으로 오페라 '나비부인'을 차용해 만들어졌다. 이번 시즌에는 주인공 '르네 갈리마르' 역에 김주헌과 김도빈, 송 릴링 역에 장율과 오승훈, 툴롱/판사 역에 서민성과 권재원, 친/스즈끼 역에 송영숙, 마끄 역에 황만익과 김동현, 헬가 역에 김유진, 소녀 르네 역에 강다윤이 출연한다.

주인공 르네 갈리마르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아름답게 소화하는 중국인 배우 송 릴링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함께하며 부족했던 남성으로서의 자존감을 얻게 된다. 그녀는 '나비부인' 속 핑커튼을 기다리는 버터플라이처럼 순종적이고 완벽한 동양 여성이다. 그녀와의 관계는 대외적으로 그의 평가를 긍정적으로 만들고, 그는 그녀에게 더욱 더 빠져든다.

하지만 프랑스의 부인과 헤어져 가며 20년을 만난 송 릴링의 정체는 외교관으로 일하는 르네의 기밀을 얻으려는 중국인 스파이였음이 밝혀진다. 르네는 모두의 조롱 속에서도 감옥에 갇힌 채 '버터플라이'만을 기다리지만 그녀가 사실은 남자였음을 인정하고 자신이 원하던 '나비부인'의 모습을 한 채 자살하게 된다.

▲ 연극 '엠.버터플라이' 공연 장면 ⓒ문화뉴스 MHN 이민혜 기자

우선 이 이야기는 극적으로 훌륭하다. 작품 속에 차용된 '나비부인'과의 대칭, 혹은 반전된 관계를 통해 관객에게 드라마틱한 감정을 선사한다. 섬세한 2층 무대를 통해 르네와 송의 감정을 함께 보여주는 장면 등에서 느껴지는 비주얼도 아름답다.

그러나 2017년이란 시대 속의 '엠.버터플라이'는 앞서 말한 '여성혐오'적 시각에서 해석했을 때에도 새로운 가치를 지닌다. 이 작품이 공연되는 극장에는 조금 더 많은 남자 관객이 앉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극 중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판타지가 개인의 성적 욕망에 결합한 구조의 이야기다. '순종적인 동양 여성'은 '멋지고 강한 서양 남성'에게 지배 당하고, 심지어 지배 당하기를 스스로 원하다가 죽어간다. 이것은 곧 역사를 써온 서양 사람들, 조금 더 정확히는 서양 남성의 시각을 그리고 있다.

그러한 서양 남성의 시각을 '나비부인'에서 벗어나 수트를 입고 재판장에 들어서는 '남성' 송 릴링이 산산조각내는 것이 '엠.버터플라이'다. 남성의 입을 빌어 남성의 어리석음을 모욕하는 송 릴링의 재판 장면은 어떤 의미에서 상쾌함을 준다. 재판에서 송과 대화하는 화자가 현실 사회(남성이 만든 남성 중심의 사회) 규칙을 판단하는 '판사'인 것에서 그 의미는 더 커진다.

이는 작품 속에서도 더욱 드러난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적인 감정으로 분류되는 '섬세함'으로 규정되는 '예술가' 송이 중국의 혁명 속에서 지극히 남성적이고 육체적인 농장에서의 노동과 교화로 괴로워하는 모습도 그린다. 송을 그렇게 만드는 인물은 남성보다 더욱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여성 '친 동지'다. 이것은 기묘할 정도로 현실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것은 물론 텍스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남자, 혹은 여자이기 이전에 예술을 만드는 '배우'로 규정하는 송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지나친 해석으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예술을 대하는 데 있어 '지나친 해석'은 사실 없기도 하다.

연극 '엠.버터플라이'는 긴 공연을 마치고 다시 잠에 들었다. 한국에서의 별칭인 '엠나비'가 다시 깨어날 때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을 맞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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