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우리 모두의 힐링극이었다.

지난 29일을 끝으로 대학로에서 열린 '로드씨어터 대학로2'가 공연을 마쳤다. '민트색 헤드폰'이란 닉네임을 얻은 이 작품은 관객이 1시간 동안 대학로를 걸어다니며 정해진 음악을 듣고, 다시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그동안 만났던 '단역인 줄 알았던' 이들이 무대 위에서 펼치는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관객이 주체가 되는 '이머시브' 공연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남의 말을 듣는' 과정이 주된 경험으로 작용하는 이번 공연은 관객에게 햇볕을 맞으며 길을 걸어다니는 시간을 통해 힐링 그 자체를 선사해준다.

 

처음 헤드폰을 받고 나면 사이트에 접속 후 다같이 하나 둘 셋을 외치며 음악을 재생한다. 그러면 이희준과 박진주의 나레이션이 흘러 나오는데 남자의 시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빨간머리와의 추억은 아르코예술극장의 빨간 벽돌과 합치되며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경험을 준다.

▲ 이렇게 가이드가 길을 안내해주고, 음악 듣는 타이밍도 일러준다.
 

이처럼 '로드씨어터 대학로2'는 땅에 발을 딛고 서있다는 것이, 혹은 아무 것도 아닌 차량의 소음, 누군가가 신발을 끄는 소리가, 아무 것도 아닌 공백으로 읽을 수도 있고, 그 공백 위에 놓여진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대학로의 길 그 자체를 통해 관객들에게 함께하자고 손짓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길을 걷다보면 서울대 병원의 경모궁지에 도달한다. 탁 트인 공터를 찾기가 힘든 요즘, '로드씨어터 대학로2'는 그렇게 우리에게 대학로 속 또다른 경험을 전달한다. 경모궁지를 지나 잠시 서울대 병원 건물을 빠져나오다 보면 장례식장 건물 옆에 있는 식당과 피트니스 센터를 만나게 된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이러한 조합도 '로드씨어터 대학로2' 속에서 마주치니 삶과 운동, 밥과 죽음이 서로 뒤엉키며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이후 대명거리를 걸으며 현란한 PPL 솜씨에 감탄하다 나레이터모델을 만나기도 하고, 건널목의 서프라이즈 쇼에 놀라기도 한다. 그렇게 낙산 공원 부근의 주택가를 걷기도 하는 등 대학로의 여러 길을 걸어가며 점점 더 공연과 하나가 되어간다. 박진주가 아닌 '빨간 머리'의 목소리에 매료됐을 무렵 걸음은 끝이 난다.

 
 

대학로예술극장으로 다시 내려가면, 앞서 만났던 이들이 등장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친다. 그들의 삶은 무엇 하나 개성이 없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대단하고 특출난 이야기들도 아니다. 그저 길을 걷다 마주치는 무수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의 이야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대학로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뿌려져 있었다.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 기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기술의 한계를 느끼게도 해주는 이 공연은 씨어터 RPG 1.7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에 이어 '공연장 제작공연 지역 확장 사업'을 통해 전국으로 넓혀질 예정이다. 대학로가 아닌 또다른 길에는 또다른 삶이 묻어있을 테다. 기회가 닿으면 이 유쾌한 경험을 꼭 한 번쯤은 함께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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