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벤허' 서지영 배우 인터뷰 ②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문화 人] 서지영 "아홉 자식 둔 엄마 맡고 과도기 극복했죠"에서 이어집니다.

공연 전에 인터뷰한 배우들도 너무 잘 나왔다며 자신했던 작품인데 또 공연 올라간 뒤엔 느낌이 달라질 수도 있다. 공연 중인 소감이 궁금하다.

ㄴ 저는 원 캐스트니까 리허설 때도 제가 안 나오는 씬에서만 조금 밖에 못 봤어요. 그래서 어떤 씬이 좋다더라 하면 저도 보고 싶은 거에요(웃음). 연습실에선 사실 이게 어떤 무대인지 말로는 설명이 다 안 되는 게 있죠. 그래도 연출님과 작업을 많이 했으니 어느 정도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막상 무대에 오면 늘 뒤통수를 맞아요. 무대를 보면 너무 대단하고 화려해서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의 이상을 보여주니까요. 그런 게 아무래도 너무 다르죠. 그런데 연출님 스타일이 대본 리딩을 하고 나면 그 다다음날 블락킹을 해야 하니까 대본을 다 외워서 와야 해요. 많이 해본 배우들은 노래 가사까지 다 외워와요. 그래서 이번에 처음 한 민우혁, 아이비 배우는 당황했죠. 물론 못 외워도 할 수 있지만, 이게 익숙하고 편하니까 자주 한 배우들은 그렇게 준비하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공연 한 달 전부터 이미 런스루를 돌고 있거든요. 그래서 리허설 오면 연습 너무 많이 하니까 이미 공연을 한 기분이고, 첫공을 올려도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많이 들어요. 무대에서 실수하지 않는 이상 이미 공연이 완성된 채로 하니까 그런 점이 배우로선 참 좋아요. 우리나라 뮤지컬 제작 과정상 무대 대관을 사전에 못 하고 리허설 때 무대를 밟아볼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더블이나 트리플 캐스트면 한두 번 해보고 공연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도 배우들이 흔들리지 않는 건, 어떤 무대 장치에 따른 변화나 통로만 달라지는 거지 연습실 때와 상황이 똑같아요. 그런 점이 너무 좋아요.

왕용범 연출의 작품은 디테일한 연출을 통해 영화 같은 느낌을 추구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도 각각의 캐릭터를 조명하는 기술도 훌륭하다.

ㄴ 그게 연출님의 최고 장점인 것 같아요. 안 보이는 캐릭터가 없어요. 단역조차 다 보이게끔 만들죠. 남편이지만, 연출가로서 존경하는 점이 이렇게 다방면을 다 보는 분이 없어요. 조명, 분장부터 소도구까지 잘 알아요. 배우의 헤어스타일이나 의상까지도 보고 수정을 하시죠. 조명 잡을 때는 밤을 새며 같이 하니까 조명감독님이 꼼짝 못하세요(웃음). 스태프 못지 않은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좋다고들 하더라고요.

 

다시 미리암 이야기로 돌아가면 삭히는 감정이라고 했는데 조금 더 이야기한다면.

ㄴ 처음 만났을 때는 우리가 늘 생각하는 '어머니'라는 이미지가 있으니 거기서 벗어나지 않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대본을 접하고 연기하며 느낀 점은 어머니란 타이틀이 있어도 여자일 수밖에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어머니로만 다가가면 너무 강하거나, 아프다거나 한 가지 요소로 비춰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자로서 느끼는 감정에 조금 더 중점을 두려고 했어요. 솔로곡을 부르는 파트에서는 자식들에 대한 생각을 배제하고 여자로서 아픈, 문둥병에 걸린 아픔과 환경을 겪는 건 어머니로서 희생하는 것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채 몸이 썩어가는 병에 걸린 여자로서의 감정을 실으려고 했어요.

어머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넘버라면 '밑바닥에서'도 '블루로맨스'가 있는데.

ㄴ '블루로맨스'는 첫사랑(웃음). 나를 떠나간 나쁜 남자를 생각하며 '옛날엔 이랬지'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넘버라면 미리암의 '기도'는 '내가 이런데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는 구원의 요청도 있어요. 인간이고 여자인데 자식이 있기에 아픔을 표현하지 못하고 딸을 더 챙겨야 하고, 분명 더 나이 먹었으니 더 힘들 텐데 티를 못 내고 희생하고 있으니 거기서 먼저 무너지지 않도록, 그렇다고 아픔에 못 이겨 자식들을 팽개치지도 않게 해달라는 구원의 요청이라고 생각해요. 간절히 기도하니까 저 해가 지기 전에 내 팔로 누군가 안아줄 수 있게만 해달라는 이야기잖아요. 인간으로서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말들이란 말이에요. 제가 직접 문둥병에 걸린 건 아니지만,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사람이란 게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너무 어려운 일이거나 인생을 살며 정말 스트레스 받고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내몰릴 때 신이 있다면 어떻게 해달라며 기도하잖아요. 인간은 이기적이기에 자기 자신에 대한 기도를 많이 하거든요. 미리암의 '기도'는 그런 인간적인 면에서 접근하지만,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으니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나아지게 해달라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두 곡 모두 엄마로서 부르는 노래는 아니지만, 큰 차이가 있어요. '블루로맨스'는 현실적이고, '기도'는 염원을 담기도 했죠.

 

기독교인이라면 마지막 장면의 감동이 크겠다.

ㄴ 저는 골고다 씬을 소대에서 지켜보는데 계속 은혜를 받아요(웃음). 메시아 역할을 하는 친구도 어떤 때는 그 친구가 누군지 아는데도 소름이 쫙 끼칠 정도에요. 너무 잘해주고 있기도 하지만, 씬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거에요. 저런 고통 속에서도 그들을 용서하라는 예수님을 내가 믿고 있는 거야? 가끔 죄스럽게 그런 예수님을 잊거나 나쁜 마음을 먹거든요. 전 너무 힘들어요. 상대를 용서하는 거(웃음). 제게 피해를 끼친 사람을 어떻게 해야 용서하지? 잊을 수는 있겠는데 생각나면 욱하고. 그런데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정말 타인을 용서하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펑펑 울면서 무대에 오르게 돼요. 정말 압권인 것 같아요.

골고다 씬은 영상도 많이 쓰이는 장면이다. 퀸터스 장군을 구하는 장면, 전차씬의 기계 말 등 최첨단의 영상 기술이 활용됐다. 반면 '밑바닥에서'는 완전히 아날로그 적인 연출이 많았다. 배우로서 이런 표현의 진화에 따라 연기의 변화가 있는지.

ㄴ 무대에서는 표현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기에 '벤허' 한다고 할 때 배나 전차를 어떻게 표현할지 겁났어요. 저도 어릴 적에 '벤허' 영화를 봤는데 전차 장면 밖에 기억이 안 나거든요. 과연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진짜 말을 데려올 수도 없는 상황인데… 그런데 아이디어가 대단했어요. 말을 보고 깜짝 놀랐거든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대를 뛰어 넘어서 새로운 기법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배우로서도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늘어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예전보다 자유로워지고, 갇혀 있던 연기에서 더 자연스러운 표현도 가능해지고요. 작가 입장에서도 이걸 쓸 수 있을까 싶기보단 이걸 한 번 해볼까 하게 되니까요. 배우로서도 너무 기쁜 일이죠. 관객들도 고전미를 살려야 하는 작품이 있고 아닌 작품이 있잖아요. 모두 발전하며 점점 높아지는 눈을 충족시킬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영상을 쓰더라도 움직이지 않는, 세트처럼 이용하는 영상이어서 예전에는 빔프로젝트가 고장이라도 나면 썰렁한 무대에서 연기하고 그랬던 시기도 있죠. 그 시기의 매력인 것 같아요. 지금 그렇게 만들면 관객들이 싫어하시겠죠. 제가 일본에 '프랑켄슈타인' 공연을 보러 갔는데 거기에서도 스몰 라이선스로 가져가서 무대가 다르더라고요. 간소화하고 연극적이고요. 우리가 이탈리아라면 일본은 프랑스라고 하더라고요. 둘 다 장단점이 있는 건데 관객이 다른 거니까요.

 

무척 좋은 이야기인 것 같다. 결국 '관객이 원하는 것'을 만든다는 이야기니까.

ㄴ 연출님도 늘 말씀하세요. 사람들이 많이 봐주지 않는 작품인데 어떻게 명작이라고 이야기하나. 많이 보고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알고, 이 작품이 잘 만들어진 것도 알지 않겠냐고 말씀하세요. 배우 입장에서도 공연장이 비어있으면 섭섭하죠. 객석이 비어있다고 해서 저희가 열심히 하지 않잖아요. 늘 최선을 다하지만, 이왕이면 많은 관객이 봐주시고 박수 쳐주시면 저희도 행복하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속상해요. 제 개인적인 견해는 우리가 어려운 걸 만들어서 관객들이 그걸 이해하길 기대하기보단 우리가 더 쉽게 만들어서 '괜찮으세요?'하고 다가가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저는 저희도 서비스 직종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돈을 내고 보러 오신 손님들인데 '이거 한 번 봐볼래?'보다는 '이렇게 만들었는데 어떠세요?'가 나은 것 같아요. 물론 혼자 하는 예술도 있고 다들 각자의 목표나 방향이 있겠지만, 저희는 팬들과 함께해야 하잖아요. 일부러 예술가는 관객과 거리를 둬야 한다면서 스스로를 격리할 필요는 없죠. 저희를 좋아하고 공연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은 너무너무 감사한 분들이에요. 공연을 만드는 배우 입장에선 감격스러운 분들이죠. 또 그렇다고 해서 공연을 올린 뒤 관객의 피드백에 흔들려서 이리 저리 바꾸는 게 좋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도 열 명의 관객이 있으면 열 명 모두에게 취향을 맞출 수는 없어도 처음 만들 때부터 되도록 여러 명이 즐길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벤허'의 이런 점을 봐달라거나, 이런 좋은 면이 있다고 어필할 부분이 있다면.

ㄴ '벤허'는 첫째로 웅장함이 있어요. 저희는 무대의 아치를 받치는 조각상부터 조각가 분께서 한 달 동안 조각하고 드러누우셨대요(웃음). 그만큼 무대에서도 리얼리티가 느껴지고 웅장함이 있어요. 그런 면을 많이 느끼시면 좋겠고 음악적인 면에서도 상황에 맞는 음률과 가사를 즐기며 봐주시면 좋겠어요. 배우들도 피를 토할 만큼 해요. 골고다 씬이 끝나고 벤허를 안아주러 가면 정말 눈물, 콧물, 침으로 범벅이 돼요. 배우들도 정말 힘들어서 아무 것도 못할 지경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배우들이 고생하고 있어요. 그만큼 관객들이 더 좋아해주리라 믿거든요. 관객들께서도 배우들이 힘들어 하는 기색이 전혀 없으면 보는 재미가 줄어든다고 하세요(웃음). 그런 벅차오름을 같이 느끼실 수 있게 계속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 테니까 많이 오셔서 공감해주시면 좋겠어요.

 

IT업계에도 UX(사용자 경험)이 핫이슈로 떠오른지 오래다. 관객을 관객으로 대하는 태도, 요즘 같이 안 좋은 소식이 들려 오는 공연계에서 꼭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뮤지컬 '벤허'는 10월 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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