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진학 어려움 겪는 이들에게 다양한 진로 방향 있음을 알려줘

▲ 일반 학생으로 시작했다가 야구 선수로 활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서울고 홍민재가 딱 그러했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공부로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 대부분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국내 석/박사 학위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로 나아가 본인의 식견을 높이고 왔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과정을 흔히 '유학'이라 한다. 대체로 대학 학사학위를 받은 이후 가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본인의 안목을 키운 이후에는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대학에서는 이러한 사람들 중 교직에 몸담기를 희망하는 이들을 교수로 초방하고는 한다.

그리고 사정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야구에도 그동안 간헐적으로 '유학'을 경험한 이들이 있다. SK의 김동엽은 북일고 진학 이전에 일본에서 야구를 했던 경험이 있고, 지금은 해체된 독립 야구단 서울 해치에서 활약했던 내야수 김동민은 이이즈카 학원과 후쿠오카 경제대학교에서 유학을 했다. 넥센의 좌완 유망주 김성민도 상원고 졸업 이후 후쿠오카 경제대학교를 졸업했다. 물론, 유학을 경험했던 이들이 100% 프로야구에 진출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생활을 하는 등 유의미한 인생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야구유학'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이가 올해에도 있다. 서울고 외야수 홍민재(18)가 바로 그 도전의 주인공. 그는 최근 미국 대학 야구 1부 리그에 속한 애리조나 웨스턴 칼리지(Arizona Western College) 진학을 확정했다. 

남들보다 뒤늦게 시작했던 야구,
유학으로 새로운 꿈 꿀 수 있는 기회 주어져

미국으로 야구 유학을 갈 정도면, 야구 성적이 매우 빼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 유학에 성적은 참고 자료일 뿐, 입학 조건은 아니다. 되려 그는 고교 1, 2학년 당시 이렇다 할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방망이를 잡을 수 있었다. 성적 향상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경기를 마칠 때까지 그는 98타석 76타수 16안타(1홈런) 8타점, 타율 0.211를 마크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많은 요인이 있었겠지만, 야구를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던 것이 적지 않게 영향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에는 야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제가 졸업한 미아초등학교에도 야구부가 없었죠. 당연히 중학교 진학 역시 야구부 없는 학교로 갔습니다. 자양중학교로 전학한 것은 1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죠."

사실이다. 홍민재는 엘리트 야구와는 거리가 멀었던 학생이었다. 되려 공부에 더 큰 재능을 드러내 보였던 인재였다. 공부에 비중을 높였던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에서는 전 과목 평균 90점 이상의 성적을 기록했다. 당연히 공부로 진학을 하고 성공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질 법했다. 그러나 홍민재에게 야구는 천상 운명이었다.

"누가 야구를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하겠다고 결심했고, 중학교 1학년 6월에 자양중학교로 전학했습니다. 다행히 추성건 감독님께서 좋게 봐 주셔서 야구도 빨리 늘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야구를 하겠다고 하니까 오히려 아버지께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습니다."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중학교 입학 이후 야구를 시작해도 본인 노력에 따라서 충분히 주전을 꿰찰 수 있었다. 당시에는 스포츠 조기 교육이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정착되지 않았을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점차 엘리트 야구에 조기 교육 열풍이 불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게 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게 됐다. 그러고 보면, 홍민재는 남들보다 3~4년 늦은 시간을 특별한 방법으로 극복했던 것이었다. 추성건 감독을 비롯하여 서울고 유정민 감독도 "보통 꼼꼼한 것이 아니다. 기억력이 상당히 좋아 보통 야구하는 녀석들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라며 그의 비범한 모습을 눈여겨 보기도 했다.

남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장점을 파악한 서울고 유정민 감독은 홍민재의 진로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지니게 됐다. 평소 생활하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운동선수인데,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명석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설령 (홍)민재가 야구로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면, 미국 유학을 적극적으로 추천할 생각이었습니다. 생각만 조금 달리 하면, 충분히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거든요. 하지만, 야구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도전 자체를 두려워해요. (홍)민재도 처음에는 가기 싫어하는 눈치였습니다."

홍민재 역시 이러한 점을 인정했다. 이러한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까지만 해도 '먼 나라 미국'에 대한 생각, 그리고 먼 곳에서 혼자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과 자주 한국에 못 들어올 것이라는 계산까지 더해져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감이 사라지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렇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안 가도 되니까 미국이라는 곳을 경험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죠. 그런데 막상 가 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어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무엇보다도 야구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았습니다. 테스트를 받으러 다니면서, 합격하면 무조건 와야겠다는 결심을 굳하게 됐습니다."

▲ 서울고 유정민 감독(사진 좌)은 선수들의 다양한 진로에 대해 전혀 편견이 없다. 그러한 가운데, 올해 대통령배 우승과 청룡기 선수권 준우승을 차지했다. 사진ⓒ김현희 기자

국내가 아니어도 진로 방향은 적지 않아.
정보를 얻고, 스스로 도전하는 마음을 가져야

그래서 최근 홍민재는 미국 비자를 받는 일과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물론, 미국 1부 리그에서 뛰기 위하여 몸을 만드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물론, 적지 않은 메이저리거들이 MBA등 학위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홍민재 역시 공부에 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일단, 전공은 법학 쪽으로 정해 놓은 상태다.

"스캇 보라스도 변호사 출신 아닙니까? 저도 궁극적으로는 제2의 보라스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홍민재는 천천히 본인의 꿈을 위해 정진하고자 한다. 처음 1년은 영어 과정, 다음 1년은 교양 과정을 수료한 이후 3학년부터 세부 전공에 들어서게 된다. 그의 진로를 감안한다면, 국제법이나 상법 쪽으로 공부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재미있는 것은 대학 2, 3부리그와는 달리, 1부 리그는 메이저리그의 마이너리그 팀들과 함께 교육리그도 같이 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영어 강사를 하다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 합류한 김현섭 스카우트는 "대학 1부 리그에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팀이 항시 상주하고 있다."라고 하여 1부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낼 경우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포수 벤지 몰리나 역시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이렇게 홍민재와 같은 케이스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이러한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라는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꽤 의미가 있다. 유정민 감독 역시 가능하다면 유학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되려 가능하다면 적극 지원하고 싶어한다.

"프로에 갈 수 있는 인원은 제한적입니다. 나머지 프로에 못 간 친구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기회가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사실 감독 입장에서는 프로 보내는 것보다 선수들이 무탈하게 대학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힘듭니다. 올해만 해도 프로에 다섯 명 갔습니다만, 대학 합격 소식은 (홍)민재를 합친다 해도 겨우 세 명밖에 안 돼요."

그런데 의외로 이러한 유학 정보는 일선 감독들도 많이 모르는 상황이다. 그나마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자주 갔던 유정민 감독이나 덕수고 정윤진 감독 정도가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정도다. 야탑고 김성용 감독 역시 수차례 미국 전지 훈련을 다녀왔지만, 최근에야 유학을 갈 수도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젊은 감독들을 중심으로 '야구와 함께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려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 유정민 감독 역시 그 중 하나다.

"우리 2학년 포수 중에 이민재 선수가 있습니다. 이 친구도 상당히 공부를 잘 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수업을 들어가게 하면서 오후 및 야간에 운동을 시킵니다. 민재에게 공부 하는 것을 최대한 배려하고 있지요. 앞서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한 홍승우, 그리고 올해 같은 곳에 원서를 쓴 고만영(현재 1차 합격)에 이어 3번째로 서울대에 보내고 싶습니다."

결국 이러한 유학 소식은 정보가 생명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몰라서 도전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내와 운영 일정에 차이가 있어 9~10월 정도에 움직여야 정상적으로 학사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늦어도 10월 초에는 마음의 결정을 마치고 10월 중순부터 현지에서 입교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설령, 미국에서 테스트를 받고 온다고 해도 국내 대학 입시를 치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홍민재 역시 국내 대학 두 곳에 원서를 내어 서류 합격 통지를 받기도 했다. 유학에 대한 결심이 섰으면 해외 학교를 알아본 이후, 테스트 일정을 확인해 봐야 한다. 홍민재 역시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쳤다.

"앞서 스캇 보라스의 예를 들었지만, 사실 저는 롤 모델이 없습니다. 나중에 누군가가 저를 롤 모델로 삼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 미국으로 가는 제 모습이 마이너리그 시절의 추신수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오랜 마이너리그 시절을 이겨 내고,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저 역시 그 뒤를 잇고 싶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그 기회를 잡아야겠죠 교육리그 중에는 분명히 권광민(시카고 컵스) 형이나 박효준(뉴욕 양키스) 형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 분 다 잘 모르지만 미국 마이너리그 생활에 대한 부분과 힘든 일, 좋았던 일 등 장단점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물론 최종 목표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수 있건 없건 간에 보라스 코퍼레이션처럼 홍민재 코퍼레이션을 만드는 것이죠(웃음). 아울러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유정민 감독님께 늘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4년 뒤에 잘 되어서 반드시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홍민재의 꿈이 현실이 되는 날, 국내 아마야구 유망주들은 또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의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필자 역시 그의 유학 생활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방법으로도 진학을 할 수 있고, 현지에서는 이렇게 생활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그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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