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티스트에디터 박정기(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pjg5134@mhns.co.kr

▶공연메모
경계없는예술센터의 현진건 작 이화원 각색 윤기훈 연출의 운수좋은 날
- 공연명 운수좋은 날
- 공연단체 경계 없는 예술센터
- 원작 현진건
- 각색 이화원
- 연출 윤기훈
- 공연기간 2017년 10월 26일~28일
- 공연장소 문래창작촌 스페이스 T
- 관람일시 10월 26일 오후 8시

[문화뉴스 아띠에터 박정기] 문래창작촌 스페이스 T에서 경계 없는 예술센터(대표 이화원)의 현진건 작, 이화원 각색, 윤기훈 연출의 <운수좋은 날>을 관람했다.

상명대학교 연극학과 이화원 교수와 윤기훈 교수가 공동대표인 경계업는예술센터는 거리극을 통해 공공예술을 추구하며 장르와 극장 및 국경의 경계를 넘는 새로운 양식의 예술활동을 연구하고 창작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이화원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원 불어불문과, 미국 미네소타 대학 인문대학원 출신의 문학박사다.

(전) 한국 연극학회 한국연극평론가 협회 부회장, 미네소타대학교 초빙교수, 한국기호학회이사, 세계야외공연축제 경기작품선정위원, 동아연극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출연작으로는 출연작으로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프랑스 아비뇽축제 OFF SAINT-_MARTIAL 극장 초청 공연 <피아노포르테 나의 삶>이 있다.

논문으로는 <연극의 공간성에 대한 분석적 연구> <거리극에 대한 공연학적 연구> <연극의 기호학적 분석을 위한 비교 연구> <프랑스 거리극 연구> <표상과 그 너머: 라신의 비극> <라신 비극 수용에 대한 시론적 연구>를 연구 발표했다.

저서로는 <라신 비극의 새로운 읽기> <우리 시대의 프랑스 연극> (공저) <오태석의 연극세계>(공저) 외 <몰리에로 희곡선집> <라신느의 희곡선집> (공역)

2000. 법무부장관 표창 (상명미래예술연구소) 2009. 서울시장 표창 (한강여의도 봄꽃축제와 함께하는 비아페스티벌)을 받는 미모의 연극인이다.

윤기훈은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와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 드라마스쿨을 거친 작가이자 연출가이다. 현재 상명대학교 연극학과 교수이며 경계없는 예술센터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작품으로는 <종이달> <피나노프로테 나의 사랑> <덴빈 탑 고시원> <가로등이 전하는 이야기>, <달세계로의 여행>, <벽 이야기> 등을 발표 공연했다.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은 대구에서 출생해 경성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16년 2학년 재학 중에 자퇴 후 도쿄로 가 세이소쿠 영어학교에 입학했다. 1917년 다시 귀국하였는데, 이때 대구에서 백기만· 이상화등과 습작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였다. 그해 4월에 현진건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5년제 세이조 중학교에 3학년으로 편입하였다.

1918년 상하이 호강대학교 독일어 전문부에 입학하여 1920년 졸업 후 귀국했다. 귀국 후 11호에 "희생화"를 게재하여 문단에 등단했지만, 현진건 본인이 "희생화"를 습작으로 간주하여 일반적으로 현진건의 처녀작은 "빈처"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빈처"가 염상섭의 극찬을 받으면서 현진건은 문학 동인 "백조"에 들어가게 되어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등의 사실주의적 소설들을 잇달아 발표하게 되었다.

현진건은 1921년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된다. 1924년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있다가 이후 1927년 동아일보로 옮겨 1936년까지 사회부 부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한 사건(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일제에 체포되어 1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후 동아일보를 퇴사했으나 1939년 학예부 부장으로 복직했다.

일제 말기 현진건의 삶은 비참한 모습 그 자체였다. 당시 일제를 위한 작품을 쓰지 않으면 취직이나 생계를 이어간다는 게 거의 불가능했던 시기였다. 그런 시대에서 현진건은 일제와의 타협을 거부한 채 가난에 쪄들어 살면서 문학인으로서의 지조를 지키면서 여생을 보냈다.

이는 친일 문학가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광복 후에도 그게 뭐가 잘못이냐며 뻔뻔한 모습을 보인 소설가들과 대조된다. 그밖에 먹고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친일 활동을 했던 이효석이나 채만식도 있긴 한데 그나마 이들은 이걸 후회하고 죄의식을 느꼈다.

음악가 홍난파도 흥사단가를 작곡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잡혀 복역했고, 결국 석방된 후 친일 활동을 하긴 했다. 이후 시골에서 양계업을 하며 한편으로 동아일보에 1939년부터 장편 소설 "흑치상지"를 연재했으나 일제의 강압으로 연재가 중단되어 끝내 미완성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그 뒤 어려운 나날을 보내다가 1943년 장결핵으로 별세했다.

<운수 좋은 날>의 줄거리다. 인력거꾼인 김 첨지는 오랜만의 인력거를 타는 손님이 많아, 평소보다 큰돈을 벌게 되자 앓아누워 있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사다 줄 수 있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아침에 나올 때 앓아누운 아내가 오늘은 제발 나가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었던 생각이 떠올라 김 첨지는 계속되는 행운에도 불안해한다. 선술집에서 친구 치삼이와 술을 마시면서 김 첨지는 아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쉽사리 집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이상한 언행을 한다.

취중이지만 아내가 먹고 싶어 했던 설렁탕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 김 첨지는 불길한 침묵에 맞서 아내에게 욕설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결국 아내의 죽음을 확인한 김 첨지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린다.

연극 <운수좋은 날>은 이화원 교수가 현진건의 <빈처>와 <술 권하는 사회>를 합해 각색을 했다.

무대는 입체로 된 사각의 조형물을 배치하고, 당시의 상황에 맞도록 의상설정을 했다. 사각의 조형물을 이동 배치해 거리를 달리는 인력거, 술집의 식탁과 의자, 인력거 꾼의 집 방 등으로 설정된다. 내용은 운수좋은날의 줄거리대로 전개되고 인력거꾼 외의 출연자는 1인 다 역을 하기도 한다.

전보현이 1인 다 역으로 탁월한 연기력으로 앞집 마님, 학생, 채선, 주모 역을 해 호연을 해 보인다. 신소영이 작가의 아내, 행인 역을 능숙한 호연으로 펼쳐간다. 김승우가 작가, 치삼, 교원, 사내 역으로 출연해 호연과 열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김영훈이 인력거꾼 김첨지로 출연해 독특한 성격설정과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기획 황민수, 기술감독 박말순, 미술감독 한미혜 등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경계 없는 예술센터(대표 이화원)의 현진건 작, 이화원 각색, 윤기훈 연출의 <운수좋은 날>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