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류가양, 이소연, 김준수, 박성우 배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가장 최근에 했던 국립창극단의 '산불'을 봤을 때, '점례' 역할은 나에게 참한 그 시대의 전형적 여성상이라고 봤다. 이번 대본을 보니 굉장히 어려웠다. 내가 생각한 뻔한 여성상이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상이 많이 그려져 있어서, 그 변화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 '점례' 役 이소연 배우

26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국립창극단 신작 '산불'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기자간담회엔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이성열 연출, 최치언 작가, 장영규 음악감독, 이태섭 무대감독, '점례' 역의 이소연, '사월' 역의 류가양, '규복' 역의 김준수, 박성우, '양씨' 역의 유수정, '최씨' 역의 김금미가 참석했다. 10월 25일부터 2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산불'은 차범석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1962년 12월,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서 이진순 연출로 초연됐고,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김성녀 예술감독은 "내년 1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리모델링을 해야 해서, 국립창극단으로는 마지막 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라면서, "'산불'이라는 작품을 진행한 이유는 미리 의도하지 않았고, 이 대극장에 맞는 연출 선생님과 스태프들을 모셔서 결정하게 됐다. 무대에서 60년 가까이 섰지만, 창극 하는 배우로는 '산불' 무대에 한 번도 서본 적이 없었다. 그 해보고 싶은 작품을 창극으로 만들어준 이성열 연출 이하 스태프에게 감사드린다. 차범석 선생님의 '산불'이 창극으로 잘 녹여져서 대극장 공연뿐 아니라 레퍼토리로 소극장에서도 이뤄질 수 있는 바람으로 이 자리에 섰다"라고 인사말을 남겼다.

▲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이성열 연출은 "개인적 기대감 뿐 아니라 주변의 기대감이 커서 내심 걱정도 많이 되고, 의욕도 많이 생기고 있다"라면서, "'산불'은 차범석 선생님의 대표작이자, 현대 희곡사에서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초연을 1962년 12월 이진순 선생님의 연출로 진행한 후, 국립오페라단, 국립창극단, 최근 국립극단 등 여러 곳에서 여러 장르로 만들어졌다. 민간 극단에서도 '산불'을 했지만, 작품 자체가 태생부터 국립극장과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잉태됐다. 이 작품을 국립극장에서 다시 한 것은 필연적이라 생각된다"라고 입을 열었다.

극단 백수광부 대표로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재기발랄한 발상의 전환을 선보인 이성열 연출은 "이번엔 창극 장르로 '산불'을 하게 되어 더 흥미롭다"라면서, "개인적으로 '산불'은 완벽한 구성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뚜렷한 각각의 구성을 가진 인물들, 전쟁 속 피어나는 욕망과 사랑을 사실주의로 그렸다. 창극을 하니 사실주의적인 것만으로 풀려 하지 않고, 음악극의 양식에 맞게 작품을 만들려 한다. 또한, 이태섭 무대 디자이너 선생님이 사실적인 틀 벗어나 새롭고 과감한 소용돌이 회전무대를 콘셉트를 줬다. 저희도 여기에 힘입어 새로운 시도를 꾀하려 한다"라고 밝혔다.

▲ 이성열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극본을 맡은 최치원 작가는 시대를 넘나드는 액자식 구성 쏙에 까마귀들, 죽은 남자들, '점례'의 남편 등 새로운 캐릭터를 배치했다. 최치원 작가는 "차범석 선생님의 원작을 후배 극작가가 각색으로 참여할 기회가 생겨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라면서, "욕망이라는 것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전쟁을 배경으로 두고, 그 안에서 전쟁의 욕망이 여성들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무대에서 공연으로 재밌게 나올 수 있도록 여러 시도를 했다"라고 전했다.

작곡은 영화 '부산행', '곡성', '타짜' 등을 맡은 장영규 음악감독이 진행했다. 창극 작업에 처음 도전한 장영규 음악감독은 "국립창극단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라면서, "6.25 전쟁 당시, 지리산 자락에서 어떤 음악이 나올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당시 음악과 토속 민요 등을 갖고 시작을 했고, 기존의 판소리, 민요를 분절시키고 재조합하는 과정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선율들이 다층으로 이뤄져서, 국립창극단에서만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태섭 무대감독은 "큰 무대, '프로시니엄 아치'가 있는 곳이 세종문화회관 다음이 여기"라면서, "이런 무대에서 공연하는 마지막 창극이 될 것 같다. 1990년 '오이디푸스 렉스'로 국립극장 큰 무대를 겁도 없이 디자인했었는데, 지금은 이런 큰 무대가 사라지고, 좀 더 친밀도 있는 무대로 바꾸는 계획을 추진 중으로 알고 있다. 이성열 연출과 강남의 커피숍에서 만나 2월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공간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거기에 맞춰 모든 스타일도 새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양씨'와 '최씨'네의 대립구조가 있고, 소백산을 배경으로 하는 사실주의로 표현하는 무대가 주를 이뤘다"라고 말했다.

▲ (왼쪽부터) 류가양, 이소연, 김금미, 유수정 배우, 장영규 음악감독, 김성녀 예술감독, 이성열 연출, 최치언 작가, 이태섭 무대감독, 김준수, 박성우 배우가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번 무대 배치에 대해 이태섭 무대감독은 "큰 콘셉트는 역사의 소용돌이로, 미군기 잔해가 등장한다"라면서, "미군 폭격기가 떨어진 상황에 더욱더 처절한 전쟁의 상황을 시각화했다. 무대 자체도 국립극장의 원형 무대를 최대한 살려 무대로 다가갈 수 있는 형태로 디자인했다. 실제 대나무가 천 그루 정도 등장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산불'의 주인공인 '점례'는 창극 '흥보씨', '트로이의 여인들', 뮤지컬 '아리랑', '서편제' 등에서 활약한 이소연 배우가 맡았다. '점례'는 남편의 생사도 모른 채 노망난 시할아버지, 억척스러운 시어머니 그리고 정신을 놓은 시누이까지 모시고 사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미련스럽기도 하지만, 빨치산으로부터 도망친 '규복'을 숨겨주고 그 남자와 결국 사랑이라는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랑에 적극적인 여성이다. 욕망을 드러내지도, 남에게 강요하지도 않지만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적인 여성이며 한편으로는 현대 여성의 모습도 보인다.

이소연은 "가장 최근에 했던 국립창극단 '산불'을 객석에서 봤다"라면서, "'점례' 역할은 나에게 참한 물이어서 그 시대 전형적 여성상이라 봤다. 이번 대본을 보니 굉장히 어려웠다. 내가 생각한 뻔한 여성상이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상이 많이 그려져 있어서, 음악적 변화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라고 언급했다.

▲ 이소연 배우가 '점례'를 연기한다.

한편,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은 '사월'에게는 필요하지 않게 된다. '사월'은 갓난아이가 있지만, 모성애보다 본능적 욕망이 우선이다. 욕심 사나운 실천력을 가진 '사월'이 대나무 숲에서 본 '규복'과 '점례'의 모습은 욕망의 불씨를 태우기 충분했다. 동무의 연인을 맹랑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욕정 가득 찬 여성의 모습은 어딘가 불안하기까지 하다.

'사월'을 연기한 류가양은 "'사월'은 엽기적"이라면서, "동료의 남자를 같이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돌봐주자는 당찬 모습이 있는데, 여배우로 하고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솔직하게 겁이 났다. '내가 과연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월' 같은 마음은 누구나 늘 먹고살고 있지만, 절제하고 조절하고 산다. 그래서 분명 안에 그 모습이 있을 테니, 좀 더 끌어내서 해보도록 하겠다. 주어진 것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잘 해내 보겠다. '사월'의 뜨거운 사랑에 주목해주시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 김준수가 '규복'을 맡았다.

친구를 따라 입산했다가 도망쳐 나온 전직 교사 '규복'은 이념은 중요치 않고, 그저 도망쳐 나와 몸을 뉘고, 녹이고 달아오르게 하는 것에만 충실하다. 이런 '규복'은 더블 캐스팅으로 이뤄졌다. 김준수는 "'규복' 역할은 '점례'와 '사월' 사이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기도 하고, 대나무숲에 숨어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먼저라고 생각했다"라면서, "그래서 옆에 계신 박성우 씨와 같은 배역이지만, '점례'와 '사월' 사이에서 모성애를 일으킬 수 있는 캐릭터로 표현해내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김준수와 함께 '규복'을 맡은 박성우는 "류가양 씨처럼 주역으로 처음 국립창극단의 거대한 작품에 함께하게 되어 감사하다"라면서, "한편으로 부담감이 많이 된다. 떨리기도 하지만, 열심히 잘 소화해내려 노력하겠다. 보시다시피 준수 씨와 나는 아예 너무나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을 두 번 보시더라도 두 번의 공연이 지루하지 않고 다르게 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이야기했다.

▲ (왼쪽부터) 류가양, 이소연, 김금미, 유수정 배우, 장영규 음악감독, 김성녀 예술감독, 이성열 연출, 최치언 작가, 이태섭 무대감독, 김준수, 박성우 배우가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이성열 연출은 "두 배우의 대사가 달라지지는 않다"라면서, "외모에 있어서 두 분이 차이가 있고, 무대 느낌도 다를 수 있다. 잘 활용해서 다른 두 캐릭터를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를 했다. '점례'와 '사월'이 한 인물의 두 가지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동전의 양면 같은 성격의 두 인물을 작가가 나눠준 것처럼, '규복'도 섬세하고 기대고 싶은 모습, 터프한 모습이 한 사람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블 캐스팅으로 접근하고자 했다"라고 더블캐스팅 이유를 말했다.

푸근한 인정이 있지만, 때론 마을 사람들의 공출을 도맡는 밉살스러운 '양씨' 역의 유수정은 "내 덩치를 보고 뽑아주신 것 같다"라면서 웃은 후, "이 시대가 원하는 창극을 하다 보니 연출님의 연출법도 기존 정통 창극과는 양식이 다르다. 이번에 음악감독님이 영화 음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완전히 전통과는 다르겠다는 연습을 하고 있다. 30년 정도 여기에 근무했는데, 저 밑의 선배부터 꼬맹이까지 모두 다 끼인 세대다. 국립창극단의 역사가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양씨' 캐릭터를 받아보니 조금은 묵직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복합적 성격이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양씨'와 대립하는 억척스러운 '최씨' 역의 김금미는 "창극에서 중요한 부분은 언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라면서, "어떤 언어 표현이 중요한지 고민하고 있다. 작창의 개념은 이 시대를 넘나들면서 업그레이드되는 음악성으로 표현된다. 부담감이 잘 소화될 수 있겠느냐는 나름대로의 설렘을 뒤로하고 임하고 있다. 그러나 저희 본분은 음악인으로 창작인 입장에서 어떤 음악이라도 잘 전달해, 관객분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드리려 노력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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