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선수 우승 이후 2011, 2015년 감독으로 또 다시 '우승 맛'

▲ 청룡기 우승 확정 직후 기뻐하는 박영진 감독.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지난 11월 16일, 제70회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가 열린 고척돔구장은 재학생과 졸업생이 한데 어우러진 축제와 같았다. 비록 프로야구와 같은 만원 관중은 없었지만, 결승에 오른 대구 상원고와 서울 성남고 동문들은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져 자신의 모교를 열심히 응원했다. 그리고 그 열정만큼은 프로야구 응원 못지않았다.
 
그리고 맞이한 9회 말 성남고의 공격. 마운드에는 상원고 에이스 전상현이 버티고 있었다. 12-2라는 스코어를 감안해 본다면, 승부가 뒤집힐 가능성은 적어 보였지만, 더그아웃에 있는 박영진 감독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특히, 고교야구에서 승부는 끝날 때까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타로 나선 성남고 1학년 오혜성이 안타를 치고 나가자 응원석은 다시 들썩였다. 성남고가 이 찬스를 살릴 경우, 승부의 향방은 어찌될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전상현은 9번 이진석, 1번 김재윤, 2번 도재훈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제야 박영진 감독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코칭 스태프 및 동문들과 축하 인사를 나누었다. 상원고가 2011년 이후 4년 만에 청룡 여의주를 품에 안은 것이다. 통산 6번째 우승을 차지한 상원고는 동산고와 함께 '청룡기 최다 우승 공동 3위' 학교로 남게 됐다.
 
청룡기 우승의 주연 배우, 감독 박영진
 
▲ 청룡기 우승 확정 직후 박강우 코치, 곽동현 코치 등 코칭스태프들을 치하하는 박영진 감독. 사진ⓒ김현희 기자
 
그런데 우승 그 자체를 넘어 박영진 감독은 유독 '청룡기'에 욕심을 많이 낸다. 물론 이번 대회가 고척돔 개장 이후 첫 정식 대회라는 역사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박 감독 개인적으로도 청룡기 대회에 가장 큰 추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1977년 제32회 청룡기 대회를 거론하면 타격 4관왕(MVP, 타율, 타점, 최다안타)을 차지한 이만수 전 SK 감독을 떠올리지만, 사실 당시 이만수 감독보다 더 주목을 받던 이는 따로 있었다. 당시 에이스로 홀로 마운드를 지키며 6연속 완투를 선보였던 박영진이 그 주인공이었다. 당시 코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마운드에 올랐던 박영진은 3관왕(우수투수, 최다승, 최다이닝)에 오르면서 최고의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당시 선수로서 정점을 맛보았던 박 감독은 2007년 감독 부임 이후 여러 차례 전국대회 우승을 맛봤지만, 정작 청룡기 우승은 2011년에야 경험하게 됐다. 그리고 당시 그는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청룡기 우승을 경험했던 몇 안 되는 인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그로부터 4년, 박 감독은 또 다시 청룡기를 눈앞에 두고 우승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고척돔구장에서 열리는 첫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다는 열망이 누구보다 강했다. 그러나 문제는 선수단 구성이었다. 3학년이 빠지게 되면, 우승 전력은커녕 1회전 통과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고맙게도 주장 황경태(두산 지명)를 필두고 '유종의 미를 거두자!'라는 3학년들의 결의가 박 감독에게 전해졌다. 이에 박 감독도 선수들의 뜻을 존중함과 동시에 각 구단에 '왜 3학년들이 고척돔에서 경기를 펼쳐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박영진 사단'은 1회전부터 결승전까지 전 경기 10안타 이상을 뽑아내며 청룡 여의주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경기 직후 만난 박영진 감독은 “감독과 선수로 청룡기에서만 3번째 우승을 맛봤다. 개인적으로도, 학교 차원에서도 정말 큰 영광이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상원고(전신 대구상고 포함)가 청룡기에서 6번 우승하는 동안 박 감독은 무려 세 번이나 우승과 연관을 맺으며, 자신과 학교 모두를 빛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선수들에게 공을 돌리는 일을 잊지 않았다.
 
“주장 황경태가 선수들을 불러 모아 얘기했다고 하더라. 눈물은 황금사자기 때 한 번 흘린 것으로 만족하자고(당시 결승전에서 선린인고에 2-7 패배하며 준우승). 그러한 선수들의 결의가 있었기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전상현과 더불어 2학년 투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 해 줬다. 왼손 신준영, 오른속 이진석(우수투수상 수상) 모두 내년에 더 클 선수들이다. 동계 훈련을 통해 더 성장을 해야겠지만, 지금의 우승 경험이 내년에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1977년 선수 우승 이후 동문들에게 행가레를 받는 박영진 감독. 당시 그는 오대석, 이만수와 함께 모교 대구상고를 이끌었다. 사진=조선일보 문화사업단 제공
 
하지만, 감사를 해야 할 대상은 선수단뿐만이 아니었다. 박영진 감독이 선수 시절, 사령탑을 맡았던 정동진 감독(전 삼성 감독)이나 모교 후배들에게 재능기부를 아끼지 않았던 이만수 전 SK 감독 역시 잊지 말아야 할 이들이었다.
 
“사실 정동진 감독께서 몸이 좋지 않아 이번 대회에 함께하지 못하셨다. 수술하신 지 얼마 안 되신 만큼, 꼭 쾌유하시리라 믿는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우리 '사부님'께 정말 감사 드린다. 또한, 내 친구 이만수 감독. 대회 전 모교 후배들에게 재능 기부를 해 준 것이 정말 결정적이었다. 모교에도 발전 기금을 쾌척하는 등 정말 도움을 많이 줬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이렇게 박영진 감독의 도전은 우승으로 끝이 났다. 1977년 선수로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2011년, 2015년 같은 대회에서 감독으로서 우승을 차지한 이 경력은 당분간 깨어지지 않을 기록으로 남을 전망이다. 실제로 청룡기 수상자 명단을 보면, 1964년 감독상 수상자 재정 이후 감독상만 3번 받은 이는 있었지만(경남고 이종운, 덕수고 정윤진 감독), 선수/감독으로 3번 이상 상을 받은 이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 점만 봐도 박 감독은 꽤 진귀한 기록을 가진 이로 남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아직 현역 감독으로 건재함을 과시하는 박 감독은 내심 '선수/감독 통산 청룡기 4회 우승'을 위해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문화뉴스 김현희 기자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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