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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문화 人] '침묵' 최민식 "이하늬와 멜로? '감성 영화'로 봐달라" ① 에서 이어집니다.

언론시사회 당시 했던 발언이 생각난다. 그 때 "배우들이 만들어준 파도를 탔을 뿐이다"고 말했는데, 무슨 의미였나?
└ 한 영화를 찍다 보면 자주 부딪치거나 교류하는 인물이 있지만, 아예 없는 인물도 있다. 그런데 '침묵'에서만큼은 모든 인물이 다 연관되어있다. 그렇기에 다른 배우들과 케미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고 삐걱대면 힘들어진다. 그런 지점들이 후배 배우들인 하늬나 신혜, 준열이, 해준이, 한철이 모두 다 고마웠다.

박신혜가 연기한 '최희정'은 임태산에게 먹힐 것 같은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 그가 다른 로펌 변호사들을 물리치고 미라의 접견변호사로 선임된 것은 임태산의 계산도 있었지만, 그만큼 순수하게 보이고 정의감에 사로잡힌 채 사건을 정말 열심히 할 것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수경이의 연기는 말할 필요가 없이 훌륭했고, '동성식' 역을 맡았던 박해준 또한 빼어난 연기력을 뽐냈다.

▲ 영화 '침묵' 스틸컷

아, 제작보고회 때 조한철에게 남다른 애칭을 붙이는 걸 봤다 (웃음)
└ 아, '에르난데스'. (웃음) 한 번은 한철이가 나에게 "저는 어쩌다가 선배님의 하수인이 되었죠?" 라고 물어본 적이 있어 "너를 콜롬비아에서 데려왔다"는 식으로 설정하는 등 서로 농담도 주고받을 만큼 친하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배우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화목해 보였다
└ 이런 분위기는 당연해야 하는데, 사실 현장에서 매번 그렇지 않다. 촬영현장에서 서로 개성과 생각이 있는데, '침묵'이라는 작품을 향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감독이 요구하는 명확한 주제를 배우들이 어떻게든 연출자의 의도대로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와의 조화가 기본이자 절대적이며, 이 조화가 깨지면 배는 산으로 가게 된다.

당연함에도, 사람들이 모이면서 하는 일이다 보니 항상 화목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때론 불협화음도 겪곤 한데, 이번에는 참 신기하게도 '속 썩이는 이' 한 명 없었다. 그래서 정 감독과 "복 받았다"고 서로 말할 정도였다. 모두 프로답게 임해줘서 선배인 내가 감동했다. 그래서 "덕을 봤다"는 말이 괜히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참 이뻐 보였고, 자극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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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번 연기를 보고 혹자들은 '최민식의 멜로 연기'라고 정의하는데,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 멜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오랜만에 인간 대 인간의 내면 교감을 하는 드라마를 하고 싶었다. 그동안 너무 특정 장르에 치중되어 자극적이었고, 따뜻함이나 포용, 슬픔과는 동떨어진, 각이 잡힌 작품만 하다 보니 지쳤다. 그래서 마치 단편소설 하나 읽은 것 같은 영화, 자극적이진 않지만, 자꾸 생각나는 영화, 그리고 그 안에서 전해오는 여운 있는 영화들을 하고 싶은데 현재 많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다른 영화들이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다. 좀 더 다양한 영화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파이란'처럼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는 영화를 더 하고 싶다. 꼭 현대로만 특정 짓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할 때는 오히려 과거를 배경으로 해도 얼마든지 창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가지는 감정이나 고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특별히 다른 작품을 해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나?
└ 특별한 계기는 없다. 평소에도 연기하는 데 있어 편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작이 너무 강하거나 잔인해서 그런 것 같다. 특히, '악마를 보았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향한 편견이 생긴 듯하다. (웃음) 살인마 이미지를 잊어주길 바란다. (웃음) 그러려면 앞으로 나보다 더 잔인한 살인마를 연기하는 후배가 나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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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의 이미지도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
└ '최익현'은 그에 반해 칠푼이스럽다. (웃음) 그는 비록 도덕적인 지탄을 받지만, 사실 아버지에 대한 헌사이며 내 손에 오물을 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가정을 먹여 살리겠다는 처절한 희생이 바탕이 되었다는 유머와 가치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에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 인간의 감정이나 고뇌를 다룬 영화를 좋아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특별히 편식하지 않는다. 다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귀신 나오는 건 잘 못 본다. 예전에 '링' 한 번 잘못 봤다가 귀신이 TV에 나올 것 같아서 한동안 TV를 못 봤다. '디아이즈'도 무서워서 거울을 못 봤다. (웃음) 심령영화인 '엑소시스트'나 '오멘'은 흥미진진하고, 윤석이와 동원이, 소담이가 출연했던 '검은 사제들'도 재밌게 잘 봤다. 얼마 전 연휴 때 '인디아나 존스'를 다시 봤는데 언제나 봐도 재밌더라. (웃음)

개인적으로 잘 만든 오락영화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사실 대중과 소통하는 데 있어 예술만 논할 순 없다. 오락 기능 또한 영화 속에 반드시 들어가 있어야 한다. 옛날에 "극장 구경하자"는 말 또한 오락적 기능에서 비롯된 말이다.

▲ 영화 '침묵' 스틸컷

오락성을 언급했으니 하는 말인데, '침묵'은 오락성이 없어 흥행 면에서는 위험하지 않을까?
└ 연기할 때, 감독과 '이렇게 해야 관객이 많이 들 것 같다'고 의도하면 가끔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잘 안되더라. 출연하는 배우로서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흥행을 외면하려고 한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개봉하기에 앞서 이미 언론시사회나 일반시사회 등을 통해 후기들이 다양하게 나왔다. 관객들이 100명이면 100명 다 환호할 수 없을 것이고, 모두 다 좋아한다는 것 또한 바람직한 현상도 아닌 것 같다.

하나의 문화상품을 다 좋아하길 바라는 허황된 꿈은 생각지도 않는다. 좋아해 주길 바라는 건 희망 사항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연기를 몰입하기 힘들 것이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의 완성도가 아닌 결과에 얽매이게 되면 안 된다.

그래서 흥행에 대한 압박은 나 스스로 도망가려고 한다. 나라고 일일 박스오피스 결과 안 보고 싶겠는가. (웃음) 결과를 보고 끙끙대봐야 소용없다. 다만, 어떤 부분에서 보는 이들이 지루하게 느꼈고, 어떤 부분에서 아쉽다고 하는 등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모니터링 해서 점검할 필요는 있다. 그리고 무슨 이유로 흥행이 저조했을까 요인을 분석해 다음 작업 때 고려하면 된다. 결과에 대해 자만하거나 자책할 필요도 없다. 잊을 수 있는 건, 빨리 잊어야 한다.

'침묵'이 잘 되길 바라지만, 그걸 떠나 옛 전우인 정지우 감독과 임승용 대표, 그리고 후배 배우들과 같이 어우러져 좋은 합을 보였던 것만으로도 좋은 추억이고, 앞으로도 계속 기억날 것 같다. 마음을 열어준 후배들에게 고마우면서, '침묵'을 끝으로 각자 헤어져야 하니까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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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다른 배우들에게 의례적으로 마지막 질문으로 향후 계획을 묻지만,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룬 입장에서 이런 질문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다고 모든 게 끝난 게 아니듯,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고 배우로서 더 이상 이룰 목표가 없는 건 아니다. 끊임없이 계속 공부하게 된다. 또 다른 세상이나 인물을 접했을 때 거기서 오는 긴장감과 연구는 두려움과 설렘, 신남이 공존한다. 마치 여행 갈 때처럼 말이다.

목표라고 말하기엔 거창하고, 죽기 전까지 배우라는 직업을 하면서 단 한 가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려고 해왔고 그랬다고 자부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이기적으로 내가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서 짐을 싸서 연기를 통한 여행을 해볼 생각이다.

syrano@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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