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J 엔터테인먼트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이병헌을 향한 대중과 영화관계자들의 평은 하나같이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소화해내며, 극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배우"라고 극찬해왔다. 그만큼, 이병헌은 로맨스, 액션, 스릴러, 심지어 사극까지 어디에 끼워넣어도 어색함이 없는 '올라운드 플레이어'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병자호란 당시 47일 기록을 담은 '남한산성'에 출연하게 되었다.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보필하며 청과 화친론을 주장했던 최명길을 연기했던 이병헌은 이번에도 "과연 이병헌"이라는 감탄사가 나오게끔 했다. 김윤석이 연기했던 김상헌이 한없이 뜨거웠다면, 이병헌의 최명길은 차가움과 따뜻함 가운데를 달리며 이끌고 나갔다. 이번에도 빛났던 이병헌을 지난 9월 말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들려주는 '남한산성', 그리고 최명길이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보고자 한다.

'남한산성'을 잘 봤다. 영화를 본 소감은 어땠나?
└ 나는 이 영화를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실제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를 모르더라도 많은 공부가 될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왕('광해')에 이어 20여년이 지나 신하('남한산성')로 환생하게 되었는데, '남한산성'을 택한 이유는?
└ 광해군을 내쫓고 인조반정을 일으킨 장본인 중 하나가 최명길인데, 그렇게 보면 아이러니할 수도 있다. (웃음) 크게 본다면, 광해군과 최명길의 사상이 달랐던 것도 아니다. 백성을 위한다는 마음을 기본으로 두고 있다는 건, 두 사람의 공통적인 신념이다. 광해군 못지않게 최명길 또한 칸 앞에 엎드리면서 "백성들은 잘못이 없다"고 울부짖으면서 말했다.

▲ ⓒ CJ 엔터테인먼트

'광해'와 '남한산성'을 촬영하면서 느꼈던 건, 신하를 연기하셨던 분들이 힘들었을 것 같더라. 특히, 왕의 눈을 쳐다보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방과 소통하는 게 묘한 경험이었다. 상헌은 옆에 나란히 앉아있어도 쳐다보지도 못했다. '협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지만 왕 앞에서 쳐다보지 못하고 무릎 꿇고 숙였던 건 '남한산성'이 처음이었다.

'남한산성' 대본을 보고 특별히 끌렸던 점이 무엇이었나?
└ 두 가지 상반된 논리와 소신이 있는 두 명의 충신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 쪽이든 치우치는 게 보통인데, '남한산성'은 감히 어느 편에 서서 그의 손을 들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당황스럽거나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 있어 '남한산성'의 매력이자 가장 큰 힘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누구의 편을 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왕의 입장에선 특정 누군가의 손을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최명길과 김상헌 둘 다 옳은 이야기를 한다. 둘 다 맞는 이야기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지만, 서로 말하는 이야기가 달라 감히 선택을 못 하는 그 상황이 굉장히 슬펐다.

추석 연휴 때 나온 영화들이 우울한 역사를 바탕으로 나온 건 처음인데?
└ 그동안 승리의 역사를 그리거나, 관객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줬던 영화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런 선택을 한 제작사와 감독님이 용감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다른 영화와 다른 '남한산성'만이 가진 차별화된 점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용감하게 흥행영화의 공식을 따라가지 않고 우리만의 호흡으로 만들어갔던 게 좋았다. 분명한 것은 굉장히 좋은 영화가 나왔다는 게 나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추석 연휴 때 웃고 즐기고 통쾌하게 때려 부수는 영화들을 너무나 많이 보다 보면, 관객들이 이런 영화도 저절로 보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

▲ ⓒ CJ 엔터테인먼트

초중반 최명길의 감정이 차가우면서 절제한 듯한 느낌이 강했는데, 일부러 그렇게 잡은 건지?
└ 특별하게 설정을 잡을 필요가 없었던 게 대본 자체가 완벽했다. 완성도가 높았던 대본이었기에 내가 과연 할 게 무엇인가 싶을 정도로 그대로 따라갔기에 애드리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김상헌은 감정의 폭이 워낙 다양해서 표현하는 데에도 다양함이 있었던 반면에, 최명길은 한결같이 차분하고 부드러운 자기 톤과 감성이 있는 사람이다. 다만, 상헌과 제대로 설전으로 부딪칠 때나 삼전도에서 왕이 절할 때 느꼈던 그의 감정은 흔들리기보단 넘어섰다.

그리고 왕에게 처음 허리를 들어 자기 이야기를 소리 질러가면서 할 때만큼은, 그동안 돌려서 은유적으로 표현했던 것과 달리 직설적으로 아주 쉽게 터뜨리면 어떻겠냐 싶어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고, 해당 장면을 촬영하기 열흘 전쯤에 대사를 수정해주셨다.

▲ ⓒ CJ 엔터테인먼트

왜냐하면, 거기서마저 너무 빙 돌려서 이야기하는 건 연기하는 나로서 답답하게 느꼈다. 한 번쯤 왕에게 칼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주장해보자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랑캐 발밑을 한 번 지나서라도 그렇게 해야 백성이 사니까 왕의 도리라는 걸 직접 말하고 싶었다.

김윤석이 인터뷰에서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조정에서 주고 받는 설전 장면을 따로 리허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왜 그랬는가?
└ 테이크가 엄청 길거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장면은 리허설을 조심스럽게 하거나 안 한다. 리허설 도중 에너지를 다 소모해 실제 촬영 시 체력이 달리거나 감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리허설이 없었다.

그래서 매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연기가 달랐다. 김윤석 씨는 어떤 테이크에선 큰소리로 지르다가 어떤 때에는 조용하게 말했다. 오로지 감정 하나만 가지고 뜨겁게 토해내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옆에서 보면서 놀랐다.

▲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그렇다면 본인의 연기 스타일은?
└ 대사를 어느 정도 인지한 상태에서 중간에 막히더라도 한 번 해보자 하는 스타일인데, 김윤석 씨와는 뭔가 달랐던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설전 장면이 막연히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읽었을 때도 이 장면이 정점을 치닫는 부분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연기하면서 두 배우의 색깔이 다르니까 관객들 또한 이 재미를 느낄 것 같다.

그래서 언론시사회에서 '탁구 같다'고 비유한 것도 그런 것이었나?
└ 맞다. 예를 들면, 어떤 장면에서 놀라게 하면 거기에 맞춰 즉각적으로 놀라듯, 그 촬영하는 순간의 호흡에 맞춰 반응했다. 상대방의 호흡을 리허설 몇 번 맞추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연기를 준비해온 인물을 즉각 대응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견고하게 만들어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견고하게 만들어오면 수정이 필요할 때 수정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래서 유연하게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상대방에 따라 맞춰가는 게 가장 좋다.

설전에서 배우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힘이 느끼는 게 남다를 것 같은데
└ 김윤석 씨는 목소리가 상당히 크다. 쩌렁쩌렁하다는 느낌을 주는 데 부러웠다. 연극부터 시작해서 그런 것인지 윤석 씨나 송영창 선배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데도, 아주 크고 분명하게 들렸다. 연극부터 다져온 효과가 저런 것인가 싶었다.

반면, 나의 경우 종종 평소처럼 이야기할 때 오디오 팀에서 "죄송한데 좀 더 크게 말해줄 수 있을까요"라고 하는데, 그런 점이 부럽더라.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 없는 나로서는 목소리 크기가 배움에서 나오는 것인가 생각도 해봤다.

▲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지난 KBS2 '연예가중계'에서 했던 인터뷰에서 박해일이 연기한 인조 캐스팅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 이유는?
└ 대본을 읽었을 때나 촬영에 들어가면서 인조를 연기하는 사람이 가장 힘들겠다고 느꼈다. 영화 내내 수많은 사람의 말을 듣고 갈등을 겪게 되고, 우유부단하게 상황을 보며 조금씩 변화하는 걸 보여줘야만 했다. 저 연기를 만약 내가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설전이 오가는 장면에서 박해일이 연기하기 가장 힘들어했을 것 같은데?
└ 가장 힘들어했다. 김상헌과 최명길의 치열한 싸움이 드러나는 장면이지만, 촬영장에서 제일 힘들었던 게 박해일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두 사람의 설전에서 중간중간 끼어들며 대사를 해야 하는데, 혹여나 틀리면 후배로서 크게 미안한 상황이 되니까 유독 예민했었다. 나중에 틀릴까 봐 옆에서 대사하는 게 힘들었다고 하더라. 그 마음이 전해졌다.

[문화 人] '남한산성' 이병헌 "최명길, 부드러움과 자기소신 겸비한 이성주의자"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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