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아띠에터 박정기] 성균관대학교 입구 30스튜디오에서 연희단거리패의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작, 이원양 번역, 이윤택 번안 연출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가 17세기에 일어난 30년 전쟁(1618∼1648)을 배경으로 1939년에 쓴 서사극의 대표 작품이다. 1940년대 초반에 개정되었고 서사적 기법이 완숙하게 사용된 사실적인 희곡으로, 당시 파시즘과 전쟁에서 벗어난 독일 민족에게 호응을 얻었다.

억척어멈으로 알려진 안나 피에르링이 자식을 잃어가는 과정이 연대순으로 그려지고 장소 전환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12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삽화적 형식으로 펼쳐지는 작품이다.

억척어멈은 병사들에게 생필품을 팔고 다닌다. 벌이 좋은 장사를 쫓던 그녀는 탐욕스럽고 기회주의적인 성격으로 마침내 두 아들을 잃고,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딸마저 잃는다. 그녀는 홀로 행상 마차를 끌게 되는 때에도 전쟁, 자신의 장사와 불행이 밀접하게 관련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서사극(epic drama) 기법들이 많이 사용되는데 그중 다른 시대나 장소에서 취한 상식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관객에게 그 소재에 거리를 두고 비판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역사화(historification)된 공연이다.

또한 각 장이 시작되기 전에 일어날 사건을 자막에 투사하거나 플래카드에 적어서 알려주는 기법은 관객이 미리 내용을 파악하여 그 속에 담긴 정치적·경제적 함의를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억척어멈이 점차 도덕적으로 타락해가는 모습이 풍자적 언어로 의식적으로 경쾌한 곡조에 실리는데 노래는 희곡과 내재적으로 관련되어 해설의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은 원작대로 공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미국에서는 남북전쟁(1861~1865)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번안 작품이 1970년대 말에 공연되었고, 연희단거리패에서는 6 25동란(1950~1953)을 배경으로 번안해 2006년에 공연했다. 2016년 원로연극제 지원 작품으로 김정옥 연출의 1인극으로 변형된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연희단거리패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브레히트 작, 이원양 역, 이윤택 번안·연출)이 2006년의 연극계를 휩쓸고 2017년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작자 브레히트는 자신의 연출 작업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 은연중에 후배들이 이 모델을 따라줄 것을 기대했지만, 독일어의 ‘Mutter Courage’(용감한 어머니)를 이번 연극에서는 ‘억척어멈’으로 번역할 정도로 언어 선택에서부터 기량을 드러냈다.

부제도 ‘한국전쟁의 연대기’로 바꾸고 시대적 정서감은 불러일으키며 배경음악도 판소리와 대중가요는 물론 건반악기로 쇼팽의 장송행진곡까지 연주된다. 억척어멈은 상여(喪輿)를 연상시키는 포장마차를 끌고 다니고, 출연진의 대사는 전라도 사투리와 함경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변형된 작품이지만 브레히트의 연출기법은 충실하게 응용되었고, 음악도 피아노와 트럼펫 그리고 아코디언을 연주해 기존의 대중음악과 창작판소리를 병행함으로써 관객의 정서를 충족시킨다.

원작의 배경인 30년 전쟁은 서로 ‘성전(聖戰)’을 내세우는 신교와 구교간의 갈등과 반발에서 야기되었다. 브레히트가 비판코자 한 제2차 세계대전 중 600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와 이를 선동한 히틀러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 구교와 교황에 대한 신교 신봉자들의 회의와 거부감이 깔렸듯이, 한국전쟁도 특히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땅이 공산화가 되면 종교의 자유는커녕 종교자체를 부정하는 세상이 되겠기에, 성전의 성격으로 받아들여졌기에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변형은 적절한 착상이다.

번역을 한 이원양(1941~) 교수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했다. 독일 괴테 인스티튜트 디플롬을 받았고, 쾰른 및 함부르크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연구했으며 뮌헨대학교 연극학 연구소에서 연극학을 연구했다. 한국브레히트학회 회장, 한국독일어교육학회 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그리고 한양대학교 문과대학장을 역임했으며, 독일 연방공화국 정부로부터 1등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이며 한국브레히트연극연구소 소장이다. 지은 책으로는 '브레히트 연구', '독일어 기초과정', '우리 시대의 독일연극', '독일 연극사', '만나본 사람들, 나눈 이야기'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한국의 봉함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이 있다. 번역 희곡으로는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서푼짜리 오페라',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 크뢰츠의 '거세된 남자', '수족관', 슈트라우스의 '재회의 3부작', 브라운의 '베를린 개똥이', 실러의 '간계와 사랑', '빌헬름 텔', 호르바트의 '빈 숲 속의 이야기' 등이 있다. 2010년 7월 밀양연극촌에서 '햄릿' 공연사진전 '햄릿과 마주보다'를 가졌다.

이윤택(1952~) 작가 겸 연출가의 연희단거리패는 1986년 7월 부산 가마골소극장 개관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민간 소극장 연극 정신과 방법론을 탐구하는 실험극단으로 출발했다. 이후 서울 게릴라극장과 밀양연극촌을 중심으로 지역과 경계를 넘나들었다. <오구>, <바보각시>, <느낌극락같은>, <시골선비 조남명>, <아름다운 남자> 등 전통과 동시대를 만나게 하는 작품은 물론 <햄릿>, <허재비놀이>,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코마치후덴>, <피의 결혼> 등 해외 극을 한국의 독자적인 현대연극 양식으로 수용하는 작품들로 호평 받았다.

이윤택은 1999년 1월 고향 밀양의 한 페교에 연극촌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창고극장, 숲의 극장, 우리 동네 극장, 가마골소극장, 스튜디오극장, 성벽극장이 차례로 건립되고, 자료관, 사무실, 편의점, 식당도 만들었다. 최근에는 윤대성 문학관이 들어서고, 해마다 7월과 8월이면 밀양연극제를 개최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로 인해 밀양시에는 2016년에 국립극장에 버금가는 밀양아리랑 아트센터를 개관하고, 12일간의 연희단거리패의 공연작품으로 전석매진이라는 대성황을 거두었다.

이윤택은 경남 김해시 생림면 낙동강 끝자락 마을 도요리 도요마을 중심에 있는 폐교에도 각종 발표와 워크숍을 할 수 있는 사랑방으로 만들고, 마을 주변 빈집을 사들여 예술인 숙소, 연기 훈련장, 출판사, 카페, 방문객 숙소 등으로 수리해 도요 예술공동체를 형성했다.

거기에 도요출판사까지 차렸다. 2016년에는 20년 만에 시집과 시극<숲으로 간다>를 집필하고 출판했다. 2016년에는 30스튜디오를 개관하고, 2017년에는 부산 가마골소극장을 개관하고 부산 연극의 메카로써의 자리매김을 시작한 한국연극의 선도자다.

무대는 상수 쪽에 담장이 넝쿨로 덮인 벽면과 그 뒤쪽에 등퇴장 로가 있고, 벽 앞으로 트럼펫, 피아노, 아코디언 그리고 타악기 등의 연주석이 있다. 객석출입구 가까이 장식장이 보이고 탁자도 놓여있다. 하수 쪽은 TNT 폭약상자가 쌓여있는 초소와 초가집 앞부분이 세워지고, 극 진행에 따라 억척어멈의 수레가 등장을 한다.

수레에는 휘장을 오르내릴 수 있는 대나무 받침이 있고, 수레 내부에 잔뜩 쌓인 소품은 물론 남북의 군복의 명확한 구별, 억척어멈의 세 자녀의 모습과 머리 색상, 매음녀의 분장과 의상, 교직자의 의상, 그리고 상황대처에 따른 분장과 의상, 총성과 폭파음 같은 음향효과, 그리고 억척어멈 딸의 초가지붕에서의 결사적인 북 두드림 등 극 전개에 따른 출연진과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는 완벽에 가까운 공연이다.

김미숙이 억척어멈, 천석기가 큰아들, 오동식이 취사병, 윤정섭이 군목, 김아라나가 매음녀, 양승일이 십팔연대장, 박정우가 작은아들, 신다영이 막내딸 순나, 배소민이 농부 처외 1인 다 역, 양현석, 임한결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설정과 호연 그리고 열연은 물론 열창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김미숙은 실제 억척어멈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일생일대의 명연을 펼친다. 김아라나도 전직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배역에 부합하는 호연을 보인다.

 

무대제작 김경수, 조명감독 조인곤, 안무 김윤규, 음악감독 김시율, 작곡 윤현종 전상민 김시율, 제작총괄 김소희, 무대제작 ㈜월산프로젝트, 무대감독 김한솔, 기획 노심동, 홍보 천석기 김아라나, 사진 김용주, 트레일러제작 이신혜, 홍보디자인 황유진 등 스텝진의 기량과 열정이 드러나, 연희단거리패의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작, 이원양 번역, 이윤택 번안 연출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을 원작에 대비되는 걸작 번안 작품으로 창출시켰다.

 

▶공연메모
연희단거리패의 베르톨트 브레히트 작 이원양 역 이윤택 번안 연출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공연명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 공연단체 연희단거리패
- 원작 베르톨트 브레히트
- 번역 이원양
- 번안 연출 이윤택
- 공연기간 2017년 11월 23일~12월 17일
- 공연장소 30스튜디오
- 관람일시 11월 23일 오후 8시

 

[글] 아티스트에디터 박정기(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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