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故 김주혁의 키워드 5가지 : 허준, 김종도 대표, 싱글즈 & 청연, 1박2일, 아르곤

▲ 영화 '뷰티 인사이드' 스틸컷

[문화뉴스 MHN 석재현·박소연 기자]

이수 : 눈 참 예쁘게 온다. 이렇게 예쁘게 오는 눈 오랜만에 봐. 이상하게 눈 오면 안 춥다? 우리 한 바퀴 더 돌까?
우진 : 이수야.
이수 : 응? 내일은 뭐할까?
우진 : 우리... 헤어지자.
이수 : 갑자기 왜 그래...?
우진 : 그게 좋을 것 같애. 그 약도 그만 먹고. 감기 들겠다. 얼른 들어가.
이수 : 우진아...

'뷰티 인사이드'의 '우진'처럼, 김주혁은 우리 곁에서 갑작스럽게 떠났다. 지난 10월 30일 오후 4시 30분경, 그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영동대로에서 차를 몰다가 인근 차량을 들이받았다. 이후 김주혁의 차량은 인도로 돌진했고, 아파트 벽면에 부딪힌 뒤 2m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사고 직후 건국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후 6시 30분경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향년 45세.

불과 1주일 전만 하더라도 더 서울 어워즈에서 수상소감을 전했던 김주혁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한국 연예계에 크나큰 충격에 빠뜨렸다. 김주혁의 유족과 평소 알고 지냈던 지인들뿐만 아니라, 그를 좋아해 주었던 수많은 이들이 슬픔에 잠겼다. 그중 일부는 이 소식이 아직도 거짓말이길 바라고 있다.

배우 故 김무생의 차남인 김주혁은 1992년 대학 시절 첫 연극을 통해 연기자로서 발을 들인 이후 1999년 SBS '카이스트'에서 대중에게 처음 알려졌다. 이후, '싱글즈', '홍반장', '청연', '프라하의 연인', '아내가 결혼했다', '비밀은 없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공조', 그리고 '아르곤' 등 굵직한 작품들을 남기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제 더는 볼 수 없는 그, 김주혁을 관련 키워드로 조금이나마 되새기고자 한다.

▲ ⓒ MBC '집념'(위), '구암 허준'(아래)

#허준: 아버지 故 김무생과 연결고리
김주혁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故 김무생의 아들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연기자의 삶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김무생은 자신이 아들인 배우로 활동하는 것을 강렬하게 반대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김주혁은 여러 작품을 통해 서서히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나갔고, 이를 본 김무생 또한 그를 한 명의 연기자로 인정했다.

아쉬운 건 두 부자가 함께 출연했던 작품이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한 것은 김무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인 2005년 한 CF가 유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게 하나 또 있었으니, 바로 '허준'이었다. 김무생은 1976년 MBC 드라마 '집념'에서 허준을 연기했고, 37년이 지난 2013년 MBC 드라마 '구암 허준'에서 김주혁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허준 역할을 맡았다. 일생일대 함께 작품에 출연한 적 없는 두 부자가 이렇게 연결되었다.

▲ ⓒ 김종도 대표 인스타그램

#나무엑터스 김종도 대표: 동고동락한 김주혁의 지원군
김주혁의 사고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온 나무엑터스 김종도 대표는 회사를 설립하기 이전인 매니저와 배우 관계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해왔다. 특히나, 김무생은 김주혁과 함께 찍는 CF 현장에서 김 대표를 따로 불러 "앞으로 주혁이를 친동생처럼 잘 보살펴달라"고 장래를 맡기기까지 했다. 그 이후, 김종도 대표는 김주혁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언제나 그의 옆을 지켜주었다.

2014년 KBS2 '1박 2일' 절친 특집에 김주혁은 김 대표를 초대하면서 "형이랑 같이 여행을 한번 가고 싶었는데 단둘이는 너무 재미없어서 못 가겠더라. 정말 친형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 대표는 "내가 주혁이의 페이스메이커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27일에 열렸던 더 서울어워즈에서 김주혁은 남우조연상 수상 후 소감으로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분은 나무엑터스 김종도 대표다. 친형보다 더 형 같은 사람이다"고 전하기도 했다.

▲ 영화 '청연' 스틸컷

#'싱글즈'와 '청연': 기억 속에 남을 두 배우, 김주혁과 장진영
20여 편 이상의 영화에서 주·조연을 오가며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김주혁, 김주혁의 대표적인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여러 영화 제목들이 입으로 오르내리겠지만, 그중에서 유난히 '싱글즈'와 '청연'이 가슴 한켠에 차지했다. 김주혁이라는 배우가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작품이기도 했지만, 지난 2009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故 장진영과 함께 출연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극 중 연인으로 등장했다. '싱글즈'에선 서른을 눈앞에 두고 일과 사랑 사이를 줄다리기하는 남녀역할로 분했다면, 일제강점기 민간항공사 박경원을 모티브 삼았던 '청연'을 통해 두 배우는 또 한 번 연인으로 등장하여 애절함을 더했다. 특히, '청연'은 장진영과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던 울랄라세션의 故 임윤택이 OST였던 '서쪽하늘'을 열창하며 장진영을 추모한 바 있어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네티즌들은 '청연'을 다시 보고, '서쪽하늘'을 다시 들으며 두 배우를 향한 애도를 표했다.

▲ ⓒ KBS2 '1박2일'

#1박 2일: 영원한 '구탱이 형'
배우 김주혁이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가 생긴 건, KBS2 간판 예능 '1박 2일'이었다. 2013년 12월부터 고정멤버로 합류해 2015년까지 출연했고, '토사구팽'을 '토사구탱'이라 잘못 말하면서 '구탱이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차태현, 김종민, 데프콘, 김준호 정준영과 함께 하는 동안 순박한 맏형이면서, 모든 공은 동생들에게 돌리는 선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1박2일' 멤버들이 과거 10년 후의 김주혁에게 쓴 편지들이 유독 가슴을 아려왔다.

김주혁의 '1박2일' 마지막 방송은 함께했던 멤버들은 물론이고 스태프들까지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물론, 그 후에도 종종 등장하며 의리를 과시하기도 했다. 새 멤버 윤시윤에게 "인수인계를 하겠다"며 재미와 용기를 주는가 하면,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 깜짝 등장하면서 '1박2일' 팀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 ⓒ tvN '아르곤'

#아르곤: 생전 마지막 작품, 언론인의 참모습 되새겨
지난 9월에 8부작으로 종영한 tvN 드라마 '아르곤'은 2015년 tvN '응답하라 1988' 이후 2년 만에 김주혁의 브라운관 복귀작이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 때문에 '아르곤'은 그가 살아있을 당시 출연한 마지막 드라마로 남게 되었다(※김주혁의 공식 유작은 '아르곤'이 아닌 영화 '흥부'와 '독전'이다).

김주혁이 연기한 탐사보도 프로그램 '아르곤' 팀장 '김백진'은 "사실을 통하지 않고서는 진실로 갈 수 없다"고 외치며 언제나 정의를 추구함과 동시에 자신의 동료 가족, 혹은 자신보다 아랫사람을 챙기는 따뜻함 또한 지녔다. 특히, 마지막회에서 자신의 잘못된 보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세는 수많은 언론인에게 귀감이 되었고, 언론인의 자세가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실제 김백진의 모티브가 되었던 JTBC 손석희 앵커 또한 '뉴스룸'을 통해 김주혁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잔향, 잔상, 여운. 우리는 때때로 은근한 것들에 오래도록 마음이 동한다. 대중이 김주혁의 비보에 이토록 슬퍼하는 것은, 그가 있던 자리에 아직도 그의 빛이, 향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 기억 속에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한결같이 그 자리에 서서 묵직한 울림을 주던 그에게 전하고 싶다. 덕분에 따뜻했다고. "행복했어요, 구탱이형!"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사진공동취재단

syrano@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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