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지난 16일 오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태구 배우와 만났다.

아직 많은 작품에 나오지 않았지만, 주로 영미희곡을 바탕으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노네임씨어터컴퍼니'와 연이어 작업하며 무대 어딘가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온 그는 이번에 창작 작품을 만드는 (주)창작하는 공간의 새로운 작품 '밀레니엄 소년단'의 형석 역으로 출연한다.

2016년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이란 이름으로 초연을 올린 창작극 '밀레니엄 소년단'은 제목 그대로 2000년 무렵을 배경으로 한 소년들의 우정과 '우정을 지탱하는 힘'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시대성을 드러내는 '추억'에 집중했던 초연과 달리 인물간의 관계에 집중하게 됐다는 재연에선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눈길이 모이고 있다.

동우 역에 이강우, 주민진, 민진웅, 지훈 역에 박동욱, 이형훈, 정순원, 형석 역에 김호진, 김다흰, 이태구, 명구 역에 전석호, 송광일, 김연우가 출연한다.

그에게 근황을 묻자 "한동안 쉬면서 다른쪽 일을 알아봤지만, 공연을 워낙 좋아해서 갈증이 있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30대가 돼 회복이 느리다는 남자. '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남자. 원 캐스트만 하다가 트리플 캐스트는 처음이라 신선하다는 남자 '이태구'와 나눈 이야기들.

 

'히스토리 보이즈', '두 개의 방'이나 '수탉들의 싸움'까지 최근 노네임씨어터컴퍼니에서만 작업했다. 이번 '밀레니엄 소년단'에선 새로운 제작사와 함께하는데 작업하는 방식이 다르진 않은지.

ㄴ 데뷔작이 '뷰티풀 선데이'인데 그 이후로는 줄곧 노네임씨어터컴퍼니에서 공연을 했죠. 그런데 사실 이번 연출님(박선희 연출)이 학교 선배님이에요. 강의도 하셨거든요. 제 위아래 학번으로는 '선생님'이었는데 전 군대 갔다오면서 시기가 맞지 않아 '선배님'이죠. 연출님이 진행하는 방식이나 제작사(창작하는 공간)의 방식이 크게 낯설진 않았어요.

앞서 트리플 캐스트는 처음이라고 했다.

ㄴ 더블 캐스트까진 해봤는데 아무래도 같은 역이 두명일 땐 어떤 선택이나 연기를 하는데 다른 캐스트의 선택이 좋아보여도 그걸 따라가기 조금 망설여지는 게 있어요. 미묘하게 서로 불편한 게 있을 수도 있거든요. 트리플 캐스트가 좋은 건 이런 게 있으면 논의할 수 있더라고요. 두 형(김호진, 김다흰 배우)이 너무 좋아서 제가 먼저 '이런 건 어때요?' 물어볼 수 있고 셋이 같이 토론하고 좋은 선택을 고민하고 맞춰가게 됐죠. 유일한 단점은 연습 시간이 한정적인데 셋이 해야하니까 초반에는 다들 서로 연습하라며 미뤘는데 나중으로 갈 수록 야구로 치면 8-9회 때 대타들 몸풀듯이 막 연습하는데 가서 서성이고 그랬죠(웃음).

 

이야기 나온 김에 형석 역을 함께하는 김호진, 김다흰 배우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어떤 선배들인가?

ㄴ 일단 두 분 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세요. 사회생활하며 만나는 어려운 선배나 요즘 말로 소위 '꼰대'들의 특징이 주로 내가 원치 않아도 안 해도 될 조언을 들려주고 강요하거나, 아집을 부리거나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형들은 제 이야기를 정말 다 들어주시고 또 스스로 고민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면 충분히 기다려 주세요. 그러다 제가 고민을 끝내고 다가가서 여쭤보면 그제서야 이야기를 해주시죠. 또 '꼭 이래야 해'라고 정답을 알려 주시기보다는 답을 열어 주세요. 또 (김)호진이 형이 가장 선배셔서 많이 품어 주세요. 자랑을 좀 하자면 네 명의 역할 중 형석 역할 배우들이 가장 케미가 좋다는 자부심이 있어요(웃음).

초연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공연을 관람했다고 들었다. 관객으로서 초연 봤던 느낌을 말해본다면.

ㄴ 저도 고등학교 나왔으니까 보면서 공감이 많이 됐어요. 작품에서는 예전 사이로 돌아갈 수 없는 극적인 사건이 있었지만, 저도 나이를 먹으니까 자연스레 친했던 친구들과 멀어졌어요. 그런 면에서 공감갔던 작품이에요. 공연을 보고 나오는데 고등학교 때는 매일 같이 보기 싫어도 붙어다니던 친구들이 많은데 다들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졌어요.

이번 재연의 작품 설명을 보면 초연이 '추억'에 집중했다면 재연은 '관계'에 집중한다던데 연습하는 느낌은 어떤가.

ㄴ 그 표현이 딱 맞는 거 같아요. 인물들의 미묘한 관계를 다루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친구 넷의 아름다운 우정이 있는데 그런 미묘한 지점을 강화하고 깊이가 생겼죠. 초연에 비해 많이 달라졌어요. '이름이나 설정만 비슷한 게 아니야?'라고 할 정도라서 기대반 걱정반입니다. 초연에서 좋았던 점을 기억하고 오실 분들에겐 낯선 작품이라서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걱정이에요. 그렇지만 분명 더 좋은 점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변한 지점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을지.

ㄴ 스포일러가 되면 안 되는데요(웃음). 제가 느끼기에는 초연에는 주인공인 지훈이와 '안타고니스트'인 형석의 관계로 갔다면 이번에는 지훈과 동우, 명구와 형석이 둘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주된 전개에 변화가 생겼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야기의 무게감도 과거에 많았다면 이번엔 성인이 된 이후, 현대로 많이 쏠린 것 같아요.

 

이태구가 생각하는 '형석'은 어떤 캐릭터인가?

ㄴ 아이들 사이에서 약간 더 어른처럼 행동하고 싶어하고 품어주려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아빠 혹은 엄마(웃음)? 어느 배우가 하느냐에 따라 좀 달라질 것 같아요.

어쩐지 김다흰 배우가 엄마 느낌이다.

ㄴ 맞아요(웃음). 호진이 형이 아빠고요. 저는 그 중간 어딘가쯤으로 블렌딩된 것 같아요.

크로스 페어로 12명이 섞이다 보니 다양한 조합이 생긴다. 케미가 붙는 페어를 추천한다면.

ㄴ 이번에 프리뷰 공연은 고정 페어인데 다들 자기들이 제일 낫다고 하더라고요. 초연 페어가 있고 이외에도 여러 변수가 있어요. '인디아블로그' 페어. 저는 한양대를 나왔는데 어쩌다 보니 각 대학교 별로 '대학 동문' 페어. 또 키가 큰 형들이 많아서 '최장신' 페어도 있죠.

 

앞서 말했듯 '밀레니엄'이 배경이라서 관객들에게 추억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본인의 학창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ㄴ 형석이 대사 중에 그런게 있어요. '지훈이는 개또라이라 나는 옆에 있으면 좀 무난해보였다'고요(웃음). 저도 무난하게 생활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랑 몰래 학교 빠져 나가서 피시방 가고 그런 정돈 누구나 있잖아요(웃음). 큰 범주에서 일탈은 없었고 그냥 농구하는 거 좋아하고 놀러다니는 거 좋아하고 평범했어요.

그럼 네 명의 인물 중 누구와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지.

ㄴ …(고민 후)형석이요. 그나마 평범한 것 같아요. 다른 캐릭터들은 다 각자 튀는 점이 있어서 연기할 때도 형석이가 오히려 무난한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그 안에서 그냥 바라봐주고 존재해 주면 될 것 같아요.

대학교에서는 연출을 꿈꿨던 영화학도였다. 어쩌다 무대의 매력에 빠지게 됐나.

ㄴ 대학교 때 영화 연출을 전공했어요. 제가 1학년 때였는데 연극 워크샵을 하던 선배가 제게 '지금 아니면 언제 연극 해보겠냐' 해서 연극 워크샵의 무대 크루로 참여하게 됐죠. 그런데 운이 좋게 1학년인데도 배우로서 무대에 서게 된 거에요. 그때 '사천의 선인'을 했었어요. 그때 함께하던 선배 중 하나가 (박)동욱이 형이었는데 엄청 혼나면서 연기를 배웠죠. 아무리 그래도 저는 걸음마도 못 떼는 시절이라 형이 '멱살잡고' 공연을 끌고 갔죠. 그러다 막공 커튼콜 때였는데 저도 모르게 막 오열을 하는 거에요. 이후 학교에선 그냥 연출 전공으로 계속 배웠는데 어느날 문득 '왜 내가 카메라 뒤에 숨어있을까?' 싶어서 군대를 다녀온 뒤 후에 전공을 바꿨어요.

 

연출 전공으로 영화를 배웠다면 아무래도 다른 배우들과는 좀 다른 점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예를 들면 배우들은 보통 '자신의 캐릭터'에만 집중하는 편이지만, 연출을 전공했다면 대본 자체의 완성도나 큰 그림을 그리게 되지 않는지.

ㄴ 공연할 땐 아니지만, 아직도 테이블 작업에선 그런 면이 있어요. 보통 대본에서 아쉬움이 있어도 배우라면 대본을 믿고 이 인물이 그렇게 가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하는데 저는 제동이 걸렸어요. 그런데 연기를 하다 보니 선배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안 되는 지점만을 생각하면 그런 이유가 계속 생겨서 끝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래서 공연이 배우의 예술이라는 말도 이해가 되고,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해요. 또 매번해도 어렵고 경험도 무시 못하고, 언제쯤 이거 하면서 편해질까 싶은데 형들 보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배우는 계속 그런 것 같네요.

어느덧 30세다. 이제 곧 진정한 30대를 눈 앞에 두고 있는데 소감이 어떤지(웃음).

ㄴ 이제 더 이상 젊지만, 어리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날 좀 술을 마시거나 오래 놀면 심리적일 수도 있지만 회복이 안 돼요. 몸이 느끼는 것 같아요(웃음). 대신 나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게 된다는 건 좋은 거 같아요. 예전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뭔가 꼼꼼히 챙겼다면 이젠 그냥 편하게 하려고 해요. 외모처럼 남들에게 보이는 면에 대해서도 욕심이 있었는데 이젠 봐주시는대로 보여지죠. 좀 초연해진 것 같아요. 아 또 생각났어요. 저는 비록 힘들다고 이야기하지만, 연습할 땐 엄청 웃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은 나이를 먹어갈 수록 점점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더라고요. 처음에는 데뷔가 늦어서 먼저 사회생활하는 친구들 보며 부럽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 직업을 선택한 게 큰 장점이 되는 것 같아요. 웃을 일이 정말 많아요.

 

데뷔가 늦었다고 생각하면 조바심이 날법도 하지 않나?

ㄴ 군대 다녀오고 전공을 바꾸고 했을 때가 26살이었어요. 그땐 이미 먼저 데뷔하고 경험 쌓기에는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학교에서 2년 더 확실히 다지고 나가자고 생각했고 그 점에 후회는 없어요. 저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연기 전공이 아닌 다른 공부를 했는데 그런 저만의 장점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서른이 된 지금은 조바심이 조금 나요. 이미 시작했고 발을 담궜으니까요. 아직 뭘 모를 때는 욕심이 안 났는데 오히려 지금은 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더 좋은 배우?

ㄴ 요즘 제 화두에요. 내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고 어떤 배우인가? 저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애매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약간 도 닦는 기분이기도 해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뭘 할 때 빛나는 사람인지 찾아가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그때 그때 끌리는 걸 찾았다면 이젠 안을 파고들어 보려는 시기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주변에서도 친구들끼리 뭘 할 때 행복한지 묻기도 하고요. 사람을 만날 때에도 어떤 사람과는 편하고 어떤 사람과는 불편하고 그런 게 생기면 예전에는 불편한 사람을 막연히 피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깨달아보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밀레니엄 소년단'을 보러 올 관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ㄴ 그냥 저희 무척 재밌게, 배우들끼리 놀면서 친해지면서 울고 웃으면서 연습 많이 했으니 오셔서 다양한 캐스트, 조합으로 공연 보러 와주시면 좋겠어요. 공연에서 주는 재미만이 아니라 배우들이 바뀌면서 생기는 페어의 재미도 있으니 여러 번 보러 오셔도 좋아요(웃음). 관객 공약도 걸려 있으니까요. 또 공연을 처음 보는 분들도 쉽고 재밌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연극 '밀레니엄 소년단'은 동숭아트센터 동숭소극장에서 2018년 2월 4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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