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벤허' 메셀라 역 박민성 인터뷰②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문화 人] 박민성 "벤허를 죽이고 싶었을 때는…" (인터뷰)에서 이어집니다. <-보러가기

이름을 바꿨다. 이제 '82년생 박성환입니다'라고 소개하지 않게 됐다.

ㄴ 바꿨다기보다는 원래 제 이름이에요. 처음 호적에 오른 이름이었는데 약간 여성스러운 이름이라 어릴 적에 싫어했었어요. 데뷔 10년 차인데 약간의 터닝포인트를 만들고 싶어서 고민하던 차에 예명을 써볼까 하다가 원래 민성의 성이 별 성을 쓰는데 이 한자가 운동선수, 군인, 연예인 등에 좋은 이름이란 말을 들었거든요. 성환이란 이름도 좋지만, 여러 상의 끝에 다시 바꾸게 됐어요. 제 동생이 띠동갑인데 태어나면서 저도 성환으로 개명했었거든요.

 

'10년차' 배우라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뮤지컬 밑바닥에서' 막공 때도 '10년 동안 배우 생활 했는데 나를 많이 돌아보게 한 작품이다'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였는지.

ㄴ 정말 쉬운 게 없구나. 공연이란 게 단순히 연기하고 노래하는 게 아니라 '배우'로서 연기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기구한 삶도 있구나 싶었죠. 저는 운이 좋아서 무대에 계속 설 수 있지만 생계형 배우로서 현실의 벽에 막혀 포기하거나 몸이 아파서 열정과 재능이 있는데도 그만둬야 했던 사람. '배우' 역도 어떤 사정인지 몰라도 알코올 중독자로서 서고 싶던 무대 대신 탁자 위에 올라 노래했어야 했던 그런 상황에 가슴 아프고 돌아보게 만들더라고요. 저도 예전에 세 번 정도 정말 못하겠다 싶어서 그만두려 했던 적이 있거든요. 먹고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날 알아주지 않고, 써주지도 않으니까요. 예전에는 10년 버티면 된다고 했지만 요즘에는 아니에요. 전 아직도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해요. 옛날 10년과 지금 10년은 다른 것 같아요. 20년은 버텨야 그래도 저런 배우가 있구나 하지 않을까요. 세상이 빠르게 변하니까요. 사람들의 입맛도 빠르게 변하니 그걸 못 따라가면 잊혀지는 거에요. 직장인도 조금만 도태되면 위에서 누르고 밑에서 올라오니 어느 분야에서든 금수저가 아닌 이상 비슷해 보여요.

'뮤지컬 밑바닥에서' 이야기를 더 하면, 커버 없이 대부분의 배역이 원 캐스팅으로 이뤄졌다는 게 너무 신선했다. 누가 아프거나 사정이 생길 법도 한데.

ㄴ 아파도 올라가야 하는 거죠. 주변에 외국에서 작업하는 지인들이 좀 있어요. 대극장에선 커버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린 소극장이고 대극장에서도 외국 기준으론 우리의 더블, 트리플 캐스트를 신기해 해요. 그만큼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런 시스템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다들 프로페셔널하고요.

박민성 배우 본인은 건강 문제가 없었는지.

ㄴ 저도 중간에 한 번 급성 간염이 왔었어요. 간 수치가 보통 3, 40이 정상인데 2, 3000이 넘게 나왔어요. 며칠 동안 소화를 못하고 토하고 그랬어요. 큰 병원 가서 피검사를 했는데 한 시간 만에 주치의에게 전화가 와서 입원해야 한다는 거에요. 네다섯 시 쯤이었는데 공연 가야 한다니까 어이없다며 웃으시더라고요.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닌데 괜찮냐면서요. 그때 정말 힘들었는데 바이러스성이 아니라 단순히 순간적으로 수치만 올라간 거였어요. '배우'가 맞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러다 한 번 잘못 맞아서 귀가 멍하고 머리 아픈 적이 있어서 진통제, 두통약을 계속 먹었는데 그러면서 수치가 올라갔던 것 같아요. 3일 동안 아무 것도 못 먹고 위장약만 먹었어요. 그러다 병원 갔더니 그러는 거에요. 하지만, 관객들과 약속을 했잖아요. 웃으면서 극장으로 갔어요. 병원에서 처방전을 팩스로 보내주면서 혹시라도 응급실 가야 할 것 같으면 무조건 가야 한다. 엄청 심각한 상황인데 환자 분이 모르시는 것 같다면서(웃음). 피 검사도 사실 안 하려고 위장약만 받으려다 의사가 저 보고 황달이 있냐고 해서 '초롱초롱한 눈은 아니지만, 황달은 없다'고 했더니 혹시 모르니 검사 받으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에요. 그것도 두 번 거절했는데 끝까지 받아야 한다고 해서 받았었죠. 저 말고도 다들 조금씩은 아팠을 거에요. 그래도 무사히 마쳤고, 스스로 돌아보면 대단한 것 같아요.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이야기대로 위험한 순간도 있지만, 소극장 공연인 만큼 리얼리티가 살아있었다. 맞는 장면도 너무 실제 같아서 관객들이 놀라거나 걱정하기도 했는데.

ㄴ 팬분들께서 특히 걱정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그렇게 했기 때문에 더 처절해 보이고 감정표현도 잘 됐던 것 같아요. 그런 걱정과 관심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도 못했을 거에요. 정말 끝나고 나왔을 때 많은 박수, 눈물 덕분에 해냈던 것 같아요.

또 보고 싶은 작품인데 혹시 또 할 생각은 없는지.

ㄴ 또 하겠죠. 언젠가는, 누군가는 할 거에요(웃음). 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정말 좋은 작품이에요.

좀 더 예전으로 돌아가면 '잭더리퍼' 이야기가 있다. 마지막 '잭더리퍼' 당시 일본 '미스사이공' 공연 전에 8회차라도 소화하고 싶다고 해서 '앤더슨' 역을 맡았는데.

ㄴ 회차를 정한 게 아니라 한 번이라도 하고 싶었어요. '잭더리퍼', '앤더슨'은 제게 너무 의미 있는 작품이고 역할이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을 만큼 애정하는 작품이에요.

실제로도 '쓰루 더 도어'의 왕자님도 매력적이지만, '잭더리퍼' 공연 당시 퇴폐미가 묻어나오는 최고의 '앤더슨'으로 호평 받았다.

ㄴ 사실 제 지인들은 '그냥 너다'라고 했어요. 개인적으론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연기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그러기에 '앤더슨'이 편했고 두 번째 하는 역이기도 했고요. 다행히 8번이라도 해서 다행이었고 너무 큰 사랑을 받았어요. 앞으로 배우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받은 사랑 중 가장 컸던 게 그때의 '앤더슨'이었던 것 같아요. 8번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아쉽기도 하고, 기회였기도 하고요. 왕용범 연출님께서 그전에도 좋게 봐주셨지만, 그때의 8번 공연 때문에 제 절실함이나, 배우로서의 모습을 다시 봐주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이후로도 기회를 주셔서 '배우'나 '메셀라'까지 이어올 수 있던 것 같고요.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인데 공연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아쉽다.

ㄴ 워낙 좋은 컨텐츠라서 어떻게든 살리지 않을까요? 제가 로또 맞으면 '잭더리퍼'는 꼭 사고 싶어요(웃음). 언젠가 다시 올라오면 꼭 시켜달라고 하고 싶어요(웃음).

 

앞서 살짝 이야기했지만, 배우에게 경제적인 곤란은 동전의 양면 같은 이야기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한 적도 있는지.

ㄴ 저는 아예 다른 아르바이트까진 한 적이 없어요. 그럼 정말 배우를 관둬야 할 것 같아서요. 레슨은 해봤죠. 그런데 레슨을 하고 있으면 학생들의 열정과 마음가짐처럼 나도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력을 떠나서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너무 나약해진 것 같아서 다시 채찍질하게 되더라고요. (참 마약 같은 직업이다(웃음)) 참 아이러니하죠. 나를 힘들게 하면서 동시에 숨쉬게 하는 직업이죠.

화제를 돌려서 일본 '미스사이공' 공연 때의 이야기를 해달라. 어떻게 지냈는지?

ㄴ 6개월 정도 있으면서 어깨 너머로 배운 말 덕분에 일본 관객이 오시면 짧게나마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죠. 인사하고, 싸인하고, 사진 찍고 그런 게 가능하죠. 공연 환경도 좋더라고요. 제가 모든 일본 시스템을 경험한 건 아니지만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큰 규모였는데요. 좋게 말하면 프로페셔널하게 자기 파트를 철저하게 맡는 거였고, 나쁘게 말하면 그 외의 것엔 신경 쓰지 않아요. 예를 들면 저희는 급하면 퀵체인지 하는 의상팀에게 물통 좀 상수에서 하수로, 하수에서 상수로 옮겨달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일본에선 그게 안 돼요. '동선에 맞게 물통을 두 개 두면 되잖아' 이런 방식이에요. 한 번은 소품에 문제가 생겨서 소품 팀을 찾았는데 소도구 팀이라며 대도구 팀에게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테이프 한 번만 붙이면 되는데(웃음). 대신 자기 팀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집요하리만큼 끝까지 쫓아가서 챙겨줘요. 각 파트에 대한 존중도 확실하고요. 배우, 스태프, 이런 개념이 확실하게 나뉘어져 있어서 처음엔 좀 생소했어요. 같이 '으쌰으쌰' 하는 느낌은 아니에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차이죠.

그럼 일본에도 가봤으니 또 새로운 곳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는지.

ㄴ '미스사이공' 때 연출이 영국 사람이었어요. 연습실 근처 역에서 우연히 만나서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짧게 했었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제게 '영국에서 작업하고 싶은지' 묻더라고요. 이 이야기는 뭘까? 했는데 '너무 좋지만, 당신이 한국으로 와서 같이 하면 좋겠다'고 했죠. 막 웃더라고요. 그렇게 지나갔지만, 기회가 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죠. 다른 문화, 환경에서 해보면 공부가 된다는 걸 일본에서 느꼈어요. 또 저 보러 한국에 와주는 일본인 친구도 생겼고요. 잘 아시겠지만, 일본 사람들이 섣불리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요. 선의를 베풀지도 않고요. 그만큼 조심스럽고 준비를 하는 성격인데 제 스타일대로 다 맞춰줘서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아요.

 

습관, 취미, 음식 등 최근 꽂힌 게 있다면?

ㄴ 거울 보는 거(웃음)? 몸 상태 체크를 해야 하니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운동을 하루라도 안 하고 잠들면 불안한 것 있잖아요. 중요한 일과를 빼먹은 느낌. 팔굽혀펴기라도 몇 개 하지 않으면하루를 나태하게 보낸 것 같고요. 아니면 중랑천 가서 조깅이라도 해야 되는데(웃음) 긍정적인 것 같아요. 겨울이 와도 땀을 흘려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건강, 정신건강 모두에 좋아요. 식도락도 좋지만, 현재는 건강에 치중하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벤허'를 보러 올 관객이나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ㄴ 제 배우 인생 10년 동안 어느 작품보다 더 열심히 땀 흘리며 준비한 것 같아요. 비중을 떠나서 창작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세상에 내놓는 고된 작업을 함께했다는 게 자랑스럽고 부끄럽지 않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어요. 몇 번을 보셔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이니까 믿어 의심치 마시고 꼭 오시면 좋겠어요. 단순히 '사랑해주세요. 응원해주세요'가 아니라 보면서 울고 싶으면 우시고, 웃고 싶으면 웃으시고, 박수 치고 싶으시면 혼자라도 치시면 좋겠어요. 전 객석에서 '벤허'를 보면 1막 끝날 때 기립하고 싶어져요. 또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요. 배우 입장에선 적극적으로 표현해주시는 게 훨씬 힘이 나고, 피드백도 돼요. 제가 실수하거나 못했으면 마땅히 지적 받아야죠. 돈 내고 보러 오시는 분들이 그런 것까지 다 이해해주셔야 할까요. 밥 먹으러 갔는데 머리카락 나온다고 '죄송해요. 실수했어요' 이러고 넘어갈 수 있겠어요? 10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 온 관객에게 '오늘 컨디션이 좀 별로라서 이해해주세요' 이게 통용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적 받고 손가락질 당하는 게 마땅하다면 그래야 하고, 반대로 정말 열심히 하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만큼 잘 해냈는데 그걸 몰라주신다면 배우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아쉽죠. 쇼케이스 때 이야기처럼 '개고생'하며 비판도, 칭찬도 받을 준비가 돼있으니까 주저 말고 보러 오시면 좋겠어요. 후회 안 하실 거에요.

배우 박민성이 출연하는 뮤지컬 '벤허'는 오는 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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