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벤허' 서지영 배우 인터뷰 ①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지난 14일 오후 충무아트센터에서 뮤지컬 '벤허'의 미리암 역을 맡은 서지영 배우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지영 배우는 데뷔 20년이 넘은 베테랑 여배우로 뮤지컬계의 큰 기둥 중 하나다. 현재도 '벤허'에서 원 캐스트로 '미리암' 역을 맡아 무대를 지키며 큰 무게감을 실어주고 있다.
그녀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입체적인 인물 해석을 통해 출연하는 작품마다 맡은 배역을 살렸다. 코믹하고 편안한 느낌의 '올슉업'에서도 '실비아'는 '젊고 예쁜' 나탈리나 산드라, 로레인들에 가려지지 않고 상큼한 중년의 로맨스를 매력적으로 표현해냈다.
이번에 출연하는 '벤허'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으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진 남편 왕용범 연출과 또 다시 도전하는 대극장 창작 뮤지컬이다.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중인 뮤지컬 '벤허'는 '유다 벤허'의 생애를 통해 사랑, 용서, 복수, 이해 등 인간과 인간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를 모두 다뤘다.
'미리암'은 벤허의 어머니로 겉으로는 어떤 순간에도 문둥병에 걸려 죽어가는 순간에도 늘 의연함을 잃지 않는 숭고한 어머니상을 선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모든 걸 안으로 삭히며 이 상황을 괴로워하고,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한 사람이 담겨 있었다.
올해는 '밑바닥에서'에 이어 줄곧 원 캐스트를 하고 있다. 힘들지 않은지.
ㄴ 처음엔 연출님께서도 원 캐스트가 가능한 분량이라고 하셔서 저도 선뜻 알겠다고 했는데 연습해 보니까 감정소모가 많은 역할이라 힘들었어요. 그래도 '밑바닥에서'는 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저희끼리 재밌는 면도 있고 해서 버틸 수 있었지만, 대극장의 원 캐스트는 좀 다른 것도 같네요. 또 타냐는 울어서 해소하는 감정이라면 미리암은 삭히는 울음이라서 감정적으론 조금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해야죠?(웃음)
'밑바닥에서'부터 여러 배우들과 이번 작품까지 이어오고 있다. '메셀라' 역을 맡은 박민성 배우도 있는데.
ㄴ 너무 좋은 배우고 더 잘될 거에요. 노래 질감도 좋고, '밑바닥에서'를 통해 연기에 눈을 떴어요. 그런 역이 처음이라 무척 힘들어 했는데 그걸 이겨내고 극복하니까 뭐든 할 수 있는지 연기가 쑥쑥 늘었죠.
'밑바닥에서', '올슉업', '벤허'까지 최근 세 작품에서 모두 엄마 역할을 했다. '밑바닥에서'는 10년 전엔 '나타샤'를 했고 이번엔 '타냐'를 했는데 이런 세월의 흐름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ㄴ 아 그렇네요. 정말 엄마네(웃음). 당연한 흐름인 것 같아요. 저도 '효리네 민박' 애청자인데 이효리씨가 아이유를 보며 환호하는 팬들을 보며 '나도 저 나이 때 저랬는데 이제 난 보이지 않는구나. 너 덕분에 내가 하나하나 내려가는 걸 느끼는 게 너무 좋다. 박수칠 때 떠나는 게 아니라 하나 하나 내려놓고 내려가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하던데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막 장난 삼아 주변 동기나 선배들이 주름을 펴볼까? 하면 결사반대해요(웃음). 그걸 없앤다고 해서 나이가 사라지고 젊은 역이 오는 건 아니잖아요. 도리어 어디 가면 인상이 독해져서 악역을 맡게 돼더라구요. 나이가 들면 주름이 당연히 생기는 거니 그걸 받아들여서 거기에 맞춰가면 무대에서 더 행복한 배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운이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여배우는 나이가 들면 맡을 역이 적어져서 무대에 설 기회가 줄어드는데 점점 나이에 맞는 역할이 생기니까 전 행복한 편이죠.
요즘 '젊은 배우의 노인 분장'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이번 '벤허'에서는 남경읍 배우를 비롯해 배역에 맞는 캐스팅이 눈에 띈다.
ㄴ 머리에 흰 칠만 한다고 나이가 나오는 건 아니니까. 연륜은 정말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대사 한마디만 해도 풍기는 느낌이 다르잖아요. 나이에 맞는 캐스팅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직 엄마 역만 하기에는 아직 젊은데(웃음) 과도기를 겪었던 적은 없는지.
ㄴ 과도기는 예전에 지났죠. '티르자' 곽나윤 배우의 실제 어머니가 저랑 나이가 한 살 차이래요(웃음). 빨리 결혼했으면 정말 이만한 딸이 있겠다 싶었죠. 그런 과도기를 이미 겪은 선배들이나, 혼란스러워하는 후배들도 많이 봤어요. 제 생각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덕분에 행복한데 왜 꼭 주인공, 젊고 예쁜 역을 맡고 싶어야 하나 싶어요. 나이에 맞지 않는 역을 고집하면 무대에 서기 어려울 텐데 왜 그래야 하나 싶죠. 저는 '블러드 브라더스'에서 아홉 명의 아이를 둔 엄마 역을 하면서 그 과도기를 넘겼어요. 그 전작은 '풋루스' 였는데 거기서는 완전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 역을 했거든요. 그래서 '블러드 브라더스' 오디션에 붙고 나선 저 자신도 믿기 어려웠어요. 그래도 좋은 작품의 좋은 캐릭터여서 그 공연을 하며 젊은 역할을 몇 년 더 할 수 있는데… 같은 생각을 벗어 던지고 주어진 작품에 최선을 다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과도기를 넘긴 것 같아요.
엄마, 아빠 같은 역은 본인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쉽지 않은데 서지영의 '엄마'는 자신이 가진 캐릭터를 뚜렷하게 보여줬다.
ㄴ 저는 어차피 '맘마미아!'처럼 중년들이 주연인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작품에선 조연으로 내려올 위치에 왔죠. 주연은 젊었을 때 질리도록 해봤고요(웃음). 주연상, 조연상도 다 받아봤고 할 거 다 했으니 욕심 부릴 게 없어요. 무대에 있는 게 행복하죠. 작은 배우가 있지 작은 배역은 없다는 말을 유명한 분이 하셨더라고요. 작은 배역이라고 해도 스스로 가볍게 여겨본 적은 없어요. '잭더리퍼'에서도 '폴리'는 단 두 씬이지만 엄청난 임팩트가 있거든요. 아직도 일본 관객들이나 '잭더리퍼'를 좋아하는 분들은 제 '폴리'를 보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내가 역할을 사랑하면 관객들도 역할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가끔 그럴 때는 있어요. 20년 넘게 활동했는데 신인 남자 후배들이 몇 작품 안했는데 저보다 출연료도 높고, 인사 순서도 뒤에 나오면 뭔가 미묘한 감정은 있지만, 그것조차 받아들여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니까요. 다시 태어날 수도 없고(웃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편이라 빨리 잊고 좋은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안시하 배우와 함께한 인터뷰에서 후배 여배우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뮤지컬계에선 앞서 말한 '나이에 따른 흐름'을 개척하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ㄴ 아동극하면서 포스터 붙이고, 전단지 돌리는 것부터 시작했으니까요. 정말 밑바닥에서부터 했어요. 누구 소개로 들어간 적도 없고 연출님 만나기 전에는 전부 오디션을 봐서 배역을 따면서 성장했죠. 부당한 처우도 당해봤고, 여러 일을 겪었어요. 그러다 보니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어요. 그러나 공연계도 하나의 작은 사회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바꾸자' 해서 바뀌진 않아요. 그래도 심적으로도 도움될 수 있게 고민 상담도 해주고 이것 저것 도와주려고 하고 있어요.
'티르자' 역의 곽나윤 배우를 볼 때도 그런 느낌이겠다.
ㄴ 맞아요. 그리고 예뻐요(웃음). 딸처럼 사근사근한 성격에 알아서 잘 하니까 잔소리할 일도 없고요. 전 같은 무대에 서면 선후배 이전에 직장동료라고 생각해서 후배에게 간섭하고 노트하는 거 싫어하거든요.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으면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데 선배랍시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무척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인물의 감정선은 더더욱 그래요. 예를 들면 같이 걸어가는데 속도가 맞지 않는 경우에는 맞춰서 걷자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인물이 이런 감정이니까 네가 이렇게 표현해야 해. 이런 이야기는 못할 짓이에요. 스스로 느껴서 표현해내야 하죠. 그게 정말 힘들어서 물어봤을 때 팁을 주는 편이지. 그 전에는 스스로 답을 찾도록 기다리려고 해요. 너무 잘해주고 있고 귀엽고 예뻐요. 곽나윤 배우는 혼자 있으면 '멘붕' 왔을 거라며 첫 작품에 계속 어머니(서지영 배우)랑 함께 출연함에 감사한대요. 저는 너무 고맙죠.
본인도 힘든데 '밑바닥에서'도 그렇고 자식들이 고생을 엄청 한다.
ㄴ 지금도 어린 티토들이 '밑바닥에서'부터 같이 한 아들들이잖아요. 제가 호칭을 '엄마'라고 하거든요. 공연에서 조금 실수가 있거나 하면 따로 불러서 꼭 연습 더 하고 들어가자고 해요. '너희 그거 하나뿐인데 틀리면 안돼(웃음)' 하고요. 공연 오면 대기실에도 인사하러 오는데 그럼 노래 한 번 틀어보고 같이 맞춰 봐요. 아이들이다 보니 매일 하는 게 아니라서 하루 지나서 오면 까먹곤 하거든요.
[문화 人] 서지영 "모든 취향 맞출 순 없지만 노력하려는 서비스 마인드 필요해"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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