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2인극 페스티벌' 공식참가작 'Box-er' 장경섭 연출, 김명 작가, 심홍섭 배우 인터뷰

   
▲ 배우 김명(왼쪽)과 심홍섭(오른쪽)이 '2인극 페스티벌'을 의미하는 포즈를 재미나게 표현하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자살을 결심한 자이고, 한 명은 장기간의 복역을 마치고 나온 출소자다.

자살자와 출소자. 두 사람은 어떤 상자를 같이 열기로 약속을 했다. 그 상자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다. 자살자는 당장에라도 자살을 하고 싶은 자신의 충동을 누르고 상자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출소자를 기다렸다. 그는 상자의 정체를 확인하고 죽을 것이다. 출소자는 버러지 같은, 지옥 같은 수감생활을 상자 하나만 보고 끈질기고 집요하게 버텼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그가 가진 유일한 것은 오직 상자뿐이다.

연극 'Box-er'는 이렇게 열고 싶은 상자를 놓고 벌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상자는 두 사람에겐 유일한 희망이자, 돌파구, 버틸 수 있는 끈이다. 그래서 그 상자를 열면 자기 삶의 의미를 다 잃어버린다는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 이 둘은 상자의 개봉을 두고 언쟁하고, 설득하고, 처지를 한탄하며 동정심을 자극한다.

25일부터 29일까지 스튜디오 76에서 열리는 연극 'Box-er'는 '200번째 2인극을 만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작한 '제15회 2인극 페스티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공식참가작 공연이다. 공연을 앞두고 연습실에서 이 작품을 쓰고 직접 배우로 출연하는 김명, 심홍섭 배우, 그리고 이번 '2인극 페스티벌'의 공동 집행위원장인 장경섭 연출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장경섭 연출 인터뷰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은?

ㄴ 김명 : 이전에 내가 여러 명이 출연한 퍼포먼스 같은 형식으로 쓴 작품이 있다. 무언극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자살자, 출소자, 이상주의자, 섹스중독자 등 여러 인물이 있다. 특히 자살자와 출소자가 대립하는 무언가가 갑자기 느껴져 2인극을 쓰게 됐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나의 또 다른 이면을 구현해낸 것 같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물론 경험은 아니다. (웃음) 예를 들어, 자살하는 사람을 직업군으로 두는 것은 설정이다.

2인극의 매력 포인트는?

ㄴ 장경섭 : 가장 치열한 공연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모노드라마가 혼자만의 싸움이라면 2인극은 대화 상대의 최소단위인 두 명이 무대에 오르기 때문에, 서로가 무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기를 보여준다. 그 치열함 속에서 더 큰 발전성이 있어 보인다. 배우, 연출, 작가의 성장도 기본이 탄탄할수록 성장이 빠르다고 보는데, 그래서 가장 어려우므로 해야 하는 작품으로 본다. 이 작품을 하면서 더 나은 작품을 하기 위한 배움의 공연이라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2인극에 뛰어들어 작품을 하고 싶다.

김명 : 2인극은 서로 한 사람을 믿고 하는 것이다. 서로를 믿지 않으면 극이 진행되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 두 사람이 있으면 서로가 나를 보고, 외면하는 등 유기적인 끈이 있다. 그런 끈을 통해 감정이나 극의 상황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 다른 외적인 점이 덜 작용하는 것 같다.

심홍섭 : 같은 생각이긴 하다. 2인극을 처음 연기하는데, 관객 입장에선 상상력이 좀 더 커질 수 있는 공연 같다. 다른 공연들은 그 인물이 그 인물로만 존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이 나오는 공연이라는 제한적인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 나오는 공연만 본 분들이라면 생각을 좀 더 하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 김명, 심홍섭 배우 인터뷰

작품 구상은 언제부터 했나?

ㄴ 김명 : 올해 초부터 했다. 2인극을 하기로 한 다음부턴 주기적으로 만나서 회의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살'과 '출'이 연극 전에 결정하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관객들 앞에서 공연 시작 전에 정하는 것이다. 시간적인 여건상 차마 그건 하지 못했다. 꼭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 그러면 작품이 풍성해질 것 같다.

이번 2인극 페스티벌에 공식참가작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ㄴ 장경섭 : 올해 2인극 페스티벌에 대한 참가 뜻은 사실 없었다. 후배인 김명 작가가 지나가는 말로 이런 내용의 2인극으로 올라가면 어떠냐고 했는데 그 작품이 'Box-er'였다. 시놉시스를 처음 들었을 때, 독특한 작품이 될 것 같았다. 대개 사람들은 의구심이나 호기심 때문에 그 내용 자체를 알기 위해 무진장 노력하는 경우가 있다. 쉽게 풀리지 않는 의구심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야만 풀릴 수 있다. 삶은 천년만년 살 수 없고 정해져 있다. 그런데 죽음을 시도하는데 상자 안의 내용물을 몰라서 죽지 못한다는 것이 호기심을 일으켰고, 무대에 올려보고 싶었다.

   
▲ 장경섭 '제15회 2인극 페스티벌' 공동 집행위원장이 연극 'Box-er'의 연출을 맡았다.
제목은 왜 'Box-er'인가?

ㄴ 김명 : 'er'을 붙이면 인칭이 된다. 상자를 의미하는 'Box'에서 'er'를 붙이면 권투를 하는 사람이 된다. 그게 아니라 박스에 집착을 하는 두 사람. 박스에 관련된 사람이라는 의미를 넣고 싶어서 'Box-er'처럼 하이픈을 붙이게 됐다.

박스에 자신이 소망하는 것이 들어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것이 들어있길 원하나?

ㄴ 김명 : 박스를 열면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형체가 아니라 영원한 시간을 내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작품의 연습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웃음)

심홍섭 : 비슷한 맥락인데, 상자를 열었을 때 내가 살아왔던 '흔적'들이 다 담아져 있으면 좋겠다. 흔적을 기억하는 편지나 사진들이 들어있으면 좋겠다.

김명 : 생각난 게 하나 더 있다. 사랑하면 초반엔 되게 열렬하다. 그 열렬함을 죽을 때까지 가져갈 수 있는 '사랑'이 있으면 좋겠다. (웃음)

장경섭 :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이 'if'다. 'if'는 '만약에'라는 뜻이다. 내가 불리하다 생각하거나, 힘겹다고 생각하거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만약에'라고 생각하는 'if' 단추를 누르면 원하는 생각, 바람대로 이뤄지는 마법 같은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 (웃음) 예를 들어, 6.25 전쟁 때 통일이 됐더라면 우리가 어땠을까? 조선이라는 나라가 일본보다 좀 더 일찍 쇄국정책에서 개방을 시도했다면 좀 더 발전했을까? 등이 있겠다.

   
▲ 배우 김명(왼쪽)과 심홍섭(오른쪽)이 연극 'Box-er'에 출연한다.
무대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ㄴ 장경섭 : 무대를 허허벌판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전체적인 무대 디자인이나 세트를 많이 가져올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흑과 백의 의미가 있는 종이 박스나 라면 박스를 모아서 하나하나 다 찢었다. 10ℓ 짜리 봉지 20개 정도 분량이다. 그것을 무대에 깔았다. 전체적인 조명의 톤도 굉장히 어둡게 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이게 박스라기 보다는 하나의 흑과 백이면서 동시에 벌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의 인생은 서로 교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지만, 사실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많다. 관계성을 유지하고만 살아가고 있으므로, 두 등장인물에게 인간관계의 총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박스에 대한 집착을 이야기하게 됐다. 인간의 욕망과 새로운 미지의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이 인간에게 어떤 식으로 비칠 지 그런 것이 궁금했다.

작품을 쓰면서 연출과의 호흡은 어땠나?

ㄴ 김명 : 이 작품을 써서 연출님이 바라본 시각도 있을 것이고, 내가 의도한 것도 있을 텐데 연습 중반부까지 내가 엄청나게 고집을 부렸다. 배우로도 출연하기 때문에, 연출가에게 할 수 있는 것을 배려해야 하는데 내 것을 너무 고집한 걸 간과했다. 그걸 최대한 빼고 하려고 했다.

장경섭 : 글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 작품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객관성을 띄려고 해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배우보다 작가가 선명하게 드러날 때가 많다. 연출은 배우가 가진 주관적 관점을 객관적 관점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작품의 객관성을 갖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

이번 경우는 작가가 세우고 만들어낸 작품에 배우가 몰입된 것이니 객관성을 잡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작가와 연출이 부딪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게 됐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작가는 자신의 철학을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작품은 죽은 것이고, 자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였는데, 단순히 작가의 철학이나 의도를 깨려는 것보다 객관성 있는 모습으로 만나고 싶었다.

   
▲ 장경섭 연출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배우 간의 호흡은 어떤가?

ㄴ 심홍섭 : 감히 우리의 호흡은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알고 있는 것은 오래됐고, 이야기는 지난해에 처음 들었다.

김명 : '슈퍼티처'에서 같이 호흡도 했다. 내가 선생을 하고, 이 친구가 복서를 했었다. (웃음)

작품에서 꼭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ㄴ 김명 : 그런 부분은 사실 없다. 다만, 마지막에 상자가 공개될 때 전체의 순간을 희미하게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심홍섭 : 마지막 인간의 번뇌가 나오는 장면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장경섭 : 개막식 때 집행조직위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제15회 2인극 페스티벌' 공식참가작 모두가 200번째 작품이라 생각하고 공연을 해달라는 말이었다. 공연 순서가 이번이 맨 마지막이기 때문에 200번째가 아니라 모든 참가작이 그러므로, 의미가 새롭다고 본다. 2인극이라는 소재가 초창기엔 많지 않았다.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2인극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 발전성, 장점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끝이라는 마침표가 아니라 앞으로 천 번째 2인극이라는 의미를 담는 'ing'의 공연이 되었으면 좋겠다. 좀 더 깊이 있고, 관객들에게 의미가 남는 작품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