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예술가의 집 앞에서 '한국 문화예술을 염려하는 문화 예술인들 기자회견'이 열렸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표현의 자유는 문화선진국의 표상이다."

구름 한 점 끼지 않은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연극의 거리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30여 명의 문화예술인들이 구호를 외쳤다. 문화연대, 서울연극협회, 한국작가회의가 공동주최한 '한국문화예술을 염려하는 문화 예술인들 기자회견'이 22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예술가의 집에서 열렸다.

최근 언론 보도와 18일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심사 과정에서 특정 작가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선정된 작품을 포기하도록 종용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창작산실지원 분야의 박근형, 문예창작기금 분야의 이윤택, 다원창작예술지원 분야의 '안산순례길'이 정치적 이유와 세월호와 관련됐다며 심사에서 배제되었다는 심사위원의 증언이 나왔다. 여기에 연극인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들통 난 것이 세 작품일 뿐, 예술지원과정 전체에 정치적 검열이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유현아 시인과 장용철 배우가 낭독한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한 나라의 문화예술행정은 그 나라 문화예술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며 "따라서 문화예술행정을 책임지는 국가기관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사업운영은 공공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공성도, 예술행정 담당기관으로서의 소신과 철학도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예고된 일정과 지원규모를 원칙도 없이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심사과정과 그 결과마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며 밝힌 후 "엄정한 심사와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할 공공지원이 밀실의 야합처럼 처리되고 발표됐다. 정치적 외압에 따라 좌충우돌하며 무리하게 심의 결과를 조정했다는 의혹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공기관으로서의 신뢰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 (앞 줄 왼쪽부터)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회장, 임정희 문화연대 대표,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오태영 작가, 정희성 시인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예술가의 집 앞에서 이렇게 올바른 예술 정책을 펴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하게 된 것이 참담하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우리가 꿈꾸는 창작 행위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이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사무국장이라는 직분으로 예술지원사업을 펼쳤다. 그러나 이 지원 사업을 펼칠 때 정치적 검열을 한다거나, 지원사업의 목적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적은 없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회상했다.

그는 "예술은 기본이 비판이다. 나라, 대통령, 모든 국민, 자기 자신이든 비판 행위 없이 창조가 일어날 수 없다"며 "체제 안에 있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의 기본적인 목적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나라의 발전과 문화의 융성도 일어난다. 하지만 그 비판적 잣대가 정치적 검열의 잣대로 막는다면 저희는 이와 같은 시위 행위를 예술이 아니라 광장이나 공공기관 앞에서 할 수밖에 없다. 이건 나라 전체적으로 불행한 사태다. 연극, 문학 하는 모든 분이 예술 행위로 만나야 하는데 이렇게 예술가의 집 앞에 섰다. 앞으로 끊임없이 예술생태계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시위 행위를 통해 맞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적 탄압 때문에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회장은 "2015년은 연극 역사상 참극의 해로 기록될 것"이라며 "서울연극제 폐관 사태부터 이어 검열 사태까지 대학로 날씨는 좋은데 마음은 겨울처럼 차갑고 얼어붙었다. 연극계 중견·원로부터 시작해 모든 단체가 성명서를 내고 있다. 대학로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 중에서 연극인들이 이 대학로를 35년 이상 일궈냈다. 대학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본이 선순환되지 않고, 공공성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가장 아름답고 역사가 깊은 아르코 대극장을 서울연극제 때 폐관하면서 서울연극제에 길거리에 내몰았다. 그러더니 가장 핵심인 작품의 검열이라는 칼을 가지고 작가, 배우, 연출가, 연극인들을 정말로 길거리에 내몰았다. 회복되어야 하고, 저희 연극인들은 선·후배, 정치의 좌·우가 없이 이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하나가 되어 끝까지 뭉쳐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가장 오른쪽)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회장이 발언을 마친 후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임정희 문화연대 대표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매번 검열과 정치적 탄압에 맞서 거리에 나온 지가 수십 년인데 여전히 바뀌지 않은 채로 이렇게 나온 것이 참담한 기분이다. 예술적 상상력, 창의력이 사회 기초 발전의 토대가 된다는 이 정부에서 심한 탄압과 검열이 이뤄지고 있는 데에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무대나 작업실에서 그대로 작업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이렇게 거리에 나와서 외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정희성 시인은 "올해로 만70을 맞이하는 해방둥이다. 우리 현대사회의 모든 사건을 온전하게 겪어온 사람이다. 그런 가운데 가장 젊었던 시절을 억압적인 정권하에 보내왔고, 가까스로 얻은 민주화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고 심한 모욕을 당한 느낌이다. 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은 저 개인적으로 한 번도 신청해본 적도 없고 받아본 적도 없다. 후배들에게 그 좋은 기회가 돌아가는 걸 제가 뺏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어떤 정치적 기준 아래에 비판적인 문인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이야기를 들으니 참담한 느낌이다"라고 밝혔다.

오태영 작가는 "여태까지 원로 선배들의 독재 정권에 맞서며 투쟁을 하며 표현의 자유를 얻었는데, 약 20년 정도 지난 후 무참히 깨져버리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드니 참담해진다. 나는 오래 살았다. 옛날엔 비겁해서 앞에 나설 순 없지만, 지금은 선착순이라도 죽어줘야겠다는 생각이다. 후배들을 위해 나서겠다"고 의지를 표현했다.

김태수 연출가는 "사회에 쓸모없는 것들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고 분통이 터진다. 민주와 자유의 기본 뜻을 모르는 어떤 부류와 이 땅에 있다는 자체가 곤혹스럽고 화가 난다. 욕이 나오고 분통 터지고 답답하다. 그러나 가만 있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고 바라보고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저희의 소리를 보여주겠다"고 발표했다.

   
▲ 김태수 연출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이번 기자회견을 연 문화연대, 서울연극협회, 한국작가회의 측은 성명서를 내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지원의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의혹을 해명하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파행적 사업 운영의 책임자를 문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문화행정의 수장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그간의 의혹과 논란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하라. 정부는 문화예술행정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공공 운영의 원칙을 천명하고 실천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20일 신진 연극인들의 모임인 '대학로X포럼'에서 '검열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행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통해 "국회는 이번 문예위 검열 사태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 청문회를 즉각 실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범위한 불법 행위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라"라고 주장했다. 이번 성명서는 공재민 서울연극협회 사무처장을 비롯해 연출가 김재엽, 윤한솔, 전인철, 극작가 김은성, 이양구, 최창근, 연극평론가 김소연, 이성곤, 성수정 등 40명이 발의했으며, SNS를 통해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한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사업의 지원 여부는 심의위원회를 거쳐 예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며 "실제로 그동안 예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심의위원회의 결과를 수정, 의결한 사례가 있었다. 심의위원 의견을 존중해야겠지만, 최종 결정권은 예술위원회 전체회의가 가지고 있다. 예술위원회는 현장예술인 중심의 자율기관으로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지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고려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