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추석 극장가의 승자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이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왕조의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남한산성'은 추석 황금연휴 마지막 날이자 한글날인 9일,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김훈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며, 충무로 대표 연기파 배우인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조우진 등이 출연한 것도 그 이유겠지만, 우리나라 역사의 비극 중 하나인 '삼전도의 굴욕'을 표현한 상업영화라는 점도 의미심장했다. 정치권에서도 현재의 외교·안보적 상황을 영화에 대입하며 감상평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영화 '남한산성'에서 실리를 챙겨 청에게 화친을 청하자는 주화파 '최명길'(이병헌)과 사대의 명분으로 오랑캐인 청과 항전해야 한다는 주전파 '김상헌'(김윤석)의 대립에서 최종 외교 결정을 내려야 했던 '인조'를 연기한 박해일 배우는 어떤 말을 남겼을까? 추석 황금연휴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박해일 배우를 만났다. 박해일 배우에게 처음으로 왕을 연기한 소감부터, 이병헌, 김윤석 배우와의 호흡, 추운 날씨에서 나온 촬영 에피소드, 영화 '남한산성'의 매력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필모그래피에서 첫 왕을 연기했다.
ㄴ 필모그래피에서는 낯설었고, 새로운 캐릭터 지점이 있어서 대하는 것은 남달랐다. 그리고 '인조'라는 캐릭터 자체가 기존에 가진 왕의 이미지와 기댈 부분이 적어서, 감독님과 인물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최명길'과 '김상헌' 사이에서 '인조'의 표정 연기가 인상 깊었다. 특히 '동공지진'이 일어나는 눈빛 연기를 펼쳤는데, 중점에 둔 것은 무엇이었나?
ㄴ 오히려 그 부분이 조금 걱정됐다. 첫 촬영 때 감정을 보여줘야 하는데, 영화의 시작은 인물의 서사를 찬찬히 보여주는 게 아니라 피신을 하자마자 그 기간을 쫙 집중해서 들어가는 위기로 출발한다. 그 감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했다. 대부분 두 신하 앞에서 촬영했다. 이병헌, 김윤석 선배님들에게서 나오는 기운과 감정의 톤을 반대편 모니터가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계속 느꼈다. 받아서 흡수하던, 혼란이 오던, 동공지진이 오던, 주는 만큼 받아야 하는 상황을 유지하려 했다. 그런 촬영으로 쭉 끝까지 간 것은 새로운 필모그래피였다.

두 선배 배우 앞에서 대사나 호흡이 길다. 어느 부분에 치고 들어가야 할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ㄴ 순간순간 실수하는 장면이 초반에 있었는데, 선배님들이 RPM을 올리는 것과 비슷했다. 영화를 하면서 만난 적이 없어서 처음엔 낯선 부분이 있다. 그것을 장점화화려고 노력했다. 빨리 걷어내고, 집중하려 했다. 이 영화의 특징이자 매력이 대사가 원작에 충실하다. 그 말의 매력이 크다. 감정이 쫙 나올 때의 부분이 잠깐이라도 어색하면 끊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욕심이 있었다. 그럴 때 서로 기다려주는 것이 좋았다. 프로 분들이라 그런 점이 있었다.

 

이병헌이 '왕 캐스팅'으로 박해일이 됐다고 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 이병헌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촬영장에서 제일 힘들었던 게 박해일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두 사람의 설전에서 중간중간 끼어들며 대사를 해야 하는데, 혹여나 틀리면 후배로서 크게 미안한 상황이 되니까 유독 예민했었다. 나중에 틀릴까 봐 옆에서 대사하는 게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 마음이 전해졌다"라고 밝혔다)
ㄴ 듣는 톤이 '광해'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톤으로 들린다. (웃음) 뒤늦게 탑승한 건데, 박희순 선배까지 대충 캐스팅이 마무리되어서 감독님과 밥을 같이 먹었다. 이병헌 선배가 "너무 다행이다"라는 말씀을 하셔서 무슨 이야기인 줄 몰랐다. 들어보니 '인조' 역할이 선배 본인과 많이 만나야 하고, 주거니 받거니를 해야 하니 "한번 만나고 싶었다"라고 말씀하셨다. 한 마디를 탁 던지시는데, 반갑기는 한데 고생이 많다는 게 느껴졌다. 김윤석 선배도 마찬가지로 말씀하셨다.

'남한산성'은 박해일이 출연했기 때문에, 2011년 출연한 '최종병기 활'의 프리퀄 같은 느낌이 난다. 백성에서 왕을 연기한다는 차이가 있는데, 실제 연기하면서 받은 느낌은?
ㄴ 시대적 공기는 같았다. 견해차가 있는 역할이다. 어떻게 보면 당시엔 참혹하게 피해를 감수하는 백성의 입장이었다. '최종병기 활'이 액션이라는 장르에 기대는 영화였다면, '남한산성'에서는 병자호란 자체를 일으킨 장본인 캐릭터이다 보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원작 소설은 '최종병기 활' 때 시대의 공기를 느껴보려고 사서 읽어봤었다. 이제는 그 원작 자체에 참여해서 작품을 만들어가는데, 일조하려다 보니 사뭇 대하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정극이고, 장르 중에서도 정통사극인데 그 부분이 처음엔 부담이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들이 어떤 장르든 다 어려울 텐데, 정극은 배우와 배우 사이의 감정이 좀 더 과장되더라도 어색한 게 있을 거라 봤다. 감독님도 절제된 톤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만들어가는 게 실수만 해도 민낯이 보이는 연기적 톤이 있다고 해서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한 신하들과 함께 나오는 행궁 장면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김윤석, 이병헌 선배 뒤로 베테랑이신 연극 선배분들도 쫙 있었다. 연극무대에서 공연하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남한산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차가운 정서를 유지하지만, 그래도 대사 중 몇 군데에서 웃음이 나오긴 한다.
ㄴ 시나리오에 그 정도 나온다. 성안에 갇혀있는 상황의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 것뿐이다. '웃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 웃음의 의미가 궁금했다. 텍스트 안에는 각 인물을 설명하고, 들어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둘 사이 관계, 감정을 말로써 동시다발적으로 주고받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싶어서, 보시는 관객의 웃음 밀도, 농도가 차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게 있을 것이다. 송영창 선배 캐릭터인 영의정 '김류'를 보면, 본인도 살아야 하는 인물 중 하나의 본보기가 된다. 선배가 너무 잘해주셨다.

촬영 현장에서도 송영창이 완벽한 분위기메이커 역할이라고 들었다. 사실인가?
ㄴ 선배님이 매번 주도하셨다. 해가 늦게 뜨는데, 새벽같이 분장 버스에 나와서 다들 일렬로 앉아 수염을 해가 뜨기 전까지 붙였다. 밥을 먹고 2시간 정도 걸리는데, 저보다 늦게 나오는 스태프분들이 있을 정도였다. 아무튼, 남자끼리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그날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분은 송영창 선배였다. 선배가 김윤석, 이병헌 선배님만큼이나 대사량이 방대하다.

후배로 본 느낌은 참 신기했다. 연습하는 모습은 분명 내 시선에서 안 보여주시고, 스포츠, 정치, 경제 등 다른 이야기를 하시는데 촬영 30분 전부터 각자 사라지셨다. 화장실 가나 했는데, 촬영만 딱 돌면 싹 바뀌셨다. 그런 촬영의 연속이었다. 선배가 미리 혼자서 각자 준비하는 그런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 [문화 人] '남한산성' 박해일 "'인조'에 대한 평가, 관객에게 남긴다" ② 에서 계속됩니다.

mir@mhnew.com 사진ⓒ문화뉴스 MHN 이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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