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레히트의 연극 '남자는 남자다' 차태호 연출이 무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연극은 재밌어야 한다. 무겁고 진지하면 재미가 없다."

무언가 심각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차태호 연출이 소개하는 극단 지구연극의 작품 '남자는 남자다'는 재밌었다. 서사극의 창시자이자 20세기 가장 중요한 극작가 중 한 명인 독일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남자는 남자다'가 16일부터 11월 7일까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이 작품은 시민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제기한 브레히트의 극작 연보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1925년 인도 킬코아 병영에서의 부두 하역부 갈리가이의 변신'이라는 작가의 부제는 이 연극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제시한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서 시민사회의 형성 속에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탄생을 부두 하역부 갈리가이의 변화를 통해 드러낸다.

인도 주둔 영국군 병사들은 '황인사'에 몰래 들어가 불전함을 도둑질하려다가 도망친다. 자신들의 잘못을 막기 위해 대리 병사역을 찾던 중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부두 하역부 '갈러가이'를 만나 꼬드긴다. 온갖 감언이설에도 꿈쩍 않던 그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장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꼬임에 넘어가 군대의 위험한 인간병기로 변모하게 된다.

   
▲ '갈리가이'(왼쪽, 양한슬)와 '아내'(오른쪽, 신지훈)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작품의 연출을 맡은 차태호는 시대를 관통한 브레히트의 메시지를 통해 오늘날 도시 한복판에서 자행되고 있는 맹목과 폭력, 과욕과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이 세상에서 제정신을 차리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보여주고자 한다. 이 작품은 1920년대 인도를 점령한 영국군 이야기지만 시대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첫 공연을 앞두고 설렌다고 말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브레히트의 '남자는 남자다'를 올리게 된 계기가 있다면?
ㄴ 올해는 극단 지구연극이 창단된 지 15년 되는 해다. 15년 동안 많은 작품을 했는데 꺾어지는 의미에서 기념비적인 연극을 해보자는 취지가 있었다. 우리 극단에선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한국 창작 연극을 여러 편 했다. 그중 연극사에 기념비적인 브레히트의 작품을 하고 싶었다. 브레히트가 많이 알려졌지만, 공연이 잘 안 되어서 1938년 버전으로 한국 초연으로 진행되게 됐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에서 열린 공연은 1926년 발표한 초판본을 사용했다. 이번 공연은 1938년 판본인데 어떤 차이가 있나?
ㄴ 1926년도 판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갈리가이'의 개조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봤다. 그러나 1938년 판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들어와 나치즘이 극악으로 떨쳤을 때 상황이었다. 브레히트의 인간을 바라보는 기본적 시각이 달라졌다. 작품이 많이 축소되고 개작됐다. 결말도 달라졌다. 이번 공연은 두 버전과는 약간 달라졌다. '남자는 남자다'엔 주제곡이 원래 없었다. 그래서 결말 부분에 직접 가사를 써서 주제를 관통하는 노래를 만들었다.

   
▲ 배우 홍정재가 인터미션을 알리고 있다.

'레오카다 벡빅'(홍정재)이 인터미션을 앞두고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해설을 하는데, 흔히 보는 방식은 아니다.
ㄴ 브레히트의 극작술에 이화효과(異化效果, Alienation Effect, 소외효과라고도 부름)가 있다. 반대 개념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극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연극은 작품을 보면서 정극에 빠져들어 가게 만든다. 그러면서 '카타르시스'(Catharsis, 비극을 보며 마음에 쌓인 우울함, 긴장감 등을 해소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일)를 느끼게 한다. 연극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사실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면 브레히트는 반대다. 연극은 연극이며 감정적으로 빠져들지 말고, 관객들에게 과연 옳은 사건인지 생각한다. 즉, 관객의 이성에 호소하는 연극 형태다. 해설뿐 아니라 무대에 있는 상징, 군인들의 목에 걸려있는 인식표 등이 작품에 들어가면서 관객이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무대 디자인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특히 가운데 목 없는 불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ㄴ 임민 무대미술가와 이한와 무대감독과 협의를 했다. 기본적으로 상징과 미술적인 요소가 크다. 또한, 배우의 연기적 요소가 종합된 창작 공간이다. 원작엔 전혀 없다. 무대의 가운데에 있는 목이 없는 부처님 불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것에 착안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목이나 팔이 잘린 불상들이 많았는데 지배자들의 야만적인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관통하는 부처님은 사람들이 마치 손오공이 날아다니고 온갖 기술을 다 보내지만, 결국 다 부처님 손바닥 안에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런 것이 아니냐는 개인적인 종교관과 철학이 담겼고 그것을 표현했다.

뮤지컬 연출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이번 작품에도 뮤지컬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다.
ㄴ 뮤지컬도 큰 범위에선 연극이다. 연극이 꼭 언어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노래와 춤 모두 다 들어간다. 브레히트의 서사극도 그런 것을 좋아했다.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면 관객들이 재밌어하고, 작품에 대한 주제를 좀 더 부각할 수 있는 연극의 기술이었다.

   
▲ '남자는 남자다' 프레스콜 전막시연 후 출연진들이 커튼콜을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군인들이 '선착순 얼차려'를 하고, 라운드 걸이 무대에 등장하는 등 원작엔 없는 재미난 요소가 있다.
ㄴ 그런 점들이 이화효과를 강화하기 위한 연출이다. 연극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무겁고 진지하면 재미가 없다. 연극의 오락적 요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배우들의 연습 과정도 길었을 것 같다) 두 달 정도 연습했다. 다들 연극을 전공한 전문 연기자들이라 그런지 발성이 다들 다르다. (웃음)

차태호 연출이 생각하는 '남자는 남자다'의 의미는?
ㄴ "사람은 다 똑같다"는 뜻인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한 이유는 첫 번째로 공연 제목이 멋있었다. 두 번째로 대본의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브레히트라는 천재적 작가의 작품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또한, 좋은 앙상블과 하모니를 추구해보고 싶었다.

첫 공연을 앞둔 소감은?
ㄴ 매우 설렌다. 많은 관객이 오길 바라고, 공연이 잘 되길 바라고, 배우들이 안전하길 바란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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