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란문화재단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가을 정서에 어울리는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뮤지컬 '순수의 시대'는 우란문화재단의 시야스튜디오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1870년대 뉴욕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세 남녀의 사랑을 다룬다.

주인공 뉴랜드 아처 역에 최재림, 여주인공 엘렌 올렌스카, 메이 웰랜드 역에 구원영과 이지혜가 출연한다. 밍곳 부인 역에 정영주, 로렌스 레퍼츠 역에 양지원, 실러틴 잭슨 역에 심재현, 웰랜드 부인 역에 정인지, 아처 부인 역에 이효주가 출연한다. 목소리 출연으로 달라스 아처 역 고상호가 함께한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뉴욕의 답답한 사교계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뉴랜드는 아름답고 순수하며 명망 있는 가문의 딸인 메이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순수하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메이가 사실은 '남들만큼' 혹은 '남들처럼'을 이야기하며 답답한 새장 속에 갇힌 새였음을 느낄 때, 메이의 사촌 언니 엘렌의 자유로움이 뉴랜드의 마음에 서서히 스며든다.

이 작품은 극적인 서사도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커다란 사건 없이 금새 요약되는 내용에 그친다. 덕분에 관객이 서사적인 재미를 찾고자 한다면 보다 잠들어 버릴 수도 있다. 세 남녀의 삼각관계가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를 지탱하고 있지만, 특정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 시선이 특정한 인물을 향해있기 보다는 세 명을 포함한 등장인물에게 계속해서 돌아간다. 무대가 좁은 탓인지 장소나 시간의 변화가 친절하지 않아서,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의 점프를 관객이 유추해야하는 아쉬운 면도 있다.

하지만 무대예술이 가지는 장점이 맞물려 관객은 이들 중 한 명에게 선택적인 몰입을 할 수 있다. '순수의 시대'는 무심한듯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가진 저마다의 고뇌를 던져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엘렌을 사랑하고 자유를 지지하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뉴랜드,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비워내려 하는 밍곳 부인의 삶, 분명한 불합리 속에서도 자유를 갈망하는 엘렌, 누군가에게 갇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장의 문을 걸어잠근 메이는 어쩐지 2017년의 우리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이혼에 대한 강한 압력이 들어가는 것도 그렇다. 사회적으로 보자면 이제 더이상 이혼남, 이혼녀 타이틀이 큰 흠이 되지 않지만,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가 구분되는 특정한 커뮤니티에서라면 달라진다. 혹은 '조리돌림'으로 대변되는 온라인에서의 개인 역시 그렇다. 뉴랜드, 메이, 엘렌과 다투는 거대한 연적은 사실 서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문과 평판이다.

이 작품이 여타의 인간 내면, 혹은 사랑을 다룬 작품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원작자와 작가가 모두 여성란 점을 들 수 있다. 그것 때문이라고 말하면 조금은 '지나치게 간'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그 덕분에 '순수의 시대'에서는 뉴랜드 이상으로 세 명의 여성 인물이 빛난다.

엘렌은 그녀의 그림처럼 '대담하고 담대한' 인물이다. '난 제자리에 돌아온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는 단순히 남녀간에 가지는 이성적인 호감을 넘어서서 뉴랜드가 동경할 수밖에 없는 매력이 넘친다. 메이 역시 극 속에서는 전반부의 설정이 미흡해 마치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느낌이 있으나 평범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거대한 압력 앞에 보일 수 있는 연약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지키려고 하는 의연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혼녀가 되는 엘렌을 지지하는 밍곳 부인 역시 현명한 어른을 만나기 어려운 요즘, 남달라 보일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 지난 '더 뮤지컬 페스티벌 인 갤럭시'에서 이지혜.
▲ 뮤지컬 'Abyss;심연' 리딩 공연 때 구원영 배우.

최재림, 정영주 등은 익히 그 명성을 드러낸 배우지만, 대극장 위주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지혜와 엘렌을 맡은 구원영의 연기력이 특히 놀랍다. 이지혜는 '레베카'에서 댄버스 부인과의 매치를 통해 선보인 '타인의 행동에 반응하는' 리액션이 뉴욕 사교계 속에 갇힌 메이의 불안정한 시선과 만나며 극대화된 느낌을 준다. 구원영 역시 창작한다 쇼케이스의 뮤지컬 '어비스Abyss;심연'에서 보여줬던 인상 깊은 연기력을 이어가며 완성된 감정선을 드러낸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특정한 훅이 기억에 남는, 멜로디 위주의 느낌보다는 분위기에 맞는 가사와 음색이 강점이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와 클라리넷, 플룻이 동원되는데 가을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전해진다.

뮤지컬 '순수의 시대'는 트라이아웃 작품으로서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작품이다. 어떻게 발전돼서 올라올지 벌써부터 본공연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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