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지난 10월 31일 오후 대학로 한 카페에서 배우 전미도를 만났다. 아니, 드디어 만났다.

그녀는 현재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사람과 완전히 흡사하게 만들어진 로봇이지만, 구형 모델이 돼서 고장날 날만 기다리며 외롭게 살아가는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올리버의 옛 주인 제임스를 만나러 가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이 작품은 '번지점프를 하다'를 만들어낸 박천휴 & 윌 애런슨 '윌휴 콤비'의 새로운 창작극이기도 한 이 작품은 오는 12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된다. 3주간의 앵콜 공연으로 티켓 오픈 즉시 전회 전석 매진돼 좌석을 구하기 무척 힘든 작품이다.

배우 전미도는 '닥터지바고', '번지점프를 하다', '베르테르', '스위니토드', '어쩌면 해피엔딩', '원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쉴새 없는 변신을 선보였다. 원인 불명의 무기력증에 빠져 침대 위에서만 생활하는 여자의 안락사를 다룬 '비' 같이 상업적 시선에서 벗어난 소극장 연극부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대극장 뮤지컬도 가리지 않는 그녀는 늘 평단의 호평과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다.

더 대단한 것은 업계 관계자나 실제 그녀를 만나본 이들의 평이다. 누구에게나 좋은 배우, 좋은 사람으로 불리는 그녀를 만나는 일은 그래서 큰 기대감을 동반했다. 카페 2층으로 올라온 그녀는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발랄하면서도 상큼함이 느껴지는 클레어도, '스위니토드'에서 무언가 나사빠진 느낌으로 사랑을 원하는 러빗부인도 아닌 '전미도'였다.

무대에서 볼 때보다 키가 작아보인다고 말을 꺼내자 익숙한 반응이라는 듯 "실제론 더 왜소하죠"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가하면 이야기를 하다 기자에게 자연스레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위키드'의 글린다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던 발언에 대해 "못할 거란 이야기를 들어서 더 하고 싶었다"라며 갑작스레 전의를 불태우기도 하는 등 짧은 인터뷰 시간에도 불구하고 맡은 배역만큼이나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줬다.

도무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그녀. 우선 자기소개부터 해보기로 했다.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초연 프레스콜 당시 사진.

문화뉴스와 첫 인터뷰인데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ㄴ 안녕하세요. 배우 전미도입니다.

굳이 '전미도'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한 이유는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짓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은 이름만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뮤지컬 배우'라고 하기도 하죠.

ㄴ 단정 짓고 싶지 않았어요. 연극만, 뮤지컬만 하는 것도 아니고 공연 외의 다른 걸 할 수도 있으니 배우라고 불리고 싶어요. 그런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럼 예전에는 욕심이 없었나요?

ㄴ 사실 처음에는 배우라는 칭호 자체를 붙이는 걸 꺼려하고 부끄러워했어요. 과연 내가 남들 앞에 섰을 때 배우라고 해도 되나 그런 어려운 타이틀이었는데 10년 정도 하니까 좀 더 뻔뻔해지더라고요(웃음). '배우'라고 불려지고 싶은 거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경우도 있고, 신비롭게 지내기도 하고요. 분명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직업이기도 한데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에요. 무대 밖에서도 이것저것 이어지는 직업이죠.

ㄴ 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너무 감사하죠. 그분들이 계셔서 저희가 연기하는 거지만,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요. SNS 같은 경우에도 잘 안 받는 편이에요.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과 하고 싶고요. 전부 다 피드백 못할 거면 안 하는게 낫다 생각해요. 제 모습을 자유롭게 오고가며 보시는 건 괜찮지만, 일일이 다 해드릴 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안 하는 쪽이에요. 그리고 팬들을 의식한 행동을 하기보다는 제 일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는 게 오히려 가장 팬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해피엔딩' 앵콜로 돌아오셨어요. 중간에 음악회도 그렇고 '어햎의 해'가 됐어요. 앵콜 무대에 오르는 소감은 어떤가요?

ㄴ 사실 좀 짧은 기간에 빨리 돌아오기도 했고 공연 기간도 짧다보니까 전에 했던 공연을 그대로 다시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창작진도 저희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이 기간 내에도 할 수 있는 만큼 더 다듬어보고 디테일하게 만들자는 생각이 있었고, 다행히 저희가 조금 손 본 것을 관객분들께서 알아봐주셨어요. 또 많이들 기다려왔다는 게 느껴져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게 공연하고 있죠.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초연 프레스콜 당시 사진.

정욱진 배우와 함께한 초연 인터뷰에서 '내가 만약 올리버라면 클레어의 기억을 지워야 할지' 묻는 질문에 '두 사람의 사랑이 예뻐서 지켜줘야 한다'고 대답했다. 앵콜을 맞아 더 다듬은 면이 있다고 했는데 클레어로서 그런 면을 설명해줄 수 있나요?

ㄴ 사실 저희가 트라이아웃 때 이 작품을 만들 때는 둘 다 (기억을)안 지우는 거였어요. 그러다 트라이아웃 올라가기 직전에 클레어는 지우는 게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와서 그렇게 됐죠. 그런데 본공연에 오면서 열린 결말로 남겨놨어요. '과연 지웠을까? 안 지웠을까?' 하고요. 그래서 저는 항상 애매모호하게 하는데 그날 보는 관객마다 '오늘은 지웠다', '오늘은 안 지웠다' 하시더라고요. 그런 것은 지난 번과도 큰 차이가 없어요. 도리어 지난 번보다 더 헷갈리게 하려고 명확하게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게 더 여운을 남기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기억을 지웠다고 생각하고 해도 보신 분들께서 '안 지웠어 안 지웠어' 이런 날도 있어요(웃음).

그렇다면 그런 서사 외에도 전체적인 변화가 있나요?

ㄴ 극의 진행 과정에서 더 캐릭터스러운 선택을 한다던지, 아니면 두 로봇이 주고 받는 행위에서 더 설득력 있게 선택을 한다거나. 아주 자잘한 건데도 다들 잘 캐치하시더라고요.

전작 '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비'는 안락사를 다룬 작품이고, '어쩌면 해피엔딩'의 클레어도 수명의 끝을 기다리죠. 둘의 죽음은 어떻게 다르고, 또 전미도가 생각하는 '죽음'이 있을까요?

ㄴ 두 작품이 주는 죽음은 관점이 좀 달라요. '비'는 8년 동안 무기력증으로 침대에만 있기에 이런 삶이 죽음과 차이 없다고 생각해서 빨리 안락사를 해달라고 엄마에게 애원하는 입장,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고 '어쩌면 해피엔딩'은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기계는 수명을 다한다는 걸 알 수 있어서 1년 정도 남았다. 이런 식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을 피하는 게 아니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거라 둘 다 좀 다른 것 같아요. 워낙 둘다 특수한 상황이라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죽음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어제도 뜻밖의 소식(*인터뷰 하루 전인 10월 30일 배우 김주혁이 차량 사고로 사망했다)을 전해졌잖아요. 그걸 보며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구나. (침묵) 그래서 클레어가 초반에 '끝까지 끝은 아냐'라는 노래를 부르잖아요. 언제 충전기가 고장나서 방전될지 모르지만, 그 직전까지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내용의 노래인데 이런 생각이 가장 건강하고 현명한 것 같아요.

▲ 연극 '비' ⓒ우란문화재단

저는 '메멘토 모리'라는 연극이 생각나더라고요. (*제2회 으랏차차 세우다 공모전 당선작.)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지만, 또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니까요.

ㄴ 맞아요. 그래서 하고 싶은 일 해야해요.

그렇다면, 전미도에게 연기는 하고 싶은 일이었나요?

ㄴ 네. 저는 유일하게 하고 싶던 일이에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던 일이라 안 되면… 다른 일에 대한 호기심 정도는 있었지만, 연기만큼 열정적으로 하고 싶던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무척 어릴 때부터였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언제가 처음인지 기억나나요.

ㄴ 처음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걸 보고 그때부터 완전히 매료된 것 같아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저는 그 이후로 장래희망이 쭉 연극배우였어요. 만약 영화를 봤었다면 영화배우라고 했겠죠. 그런데 나이를 들다 보니 연극배우보다는 '무대 위에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또 시간이 지나니까 여러 가지 도전해보는 그냥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그럼 자기소개랑 이어서 생각해보면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겠네요. 그렇다면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며 연기할 때도 있나요?

ㄴ 매 번 하는 생각이죠(웃음). 어떤 작품에 들어가면 항상 뭐가 이뤄지기 전까진 잘 모르잖아요. 광야에 있는 것 같고 황무지 개척하는 거 같아서 늘 어렵고 넘어야할 산이 많은지. 그럴 때마다 생각해요. 거기에 제 역량을 키우기도 힘든데 사람이 모이면서 어쩔 수 없이 부수적으로 생기는 문제가 겹겹이 쌓이면, (한숨)이걸 진짜 해야하나. 내가 뭐하고 있지? 이런 생각도 하긴 하죠.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초연 프레스콜 당시 사진.

그럼 그런데서 오는 고민 때문에 내가 이야기를 직접 만들거나, 써볼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나요?

ㄴ 저는 사실 글쓰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너무 부러운데 안타깝게도 제겐 없어요. 공연은 또 혼자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무조건 두세 명 이상의 협업이 이뤄져야 하기에 결국 내 성질을 죽이거나(웃음) 남을 이해하는 자아성찰로 가게 되더라고요. 열망만 있죠. 그냥 부러워요. 진짜 좋은 이야기가 가진 힘이나 메시지, 풀어가는 방식이 좋은 작품을 보면 너무 멋있고 부러웠어요. 나는 왜 저런 재능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어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을 하고 있지만, 규모를 가리지 않고 대극장과 소극장,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고 있어요. 그런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드'에서 가창력에 관한 발언을 했었어요. 그런 고민이 있다면 작품 선택하는 기준이 있거나, 앞으로 하고 싶은 유형의 작품이나 방향성이 있는지 궁금해요.

ㄴ 저는 보통 이야기나 역할 자체에 매력 있다고 느끼거나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 말은 이전의 제가 해보지 않았던 역할이거나 매력있는 이야기라면 선택하는 것 같아요. 연극, 뮤지컬, 대극장, 소극장 상관 없이. 결국 사람이 이성적으로 꼼꼼하게 장단점 파악하며 판단할 거 같지만, 본능적으로 감정적으로 끌리는 걸 선택하게 되잖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딱히 어떤 역할이 하고 싶어요. 이런 게 잘 없어요. 지금까지도 다양한 역할을 한 편이라서 도전해보고 싶다거나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역할이든 선택할 것 같아요. '위키드'의 글린다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누가 '절대 그건 못할 거'라고 해서 도전의식이 생겨서 말한 거였거든요. '맨오브라만차'의 알돈자도 마찬가지였어요. 절대 내가 할 수 없는 역할이라서 도전의식이 생겼는데 제작사에서 먼저 프로포즈를 해주셨죠. 그렇게 운이 좋아서 다양한 역을 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선택할 것 같아요. 이야기적으로는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좀 사회적인 이야기나 현재 이 시대가 겪고 있는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좀 더 삶에 맞닿아 있는, 더 현실적인 이야기.

연극 '글로리아'가 생각나네요. 아주 평범한 직장에서 사소한 선택이 쌓이며 사람이 변해가는 과정, 극단적인 결과가 드러나죠.

ㄴ '비'를 선택한 이유도 그래서였어요. 저는 정답을 내리는 것보다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 좋다고 보는데 '비'는 안락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렇다고 '안락사는 꼭 허용해야해'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비'가 엄마에게 안락사를 해달라고 해서 그게 이뤄지기까지 과정에서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라는 소재를 생각하기 아직 좀 이르지만, 충분히 한 번 더 그걸 생각해보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본 관객들은 엄마든, 비든 누구의 시선이든 저마다 생각하는 입장, 시선이 다르더라고요.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초연 프레스콜 당시 사진.

이야기를 들어보니 맨씨어터 소속이니까 연극 '프로즌'을 해도 좋을 것 같네요. 듣기 부끄러울 수 있겠지만, '천의 얼굴'이란 표현이 어째서 따라다니는지 알 것 같네요. 어떤 캐릭터를 하더라도 전미도만의 그림이 있을 것 같아요.

ㄴ 감사합니다. 대표님께 이야기해주세요(웃음).

그리고 전미도에게 '수상'이란(웃음)?

ㄴ 저는 사실 시상식 이런데 참여하는 게 좀 어색하고 불편하고 부끄러워요. 그런데 어쨌든 제가 참여한 작품이나 관계된 사람들이 계시니까 어쩔 수 없이 참석했는데 뜻하지 않게 상을 받았지만, 그냥 '받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너무 의미를 두면 독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올해도 바쁜 시상식이 될 것 같네요. ('어쩌면 해피엔딩'은 현재 제6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 '올해의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연출상', '극본상', '음악상' 후보에 올랐다. 그녀는 여우주연상 후보다.)

ㄴ 작품이 받으면 너무 좋은 일이죠.

한 번 더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자면 이예은 배우 인터뷰 중에 '전미도 배우는 꿈이었다'는 흥미로운 표현이 나와요. 주변의 후배나 관계자들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데 혹시 이런 게 본인에게 부담이 된다거나, 선배 배우로서 앞을 걸어간다는 책임감이 생기나요?

ㄴ 전 그런 것에 전혀 생각이 없나봐요(웃음). 배우를 시작할 땐 저렇게 되면 좋겠다고 했지만, 본인들도 가다보면 나는 좀 다른 길이구나 할 수도 있거든요. 그냥 처음에 좋게 봐주는구나 생각하고 부담을 가지진 않아요. 어차피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길이고 각자 살아남아야 하니까(웃음). 좀 신기하고 좋게 생각해요. 이렇게 말한 친구들이 몇몇 있는데 실제로 저를 만나면 티를 전혀 안내서 '그냥 한 말이었나?' 싶기도 하고(웃음), 아니면 어려워서 표현을 못했을 수도 있죠. 그래도 감사해요. 감동적이에요.

▲ 뮤지컬 '스위니토드' ⓒ오디컴퍼니

'스위니토드' 때 인터뷰에서는 '여성인물 비중이 이렇게 큰 작품은 처음이었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어요. 그 이후 '비'와 '어쩌면 해피엔딩'을 했는데 그런 부분의 아쉬움이 해소됐을까요? 혹은 앞으로 더 여성 위주의 작품을 하고 싶다거나.

ㄴ '스위니토드' 때는 단순히 분량보다 극의 드라마를 끌고 가는데 힘을 가지고 있고 독특한 캐릭터잖아요. 특히 대극장에서 그런 독특한 캐릭터를 저라는 사람이 만나기 쉽지 않아서 신선하고 좋았고 감사한 일이었죠. 이후 작품을 많이 하진 않아서 '비'나 '어쩌면 해피엔딩'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그냥 예쁜, 착한, 순수한 캐릭터만은 아니어서… 해소돼요(웃음). 재밌고, 이런 작품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여자 캐릭터가 더 다양하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런 맥락에서 공연 시장을 접근하고 있어요. '페미니즘'이라고 정의하긴 어렵지만, 여성 인물, 여성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분명히 원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위키드'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ㄴ 정말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여성 캐릭터로도 그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제 생각엔 우리도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젠 거의 끝까지 와서 다른 길을 찾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라서 점점 그런 작품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 혹시 무대 위에서 아직 보여주지 못했던,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을까요?

ㄴ 여자지만, 좀 남성적인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중성적이거나. 워낙 지금 귀여운 캐릭터를 하고 있어서 그런가봐요. 저는 항상 반대되는 캐릭터를 하고 싶더라고요. 잘 모르겠어요. 찬 바람 불고 그래서 그런지(웃음). 어디서 그런 생각이 왔는지 모르겠는데 최근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초연 프레스콜 당시 사진.

10년 정도 쌓인 커리어 중에서 또 해보고 싶다거나, 정말 좋은 캐릭터였다 싶은 게 있나요.

ㄴ 사실 모든 작품에 아쉬움이란 게 남아있어서 지금하면 더 잘할 수 있을텐데… 생각되긴 해요. 그런데 너무 힘들었던 건 다시 하고 싶지 않아요(웃음). 작년에 한 '비'에 너무 많이 아쉬움이 남아서 다시 해보고 싶긴 해요.

어떤 면에서 아쉬움이죠?

ㄴ 그냥 제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어요. 공연 내내 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계속 부끄러웠어요. 제가 자신이 없으니까. 그런데 아마 다시 해도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고 관객이 눈치 못챌 수도 있지만 자기만족이란 게 있잖아요(웃음). 사실 그런 에너지를 많이 쏟는 작품은 다시 하기 무섭기도 해요.

자기만족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ㄴ 자기가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알고 한다'는 것. 그게 맞든 틀리든 우리끼리 'A로 가자'하면 오케이. 나는 지금 A를 하고 있어. 이때는 우리가 A로 합의를 봐서 자신이 있으니까 A를 선명하게 내거나 조금 흐릿하더라도 A를 하니까 어느 정도 만족할 텐데 A인지 B인지 사실 아직 확실하지 않은데 그 엇비슷한, 언저리의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관객은 몰라도 스스로는 자신 없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제 심정 같네요. '비'를 못 봤지만, '비' 이야기를 계속 해야하는(웃음).

ㄴ 비슷할 수 있어요(웃음).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ㄴ 제가 지금 '어쩌면 해피엔딩'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 공연 보러 오시는 분들에게 진짜, 진짜진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말 이 작품을 사랑하시는 게 느껴지거든요. 기다려줘서 고맙고. 천년만년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분도 계시고. 너무 기분좋고 감사해요. 이런 기회로나마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초연 프레스콜 당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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