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영화도, 소설도 아닌 연극만의 색깔을 살린 성공적인 무대화가 아닐까.

10월 29일까지 대학로 CJ아지트에서 공연되는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조제)'은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STAGE UP)'의 두 번째 제작지원 공연으로 다수의 작품을 기획해온 '벨라뮤즈'에서 다나베 세이코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하며 CJ문화재단이 주최 주관했다.

다리가 불편해 할머니가 밀어주는 유모차에서만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쿠미코가 평범한 대학생인 츠네오를 만나며 겪는 사랑의 감정, 이별을 그려냈다. 이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생각하는 '내 사랑의 특별함'이란 결국 모두가 가지는 특별함이기에 생기는 평범함을 보여준다.

비록 장애를 가진 쿠미코와 츠네오가 만난 것일지라도 남자와 여자로서 느끼는 둘의 사랑은 평범했고 그렇기에 이별 역시 평범하게 맞이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작품이다.

연극 '조제'는 원작의 무대화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연극만이 가지는 특징을 잘 풀어냈다. 권진우, 사이토, 다나카 역의 배우 세 명은 극의 진행을 돕기 위해 다양한 역할로 변신하며 쿠미코와 츠네오의 주변인 역할을 맡는다. 이들은 또 단순히 주변인을 맡는 것을 떠나 관객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작품을 볼 수 있는 코믹함도 전한다. 특히 김대곤, 황규인 배우의 권진우 역이 그러한데 마치 대학로 로코물의 멀티맨을 보듯 자연스러운 연기와 '한 방'이 있는 애드립이 인상적이다.

 

이는 6명이라는 비교적 많은 캐스트에도 영화와의 차이를 좁힐 수 없기에 선택한 연극적 연출로 느껴지는데 여기에서 일본 작품이 갖는 특유의 담백함과 서정성은 약해졌다. 그 서정성을 채우는 것은 주인공인 쿠미코와 츠네오다.

최우리, 문진아, 이정화, 백성현, 김찬호, 서영주 여섯 명의 배우들은 주로 뮤지컬과 매체에서 많은 강점을 보여왔지만, 작은 소극장 연극에서도 디테일한 감성을 잘 드러내며 풋풋하면서도 안타까운 사랑을 빼어나게 연기한다. 영화 속에서 젊은 배우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이 있었다면, 연극에서도 성숙한 사랑과 연기 경험을 쌓은 배우들이 담담하게 뱉는 대사들은 하나 하나가 의미를 담는다.

또 잘 버무러진 배경음악, 쿠미코의 그림일기에서 보여주는 동화 같은 이미지들도 작은 무대를 풍성하게 채운다. 특히 티저 포스터에서부터 줄곧 색깔을 유지한 그래픽 디자인은 배우들 만큼이나 작품의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한편, 극 속에서 가장 큰 변화는 쿠미코와 츠네오의 사이에 놓인 카나에가 한국인 유학생 윤효정으로 설정된 것인데 쿠미코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이며 더 사회적 약자인 그녀와의 갈등을 더 선명하게 부각한다.

최근 21세기 초반의 작품들이 새롭게 리메이크되는 경우가 많은데 연극 '조제' 역시 그러한 흐름 위에 놓여져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작품의 색깔이 동시대성을 갖지 못한 채 '추억팔이'에 급급해진 경우가 많은데 연극 '조제'는 그러한 함정을 잘 피했다. 도리어 갈수록 혼자임을 강요하는 세상 덕분에 바닷속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조제'들은 더 많아졌다. 그렇기에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지금에 와서도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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