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국내외 영화계가 성폭력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경력 20년차 중견 배우 조덕제가 여배우 성추행 혐의로 2심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받았다. 할리우드에서는 '반지의 제왕', '킹스 스피치', '킬빌' 등 유명 영화 제작자로 알려진 하비 웨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이 30년 동안의 성추문이 다수의 배우들에 의해 폭로되고 있다.

희소했던 성추문 사건이 최근에서야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관련 뉴스들이 쏟아지는 걸까? 다수의 영화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 전국영화산업노조는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에 대한 '피해추정'은 사라지고 가해자의 '무죄추정'의 원칙만 부각된다. 또한 피해자를 금전을 노린 범죄자로 보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한다"며 "피해자를 공개하는 게 정의인 양 얘기하는데, 정의란 피해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하고 들어주는 것이며 피해가 확인되면 재발을 막는 일이다. 누구인지 캐내는 데 그치는 것은 가십에 불과하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시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됐고, 논의의 장이 확대됐기에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게는 피해 사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최근에는 성추행 당한 여성 인물이 자신의 피해 사실 밝히기를 더 이상 미루지 않는 내용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시청자들은 '사이다 같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몇몇 드라마는 우리가 성추행 피해자들을 향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지난 16일 방영된 드라마 '마녀의 법정' 3회 ⓒ KBS2 '마녀의 법정' 캡쳐

1. 전복과 공감,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드라마…'마녀의 법정'

'마녀의 법정'의 주캐릭터는 출세 고속도로를 달리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마 검사와 피해자의 프라이버시를 우선시하는 따뜻한 여 검사이다. 극히 상반된 캐릭터와 법정 드라마. 굉장히 진부한 소재이다. 

그러나 작품은 고정된 성 역할의 전복을 과감하게 시도한다. 냉혈한 '마' 검사는 여성이었고, 인간미 넘치는 '여' 검사는 남성이었다. 또한 이들이 소속된 부서는 여성아동범죄전담부이기 때문에, 드라마가 에피소드로 주로 다루는 사건 또한 '여성아동범죄'이다. 

특히 3, 4회 에피소드(지난 16, 17일 방영)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마 검사(정려원)가 직접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가 됐다. 이 에피소드는 마 검사의 심리 변화를 통해 그간 유독 성범죄 피해자들이 타자화의 대상이 돼 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지난 10일 방영된 드라마 '마녀의 법정' 2회 ⓒ KBS2 '마녀의 법정' 캡쳐

뿐만 아니라, 기존의 성범죄와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도 돌아보게 만든다. 2회 에피소드(10일 방영)는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로 간주돼 왔던 성범죄 사건에서 성별은 피해와 가해 사실을 분리하는 절대적 기준일 수 없다는 점을 밝힌다. 성적 구분을 떠나 실질적인 권력 관계로 인해 피해자들이 사건을 쉬이 피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에피소드였다.

* '마녀의 법정' 방영 정보
- 편성 : KBS2
- 방영일시 : 월, 화요일 오후 10시
- 출연 : 정려원, 윤현민, 전광렬, 김여진 등

 

 

지난 16일 방영된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3회 ⓒ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 캡쳐

2. "제가 왜 사과를  이렇게 받아야 해요?"…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최근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로 등장한 주인공이, 주눅 든 모습 대신 가해자와 사건 방관자들에게 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던져 화제를 모았다. 

3회(지난 16일 방영)에서 윤지호(정소민)는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던 조연출과의 식사 자리에서 "지금 다들 뭐하시는 거예요? 왜 감독님이 왜 조감독님을 혼내요? 작가님이 뭘 참아요? 당한 건 저인데…"라며 사건의 본질을 짚어냈다. 

직장, 학교 등 공동체 내 구성원 간 성폭력 범죄가 일어나면 피해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주변 동료 혹은 선배로부터 '사과'의 압박을 받아왔던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날 지호가 합석한 자리는 선배 감독과 작가에 의해 불미스러운 사건을 '좋게 좋게'(누구를 위한 '좋게 좋게'일까) 풀어내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여기서 지호는 선배 감독과 작가에게 명백히 '성폭행 미수'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언급한다. 

그러나  지호의 당당한 발언에 선배 감독은 되려 화를 낸다. 또한 선배 작가는 우리도 '(우리 모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달래려 한다. 여기서 지호는 이렇게 답한다. 이 대사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상처 회복을 위한다며 행해왔던 노력이 사실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일으키는 것이었을 수도 있음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다음은 지호의 대사이다.

"노력이요, 작가님? 이게 지금 노력하시는 거예요? 길 가다 던진 돌에 맞아 제가 피를 흘리는데, 업고 병원에 뛰어가는 것 그게 노력 아니에요? 너 피 안 난다고, 멀쩡하다고, 그러니까 가던 길 그냥 계속 가라고 이렇게 억지로 질질 끌고 오는 게 노력이에요? 정작 당사자는 피 흘리면서 아파 죽겠는데?"

* '이번 생은 처음이라' 방영 정보
- 편성 : tvN
- 방영일시 : 월, 화요일 오후 9시 30분
- 출연 : 이민기, 정소민, 이솜, 김가은 등

keyy@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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