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워킹 홀리데이' 연출가 이경성 인터뷰

이경성 연출가 ⓒ 두산아트센터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우리는 최근 3년간 한 비극적 사건이 진영 논리로 소비되며 극단적인 해석으로 분열되는 현상을 지켜봐야 했다. 이경성과 크리에이티브 바키(VaQi, 이하 바키)가 이 현상을 지켜보며 택한 일은, 자신만의 논리를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었다. 

지난 7일 개막한 연극 '워킹 홀리데이(Walking Holiday)'는 우리 사회를 장악한 비정상적인 비난의 원리와 탄생 배경을 고민하는 바키의 사유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이들은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제대로 직시하고 치유하기 위해, 일련의 작업들('비포애프터', '그녀를 말해요' 등)로써 사건 자체와 사건의 피해자들을 조명해왔다. 그러나 이들이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현실은 이 사건을 하나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켰다.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사건이 소비되는 현상을 지켜본 이경성 연출가는 이 비극의 근원을 찾아가보고자 했다. 그가 찾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불편한 논리는, 곪은 채로 붕대 감긴 20세기의 상처에 원인이 있다고 봤다. 그들은 이제 그 상흔을 '걷는'다.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DMZ 일대 300km를 도보로 횡단한 바키는, 현재 자신들의 지난했던 걸음을 두산아트센터 Space111 무대에서 꺼내어놓고 있다. 걸음의 다양한 재현을 통해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편, 이경성 연출가가 '워킹 홀리데이'를 끝으로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과 작별한다. 이경성 연출가의 유학기간을 제외하고 약 5년 간 끈끈한 연을 맺어온 이들은, 이제 각자 또 다른 세계를 시작하기 위해 헤어진다. 두산아트센터는 곧 창작자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할 새 예술가를 발표할 예정이며, 이경성 연출가는 더 이상 '육성'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중견 예술가가 돼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를 새로 구축하기 위해 발걸음을 떼었다. 실제로 이경성 연출가는 인터뷰에서 신작 '워킹 홀리데이'로 작업의 주제와 방식을 새로이 구축하고 있음을 밝혔다.

다음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이경성 연출가와의 일문일답이다. 

 

연극 '워킹 홀리데이'는 오는 2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서 공연된다 ⓒ 두산아트센터

최근 어떻게 지냈나?

└ 지난 5월에는 '안산거리극축제'에서 랜터스 씨어터와 함께 '낯선 이웃들'을 공연한 이후, 여름에는 '변방연극제' 예술 감독으로 지냈습니다. 더불어 연극 '워킹 홀리데이' 작업도 동시에 준비해왔는데, 이번 작품은 예전 작업 방식과 다르게 시작했어요. 그래서 막막하더라고요. 공연 올리는 날까지 구조나 표현형식을 고전했던 시간으로 보냈던 것 같네요. 

공연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건가?

└ 시간이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였죠. 연습실에서의 모습과 극장 들어왔을 때의 모습, 그리고 실제로 관객이 있을 때의 모습이 꽤 많이 다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어제(9일)까지 대사를 추가하고 동선도 바꿨어요. 오늘(10일)부터는 안정적으로 공연될 것 같네요. 지금까지의 작품 중 러닝타임이 제일 깁니다. 미세한 테크도 맞출 게 많아서 그랬는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러닝타임은 110분입니다.

어떤 것들이 바뀌었나?  

└ 무대 주변부를 걷던 배우들의 동선을 무대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공연 도중 배우들이 관객들 뒤에서 대사하던 장면이 있었는데, 관객 앞에서 하는 걸로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연습하면서 뺐던 대사들을 다시 추가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극의 흐름이 DMZ를 얘기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지금 이곳' 사람들과 연결하는 것에 치중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그 최종 구조를 찾았고요.

제목 '워킹 홀리데이(Walking Holiday)'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 '걷는 것(Walking)'은 행위의 시작점입니다. 지난 5월부터 9월까지의 작업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장기 도보여행이 원만히 진행되기 힘든 일임을 느껴야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일상을 끊고 '휴가(Holiday)'처럼 떠나온 겁니다. 또한, 우리가 걸었던 땅은 아픈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땅이죠. 그 아픈 흔적을 몸으로 걷는다는 것이 '거룩(Holy)'하게도 느껴졌어요. '영적인 걸음'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더라고요. 

 

ⓒ 두산아트센터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부터 고성 동해 앞 바다까지 약 300km를 도보로 횡단했다. 그 시작부터의 과정이 궁금하다

└ 그 동안 다뤄온 이슈들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보면, 늘 '분단'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인지해야 했습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그 지점을 지금의 상황으로 다뤄야겠다고 판단했고요. 분단 현실을 인식하더라도, 일상에서 중요한 문제로 여기기는 어렵죠. 뉴스로 접하는 그 상황들이 아직 '그게 우리 얘기인가' 싶게 여겨지곤 하는 것 같아요. '그럼 이걸 어떻게 우리의 문제로 가져올 수 있을까' 란 생각에서 '그런 과정에도 연습이 필요한데, 연습을 어떻게 해야 할까'의 고민으로 이어졌어요. 

그 결과, 우리 몸으로써 직접 이 땅의 경계를 체험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걸으면 풍경들이 우리한테 얘기해주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요. 여러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두산아트센터 측과 같이 얘기하며 도보 과정을 꾸렸어요. 배우, 스태프 등 열 몇 명이 오랜 기간 여행하는 일정이다 보니 조정 기간, 코스 등 고려해야할 부분이 많더라고요. 우리 코스 중에는 민간인 통제구역도 있어서 사전에 주변 군 부대 협조도 필요했어요. 사실 원래는 한 번에 300km를 횡단하려 했는데, 극기 훈련이 목적이 아니니까 나눠서 가는 게 더 좋겠다는 의견대로 세 차례에 나눠서 가게 됐어요. 봄, 여름, 가을에 한 번씩 갔습니다. 모내기할 때와 도보를 시작해서 추수할 때를 끝냈네요. 

횡단 과정 중 에피소드가 있다면?

└ 공교롭게도 우리의 세 번의 횡단 기간이 매번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던 시기와 맞물렸습니다. 생각보다 괴로웠던 건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풍경이었습니다. 휴대폰에서 말하고 있는 현실적 사건들과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땅의 분위기(이 또한 현실)가 상충하니까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걸으면서 좋았던 것은 계획 없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특별한 장소와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주인어른께서 저희가 가볼만한 곳을 소개해줬고, 그 인연이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했죠. 오히려 계획을 느슨하게 짰을 때 생각지 못한 재밌는 만남들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재밌는 풍경은 부동산들이 활개치고 있던 민통선 근처입니다. 파주 일대를 비롯해 위쪽 땅의 값이 비싸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통일이 이뤄질) 미래를 바라보려는 같았습니다. 통일이 된다면 그곳이 요충지가 될 테니까요. 그리고 지나가면서 유독 큰 집도 많이 봤어요. 어차피 전쟁이 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그런지 여유로운 집들이 꽤 있더라고요.

 

연극 '워킹 홀리데이' 공연 사진 ⓒ 두산아트센터

왜 '분단'된 '땅'을 조명하고자 했는가?

└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을 해석·수용하는 반응들이 결국은 '안보', '반공', '전쟁의 심각성 재고' 등으로 귀결되는 것을 계속 목도했어요. 이미 다른 식, 혹은 다른 쪽을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들이 원천 차단돼 있더라고요. 그것이 일상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사건들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더라고요. 

이런 얘기도 있었죠. '천안함 사건'과 비교하며 '결국 교통사고 난 것과 다름없는데, 왜 나랏돈으로 (피해자들을) 보상하느냐'고요. 그 이야기 근저에는 우리나라의 많은 참전용사가 과거의 전쟁을 통해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 그리고 이후 그들이 국가로부터 온전히 인정이나 보상받지 못했던 사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세월호 사건 피해자들의 보상을 보며 박탈감을 느꼈던 것 아닐까요. 

현재 우리 사회는 이런 일들이 생각을 고립시키고 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결국 우리는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분단된 땅이 우리의 인식과 해석의 가능성을 많이 차단하구나' 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실연, 영상, 디오라마(축소 모형과 풍경) 등 다양한 방식으로 4개월간의 경험과 생각을 묘사한다. 특히 무대 위에서 디오라마를 실제로 촬영해 관객들에게 즉각 보여주는 설정이 눈에 띈다. 

└ 실제로 통일전망대에 가보면, 저기 빤히 보이는 금강산, 개성공단 등을 가지 못하니까 미니어처로 표시하더라고요. 느낌이 묘했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곳을 가지 못하니 모형으로만 접해야 했죠. 그럼 '이곳은 나한테 존재하는 땅인가, 아닌가' 란 의문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정보는 모두 매체를 통해 얻은 것이죠. 실제 그쪽과는 직접적인 왕래를 전혀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오히려 실제에 가닿지 못하게 겹겹이 막고 있기도 하고요. 그 겹겹이 쌓인 것들이 모든 것을 허상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곳, 알고는 있지만 가지 못하는 땅을 옆에 둔 채 걸으니까 답답하고 이상해지더라고요. 내가 그곳을 가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새삼 생각해보면서, '왜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지' 하면서 걸었어요.

[문화 人] 이경성, 신작 '워킹 홀리데이'로 새 작업의 화두 꺼내다 ② 로 이어집니다.

keyy@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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